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모든 것, 가족
회사의 초석을 다지던 시절,
그는 공장과 샘플실을 오가며 밤낮없이 몸을 불살랐다.
그런 와중에, 사장과 직원이라는 경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주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여직원이었으며,
훗날 그의 아내가 되었다.
두 사람은 일터에서 눈빛을 나누었고,
땀에 젖은 하루가 저물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곤 했다.
그 사랑은 마침내 결혼으로 이어져,
1남 1녀를 품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은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이었다.
회사는 끊임없이 흔들렸고, 생활은 늘 빠듯하기만 했다.
때로는 집안에 현금 한 장 내어줄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런 순간에도 그의 아내는 단 한 번의 원망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을 품에 안고 키워냈고,
비어 있는 장바구니를 채우며,
묵묵히 그의 곁에서 세월을 견뎌냈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회사의 이름이 ‘상신(相信)’이었듯,
그와 그의 아내의 삶 또한 서로의 믿음으로
함께 지어 올린 여정이었다.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날들 속에서,
서로를 향한 신뢰는 그의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그는 회사의 이름처럼,
가정 또한 믿음으로 세우고 단단히 지켜냈다.
그리고 그 믿음이야말로,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병마와 맞서는 시간
마스크 사업의 실패는 단순히 금전적인 손실로 끝나지 않았다.
2년 동안 피땀으로 모아 두었던 돈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그와 함께 마음의 기둥마저 크게 흔들렸다.
몸은 정직했다.
그가 감당한 고통과 불안이 그대로 건강을 무너뜨렸다.
간에 암이 생겼고, 이제는 1년에 두 번꼴로 색전술을 받아야 했다.
간으로 들어가는 영양 공급 혈관을 차단해
암을 억제하는 시술.
의사 앞에 앉을 때마다 그는 무겁게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회복했지만,
해가 지날수록 기운은 더디게 돌아왔다.
“한 해, 한 해 색전술을 받을 때마다
회복이 점점 늦어지는 게 느껴져요.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은 게 참 많은데,
기운이 없으니 그게 제일 아쉬워요.”
그의 목소리에는 담담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여행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움직일 수 있을 때는
꼭 가족과 함께 어딘가로 떠나려고 해요.”
삶은 수없이 무너뜨렸지만,
그는 좌절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 남은 힘은 집요한 생의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재봉틀을 다시 돌려 세운 것처럼,
병마 앞에서도 그는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삶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었다.
끝없이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단순하지만 가장 강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눈물이 사라진 사람, 그리고 다시 빛난 순간
그를 인터뷰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대화 속에서 그는 누구보다 따뜻했지만,
정작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데는 서툴렀다.
마음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것이
그에겐 낯선 일처럼 보였다.
심지어 말의 결을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어
단어 하나를 바꾸는 일조차,
그에게는 어쩐지 불편하고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삶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지고 살아온 세월 탓일까.
그는 감정을 꺼내어 놓는 대신,
늘 속으로 삭이며 견뎌온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목소리에는 말로 다 담기지 않는 진심이 스며 있었고,
그 침묵 속에 오히려 더 큰 울림이 있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예요.
주변 사람들은 다 울고 있는데,
정작 나는 눈물이 나지 않더군요.
그런 내 모습을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오히려 더 신경이 쓰였어요.
마음은 분명히 아팠는데…
눈물은 끝내 흘러나오지 않았습니다.”
장남이라는 특성, 그리고 가장이라는 무게와 책임감 등
살면서 그를 짓누르는 것들은 많았다,
그 환경 속에서 그의 묵묵한 성향까지 더해져
수없이 느껴지는 감정들을
억누르고 속 안에서 삭히느라고
그는 눈물을 흘리는 방법조차 잃어버렸다.
인터뷰 도중 꼭 굳은 그의 표정이 어떠한 저항 없이
스르르 풀려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그의 손주들 얘기였다.
그는 손주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한없이 행복함에 녹아져 내렸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는 표현이 서툰
우리 내 아버지였다.
자녀들에게 남기는 편지
얘들아,
아버지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단 하나 분명히 깨달은 게 있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지만,
진짜 중요한 건 다시 일어나는 용기라는 거다.
아버지의 인생이 바로 그 증거다.
얘들아,
서로가 할 도리를 다하며 살아라.
각자가 맡은 길은 스스로 걸어야 한다.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기 몫은 반드시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아버지가 온몸으로 배운 게 바로 자립심이다.
너희도 결코 잃지 말아라.
그리고 꼭 기억해라.
인생은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달콤한 날 뒤에는 쓴 날도 반드시 온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니 주어진 기쁨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누려라.
좋은 건 그냥 좋은 대로 받아들이며 살아라.
아버지가 끝내 붙잡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한 진리,
그 말은 바로 “뭐든 좋은 게 좋은 거다.”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시술을 받을 때마다 회복이 더뎌지고,
기운이 부족해 가족과 더 많은 여행을 하지 못하는 게
늘 아쉽다.
그래도 움직일 수 있을 때는 반드시 움직이려 한다.
좌절하지 않고, 오늘 하루라도 한 발짝 더 내디디려 한다.
얘들아, 지혜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그것뿐이다.
눈물로 시간을 흘리기보다는, 그 시간에 앞으로 나아가라.
아버지가 평생 보여주고 싶었던 건 바로 그 삶의 태도다.
나는 세상에 이름을 크게 남긴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많이 쓰러졌고, 그만큼 많이 다시 일어났다.
너희도 언젠가 인생의 무게에 눌려
주저앉고 싶을 날이 올 것이다.
그 순간, 아버지를 기억해라.
끝내 포기하지 않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섰던 사람.
그게 아버지의 전부이고, 너희에게 남기고 싶은 유산이다.
사랑하는 너희의 아버지가.
그의 딸이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까무잡잡한 피부도 느리지만 꼼꼼하고
신중했던 성정도 닮아있던
나는 아버지를 많이 존경하고 닮고 싶었어요.
화가 나는 순간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하는 모습이,
가방끈이 길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박학다식함이,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는 빛을 내는 아버지의 현명함이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옛날 어느 아버지들처럼 무심한 듯했지만
길을 걸을 때 서로의 뒷주머니에
손을 꽂고 걸었던 기억들은
저에게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있어요.
언젠가 꼭 효도하겠다며 미루던 사이,
아버지의 건강이 조금씩 기울어가는 걸 보며
세월의 발걸음이 야속하고,
그 미룸이 참 많이 후회됩니다.
아기자기한 딸을 갖고 싶어 했던 아버지에게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하지 못한 불효녀지만
이렇게라도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무리해서 부탁드렸어요~
그리고 말로 못한 마음을 이렇게 글로 표현해 봅니다.
아버지가 듣고 싶었던 그 말 글로 먼저 전해요!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큰딸 아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