시즌 1을 마치며

삶을 배우고, 사람을 다시 믿게 된 기록

by 진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배워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죽음을 통해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유명인들이다.

그들의 회고록은 서점에 깔리고,

그들의 유언은 기사 제목으로 남는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는, 그렇게 멀리 있는 걸까?”

오히려 그것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매일 밥을 짓고, 가족을 돌보고,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이어가는 사람들

아무런 이름도, 무대도 없이 살아온

평범한 인생들의 목소리 속에야말로

진짜 ‘삶의 철학’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시간과 목소리를 남기고,

그 안에서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

<당신의 유서를 써드립니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그들의 인생을 받아 적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어느새, 삶을 이해하는 일,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믿는 과정으로 변해 있었다.

기록의 형식으로 삶을 되새기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수없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

그것은 육체의 소멸이 아니라,

오래된 생각의 죽음이고, 익숙한 세계의 해체다.

〈당신의 유서를 써드립니다〉 프로젝트는

바로 그 ‘작은 죽음들’의 기록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생을 들여다볼수록,

이 일은 단순히 ‘타인의 서사’를 대신 써주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삶이라는 현상 그 자체를 관찰하는 철학적 행위,

즉 인간이 어떻게 살아내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내는가에 대한 깊은 탐구였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감당하고, 회복하고,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한 문장씩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본 구조를 발견해 나갔다.

삶을 탓하지 않는 사람들

나는 여러 세대의 삶을 들었다.

김광선, 임영숙, 한용희, 김현주 …

서로 다른 생을 걸어온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닮은 결이 있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첫 번째 지혜는 삶을 탓하지 않는 태도였다.

누군가는 실패를 탓하고, 누군가는 운명을 원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질병도, 가난도, 불운한 사건조차도

누군가의 책임이나 벌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건 마치 자연재해처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그들의 언어는 놀랍도록 담담했다.

“그럴 수도 있지.”

이 짧은 한마디 속에는 수십 년의 고난과 싸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흡수한 마음의 힘이 담겨 있었다.

그건 체념이 아니라, 존재의 근육이었다.

삶을 억누르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다시 일어서는 회복의 기술이었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듯이.

그 회복의 태도가 바로, 그들의 삶을 지탱한 가장 조용한 철학이었다.


신앙보다 깊은 내면의 윤리

두 번째 공통점은 신앙을 넘어선 인간의 윤리였다.

그들은 교리나 경전의 말씀보다, 스스로 정한 마음의 기준을 따랐다.

그 기준은 언제나 단순했다.

“내가 세상에 흘린 해로움은, 결국 내 자식의 몫으로 되돌아온다.”

그 한 문장이 그들의 윤리 체계를 지탱했다.

그들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고,

자신의 감정이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건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삶 자체를 신앙처럼 대하는 태도였다.

그들의 선(善)은 선언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남을 돕거나 사랑하기 위해 애쓴다기보다,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조용한 선택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말보다 태도로 가르쳤고,

그 태도는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었다.

나는 그들의 삶을 보며 느꼈다.

신의 존재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자세 속에 스며있는 빛의 방향이라는 것을.

그들의 신앙은 종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성실의 미학 —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

세 번째는 성실이었다.

성실이라는 단어는 너무 평범해서 대수롭지 않게 들리지만,

그들의 성실은 단순한 근면이 아니었다.

그건 시간과 싸우는 기술, 혹은 삶을 이어가는 신념의 형식이었다.

그들은 '해야 하는 일'을 끝까지 했다.

보상이 없더라도,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멈추지 않았다.

그 꾸준함이 그들을 사람답게 만들었다.

삶의 불공정함에 주저앉지 않고, 묵묵히 하루를 채워가는 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손등에서, 그들의 말투에서,

세월이 깎아낸 아름다움의 흔적을 보았다.

그건 예술이자, 신앙이자, 철학이었다.

그들의 성실은 시간을 이기는 방식이었다.

성실하게 살아낸 하루하루가 결국,

그들의 이름을 한 사람의 역사로 완성시켰다.


지혜는 멀리 있지 않다

인터뷰를 거듭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세대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환경도 달랐지만,

결국 그들이 도착한 결론은 비슷했다.

삶은 결국, 탓하지 않고, 선하게 살며, 꾸준히 나아가는 일이라는 것.

그 단순한 세 문장은, 인생의 핵심이자 인간의 윤리였다.

지혜는 거창한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상의 결단에서 자라나는 것이었다.

이 평범한 이들의 삶이 내게 알려준 건,

우리가 얼마나 ‘보통의 위대함’을 잊고 살아왔는가였다.

그들은 철학자가 아니었지만,

철학처럼 살았다.

그들은 작가가 아니었지만,

인생을 한 편의 글처럼 써내려갔다.

그들은 예술가가 아니었지만,

일상을 예술처럼 다루었다.

그게 바로 인간의 품격이었다.

그리고 그 품격은, 세상 어떤 화려한 문장보다 오래 남는다.


기록은 기억이 아니라 사유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하며, 매번 나 자신을 마주했다.

그들의 유서를 대신 써주며, 나는 내 유서를 미리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건 죽음의 리허설이 아니라,

삶을 다시 정리하는 철학의 연습이었다.

기록이란 단순히 저장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건 ‘사유의 형식’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문장으로 옮긴다는 건,

그 사람의 존재를 다시 이해하는 동시에,

인간 전체에 대한 존경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그들의 유서는 슬픔의 기록이 아니라, 존재의 증언이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버티는가,

사랑은 어떻게 남는가.

이 모든 물음의 답이 그들의 평범한 말 속에 숨어 있었다.


나의 배움, 우리의 기록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기록은 단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증언이라는 것을.

그들의 삶은 나에게 하나의 교본이었다.

그리고 그 교본을 읽으며, 나는 내 방식의 삶을 다시 설계하게 되었다.

그들의 언어 속에서 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진실 —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선하게 살아가며, 멈추지 않는 일 —

그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진리를 배웠다.〈당신의 유서를 써드립니다〉 시즌 1을 마치며

나는 확신한다.

지혜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안에,

조용히 흘러가던 일상의 문장들 속에 있다.

삶의 크기는 명성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건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가,

그리고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로 결정된다.

그 기준에서 보자면,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이미 위대한 존재들이었다.

다음 문장을 향하여

이제 시즌 1의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삶을 쓰는 법, 듣는 법, 그리고 사랑하는 법을.

시즌 2에서는, 나의 가족을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기록할 것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의 윤리를 탐구하는 집단의 유서,

그것이 내가 앞으로 써 내려가야 할 새로운 문장이다.

삶을 기록하는 일은 결국,

사랑을 남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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