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비가 내리고 조금은 선선하게
여름의 중간을 지나가는 목요일 오후
금천구에서 한용희님을 만났다.
자글자글하게 말린 파마머리가
햇빛을 받아 은빛 결을 드러냈고,
셔츠 깃은 단정히 세워져 있었으며,
양복바지는 한 치의 주름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얼굴이었다.
세월의 골이 살짝 스민 눈가와,
웃을 때 곱게 패이는 잔주름 속에
이상하리만치 맑고 젊은 기운이 숨 쉬고 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안의 미소,
그 미소에서 퍼져 나오는 따뜻한 기운은,
마치 세월 속에 묻혀 있던 한 순간이 불현듯 되살아나
눈앞에서 조용히 빛을 내는 듯했다.
그는 묘하게도, 중후함과 젊음이
같은 얼굴에 공존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만난 식당은 고즈넉한 느낌의
잔잔한 재즈음악이 흐르는
파스타 집이었다.
화려하게 내려와 있는 샹들리에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의 눈동자엔
호기심이 가득해 보였다.
조금은 긴장된 인터뷰 분위기였지만
이내 우리는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어린 어깨 위의 삶
그는 1953년 7월 18일 충청북도 중원군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 당시 6.25 전쟁 피난길에
그의 형이 세상을 뜨면서
그는 누나를 뒤이어 집안의 장남이 되었다.
그 시절, 백여 곳이 넘는 이 씨(李氏) 집성촌 한가운데,
‘한(韓)’ 씨는 오직 두 집뿐이었다.
윗동네에는 박식하기로 이름난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선비로서 마을의 기둥처럼 살고 있었고,
아랫동네에는 그의 집이 자리했다.
아랫동네는 네 집이 전부였다.
마을 중심에서 비껴나, 외지게 떨어진 자리.
길 하나를 건너려 해도 한참을 걸어야 했고,
저녁이면 풀벌레 소리만이 그곳을 가득 메웠다.
그래서였을까.
같이 땀을 흘리며 뛰놀 또래 친구 하나 없이,
그의 어린 날은 늘 고즈넉하고 고립된 풍경 속에서 흘러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건너오면,
그는 마치 다른 세상의 소리를 엿듣는 듯,
그 자리에 멈춰 서곤 했다.
그의 아버지는 가정적이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새벽부터
논으로 나가 흙냄새와 땀으로 하루를 채웠지만,
아버지는 집보다는 바깥일에 더 마음을 쏟았다.
그 탓에 어머니의 손등에는 늘 굳은살이 박였고,
웃음보다 한숨이 먼저 배어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는 큰돈을 벌 기회가 참 많았어요.
그런데도 여러 일을 벌여 놓고는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으셨죠.”
그중 하나가 출판사에서 받아온 『동아수련장』이었다.
충청북도 시골 학교마다 책을 나눠 주고,
가을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 무렵에
학교를 통해 수금을 하는 일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중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했다.
수금을 약속했던 날 아버지의 친구는
돈을 챙겨 홀연히 사라졌다.
아버지에게 남겨진 것은 빚과 재판뿐이었다.
그 재판은 무려 10년이나 이어졌고,
담보는 아버지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무게는, 한 치도 덜어지지 않은 채
어머니의 어깨 위로 옮겨졌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온갖 일을 도맡았다.
장남이었던 그는 자연스레 동생들을 돌보는 몫을 맡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누나가 있어 그 짐을 반쯤 나눌 수 있었다는 것.
“나는 키가 좀 작았어요.
근데 신기하게도, 그게 놀림거리가 되진 않았죠.
왜냐면 공부를 잘했거든요.
애들이 ‘야, 너 키 작다’ 이러는 대신
‘쟤는 공부 잘하는 애’로 기억했죠.
그래서 학교생활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어요.
작은 키였지만, 존재감은 꽤 컸거든요.”
친구들은 장난을 치면서도 그를 인정했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가장 먼저 찾아갔다.
키는 작았지만, 그가 교실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결코 작지 않았다.
“우리 집이 잡화점을 했어요.
학교 앞이라 운동회 날이면 바닥에 비닐을 펴놓고 장사를 했죠.
그때는 경주보다 장사가 먼저였어요.
뛰던 다리를 멈추고 친구들한테 물건을 팔기도 했거든요.”
잡화점 한쪽에는 드럼통이 있었고,
그 안엔 석유가 가득 담겨 있었다.
“석유도 팔았어요. 됫박이 통에 담으려면 펌프가 없으니까,
빨대 같은 호스를 입에 물고 빨아야 했죠.
잘못 빨면 석유가 입안으로 쑥 들어오는데,
그걸 다시 뱉고 또 옮기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장사와 노동의 냄새를 온몸에 배게 하며 자랐다.
어머니의 거친 손과, 입안에 남았던 석유의 쓴맛이,
그 시절을 고스란히 증언해주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