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생 임영숙(2)

by 진키

가장이 되다.

어느 날 남편의 살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이 사람이 표정에 근심이 가득한 거예요.

뭔가 고민이 많아 보이고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세상에 월급으로 놀음을 해서

돈을 다 날리고 당장 가져다줄 생활비는 없고,

돈을 빌려준 사람은 남편을 독촉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걱정이 안 되고 배기겠냐고요"

그렇게 남편과의 다툼 끝에 그녀는 집을 나갔다.

갈 곳이 없어, 발길이 향한 곳은 언니의 집.

"언니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잤는데

딸이 우유도 안 먹고 밤새 울었나 봐요.

애가 진짜 죽을 거 같으니까 남편이

언니 집으로 전화가 왔어요.

다 잘못했으니 집으로 돌아오라고요"

그렇게 아이들 생각에 그녀는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녀의 남편은 성실했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의지가 되는 가장은 아니었다.

살기 위해선 그녀가 직접 벌어야 했다.

아파트 소독이며, 일당 일자리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집안에 보탬만 된다면, 몸을 사릴 이유도 없었다.

다행히 그녀가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시어머님이 봐주셨다.

아이들의 재롱이 한참 귀여울 그 시기 시어머니는

노인정에서 있던 에피소드를 자랑삼아

딸과 며느리 앞에서 풀어놓았다.

"두 돌 된 딸애가 어머님 등 뒤에 업혀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노래 부르시면

장단을 맞추면서 춤을 추더래요.

'얼시구 절시구' 하면 등 뒤에서

'차차차'라고 추임새 넣으면서요.

그 얘길 들으시고 우리 형님이

'우리 엄마한테 애 맡기면 안 될 거 같으니까

올케가 일 관두고 애들 봐'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게 됐어요"

7년간의 재봉틀 기술을 경험 삼아

그녀는 인형옷을 대량으로 받아 집에서 재봉틀을 했다. 층간소음의 영향으로 밤에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인형 옷을 만들어 놓으면 그 옆에서

그녀의 딸은 만들어진 인형 옷을 자신의 인형에

입혀가며 혼자 놀았다.

그렇게 부업으로 번 돈으로 아이들의 유치원을 보내고 생활비를 대며 악착같이 살았다.

기댈 곳 없고,

도망갈 곳 없는 현실 속에서

그녀는 더는 ‘엄마’만이 아닌,

가장이 되어야 했다.

무너짐과 다시 서기

막내 동생과 함께 시작했던 초창기 카페.

사업은 순풍을 탔고, 수익도 좋았다.

그땐 정말, 돈 걱정이란 게 없었다.

예체능을 전공하는 딸의 교육비도 거뜬히 감당할 수 있었고,

집 평수는 점점 넓어져

결국 40평대 아파트로 이사까지 갔다.

삶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

생활엔 풍족함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행은 언제나 방심한 틈에 비집고 들어왔다.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막내 동생의 욕심이 점점 커졌고,

그 기세는 빠르게 집안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그녀의 삶을 덮쳤다.

하루아침에 가세가 기울고,

집 대문에는 차압 딱지가 붙었다.

믿었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야 했다.

카페를 접고,

이번엔 낙지 가게로 재기를 꿈꿨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차가웠다.

의지는 있었지만,

현실은 냉정했고,

꿈은 번번이 어긋났다.

결국, 남의 가게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그땐 정말…500원짜리 주차료가 없어서

차를 대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선 적도 있어요.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어요.

근데요, 내가 누워 있으면 뭐 하나 싶더라고요.

가만있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안 하면, 해줄 사람도 없잖아요.”

그때도 남편은,

언제나 그랬듯 대외 활동으로 바빴다.

집 안보다는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고,

경제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첫 번째 조건은

'남편에게 기대지 말 것'

그래서 더 악착같이 버텼다.

그 시기,

그녀에게 남아 있던 건

낡은 차 한 대뿐이었다.

하지만 그 차 한 대가

그녀의 두 발이자

희망이었다.

그 차를 몰고

남들보다 멀리, 더 멀리

일감을 찾아 나섰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새벽이든 밤이든, 어디든 달려갔다.

성실하게, 꾸역꾸역.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눈물도, 땀도 삼켜가며

그녀는 다시, 살아내기 시작했다..


<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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