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생 임영숙(3)

by 진키

배움에 대한 갈증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사우나였다.

매일 사우나를 다니면서 경락 마사지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비용이 결코 저렴하지 않은 것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내가 배워서 직접 하면 수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경락마사지 학원에 등록하려고 했더니

다들 나보고 너무 늦었다고 했어요.

나보고 다 늦었다고 하면

도대체 나는 언제 무엇을 시작해야 하죠?

나는 아직 건강한데 가만히 놀고 있을 순 없잖아요.

뭐라도 배우고 머리를 쓰면서 돈을 벌어야죠.

내 아이들에게 짐이 될 순 없으니까요."

모두가 늦었다며 그녀를 외면할 때,

그녀는 외국인 친구에게 밥을 사주고,

돈을 주며 하나씩 기술을 배워나갔다.

유튜브 영상까지 찾아보며 홀로 연구했다.

그 누구도 손 내밀지 않을 때,

그녀는 혼자서 기회를 찾고 배움을 이어갔다.


"반찬 가게를 하면서 배달을 다니던 때,

노인들이 공부하는 곳을 자주 봤어요.

너무 부럽더라고요.

나도 평생학교 같은 곳에서 배우고 싶었어요.

인생이 심심하다고,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답답해요.

컴퓨터도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늙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그녀는

오히려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늙는 걸 두려워해요.

젊음을 유지하려고 뷰티에 많은 돈을 쓰죠.

이제 나도 나이가 있으니 손으로 힘쓰는 일을

오래 하기 어려워요.

대신 직원을 두고 피부 전문샵을 열어보려 해요.

지금까지 배운 것들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어요."


그녀의 모든 것, 아이들

어린 시절 그녀는 부모에게 무엇 하나 요구하지 못했다.

수학여행도, 공부도 허락되지 않았다.

"내 자식에게는 뭐든 다 해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먹고살기 바빠 아이들과

여행을 자주 다니지 못했어요.

그래서 걸스카우트와 보이스카우트를 보내며

아이들에게 말했죠.

너희끼리라도 여행하고, 세상을 보고 배우라고."

오직 아이들을 위해 그녀는 온전히 헌신했다.

남편에 대한 원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시집·장가 갈 때

옆에 함께 있어준 것만으로도

잘 견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밉고 원망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마운 점이 참 많아요.

남편도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리고 남편이 손재주가 좋아 집안의 모든 것을 고쳐줬어요.

덕분에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었죠.

다만 우리가 조금 더 열심히 모았더라면

아이들에게 남겨줄 것이 많지 않았을까,

그것만은 아쉬워요."

한 번은 딸이 울며 힘들다고 전화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모든 건 네 마음에 달렸다고.

변화는 스스로 깨달아야만 온다고.

공부에도 시기가 있는 법이니,

빚을 내서라도 배울 수 있을 때 배워야 한다고."


자녀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사람들은 흔히 효도는 어릴 적에 다한다고 하더구나.

나도 너희들이 어릴 때 내게 준

사랑과 효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단다.

이제 너희도 모두 부모가 되었으니,

그저 너희들의 아이들을 잘 보살피며,

서로 의지하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너희들도 몸과 마음을 잘 챙기며 지내야 한다.

인생이란 것이 꼭 애써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더구나.

때로는 흘러가는 대로,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마음 편할 때도 있단다.

누구에게도 나쁜 마음을 품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언제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라.

모든 잘못과 선행은 결국 너희에게 다시 돌아온단다.

나 또한 너희들 앞에서 떳떳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했단다.

한때 너무 힘들어 점을 봤던 적이 있었지.

그때 점쟁이가 말하길, 자식들이 잘될 것이니

조금만 더 힘내라고 하더구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으니,

어떤 어려움이 와도 두려워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너희들은 각자 재능도 많고 꿈도 많다.

그러니 배우자에게만 기대지 말고,

너희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거라.

배우자에게 짐이 되지도 말고,

스스로를 가능성에 가두지 말고,

너희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서기 위해

늘 배우고 성장하기를 멈추지 말거라.

남은 인생, 나도 내 삶을 소중히 여기고

즐기며 살려고 한단다.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희들도 너희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렴.

언제나 너희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엄마, 임영숙씨

글을 쓰다가 울었다.

엄마의 마음을 적는데 자꾸만 내 삶이 겹쳐졌다.

엄마가 되어보니 그때의 엄마는 어땠을지,

그때 엄마의 지혜를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내가 어릴 때 누렸던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 욕심에 차지 않으면 늘 엄마를 원망했다.

좀 더 여유로운 부모 아래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내 삶이 조금 더 나아졌을까.

엄마의 사업이 무너진 후,

집에 붙은 압류딱지를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내 노트북 뒤에 붙어 있던 그 딱지가

행여 누군가에게 보일까 두려워

나는 급히 주변을 살피며 엄마에게 전화해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에도 엄마는 담담히 말했다.

"괜찮아, 해결될 거야. 다 잘될 거야."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순간 엄마가 얼마나 두려웠을지.

그리고 두려운 마음을 눌러가며

딸을 안심시켜야 했던 그 마음을...

엄마는 단 한 번도 엄마 자신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

사업의 확장도, 무너짐도 엄마의 의지가 아니었다.

엄마의 젊은 시절은 동생들을 위해,

엄마의 중장년은 오로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꿈꾸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그때,

나는 오직 엄마만을 원망했다.

엄마는 한 번도 누군가를 아프게 한 적이 없었다.

늘 우리를 먼저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를 미워했다.

못되게도, 내가 엄마를 미워한 이유는 단순했다.

비 오는 날 학교에 데리러 오지 못하는 엄마라는 이유로..

금전적으로 원하는 모든 걸 해줄 수 없는 엄마라는 게 이유였다.

여유롭고 반짝이는 친구들을 보며

나만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팠다.

유학을 떠나는 친구들, 좋은 차를 타는 친구들,

나는 그 모든 것을 누리지 못했다.

그게 너무 속상했다.

그 후 내게는 모든 일에 핑계가 생겼다.

집이 더 여유로워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나아졌을까.

하지만 내가 부모가 된 지금, 나는 안다.

그건 그저 핑계였다는 것을.

내 가능성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변명이었다.

엄마에게서 받은 긍정의 힘은

이제 나를 지탱하는 큰 축이 되었다.

"차가 있어서 이동할 수 있는 게 감사하지 않니?”

"비가 올 때 피할 집이 있어 감사하지 않니?”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니 감사하지 않니?”

엄마는 좋은 차나 넓은 집,

자녀의 성공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집안이 어려울수록 엄마는

더 밝은 옷을 입었고, 더 많이 웃었다.

누군가의 험담에도 단 한 번도 동조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 각막이 심하게 부어 눈을 뜰 수 없던 날,

새벽이라 병원조차 갈 수 없어 울며

소리 지르던 나를 보며 엄마는 말했다.

"괜찮아, 너는 착해서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밤새 내 침대 곁을 지키며 엄마는 주문처럼 말을 걸어줬고,

그 소리는 어느새 자장가가 되어 나를 잠들게 했다.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각막의 부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무심한 듯, 그러나 변함없이 내 옆에 있었다.

언젠가 잠든 엄마 옆에서 나는 기도했다.

"다음 생엔 엄마가 꼭 내 딸로 태어나 주세요."

이번 생에 받은 사랑을 다 갚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지금도 힘든 순간마다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의 지혜와 사랑으로

나는 점점 엄마를 닮은 엄마가 되어간다.

엄마와 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엄마가 더 오래 내 곁에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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