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을 만드는 남자
공무원이 되어 서울로 올라간 사촌형을 따라
그는 17살의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상경했다.
“시골에서만 살다가 서울에 올라왔는데
아는 게 뭐가 있었겠어요.
라디오로만 듣던 것들을 이때 처음 눈으로 봤죠.
그런데도 크게 놀라진 않았어요.
그냥 ‘아, 이런 데도 있구나’ 하고 넘어갔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는 모든 것이 신세계로 느껴질 도시였지만,
그는 담담했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견뎌낸 사람이었다.
그 시절 가장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기사’와 ‘양복집’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의 손을 잡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서울 한복판의 양복점 문을 두드렸다.
당시는 가발 붐을 이어
양복점이 거리마다 문을 열던 시기였다.
그는 신설동 ‘라사라 양재학원’에서 재단과 패턴을 배웠다.
양복 상의를 만드는 사람과
바지를 만드는 사람은 엄격히 나뉘었고,
맨 밑자리에서 부자재 심부름과 바지 제작을 함께 배웠다.
그러나 여름이 오면 양복집은 한산했고,
일거리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때 마침, 구로동에서 보세 의류를
만들고 팔던 누나가 그를 불렀다.
산업단지 옆 수출다리에서 일하던 누나는
그에게 재단실 취직을 권했고 그는 그간의 경력이 인정되어
더 높은 급여와 직책으로 회사를 옮기게 된다.
당시 공장은 봉제반과 재단반이 철저히 구분되어 있었으나 그는 패턴 수정부터 재단, 봉제까지
모든 공정을 소화할 수 있었고
불량이 나면 빠르게 해결 할수 있었다.
덕분에 관리자 대우를 받는건 물론
여성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를 아끼던 간부들은 그의 뛰어난 능력과 성실함을 높이 사,
새로 설립하는 공장으로 그를 영입했다.
그렇게 그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에 발을 내딛게 된다.
相信(상신) “서로 믿고 함께 만든다”
모든 일에는 언제나 갈증이 찾아온다.
그는 안정된 자리에서 기술자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제는 내 이름으로, 내 힘으로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서른두 살,
그는 과감히 회사를 나와 독립을 선언했다.
그가 세운 회사의 이름은 상신(相信).
‘서로 상(相)’과 ‘믿을 신(信)’을 합쳐
“서로 믿고 함께 만든다”,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옷 한 벌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은 샘플실이었다.
각 회사에서 의뢰한 디자인을 받아,
샘플을 제작해 주는 일.
패턴을 뜨고, 원단을 재단해,
실루엣을 잡아가는 과정은 고되고 세밀했으나
그는 그것이 즐거웠다.
샘플 제작이 자리를 잡자,
그는 생산라인과 공장까지 확장했다.
기술자들을 모으고, 라인을 꾸리고,
옷이 쏟아져 나오는 기계음 속에서 회사는 점점 커졌다.
하지만 성공의 그림자는 언제나 불시에 드리웠다.
그가 믿고 맡겼던 책임자가 기술자들을 이끌고
다른 회사로 떠나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라인은 멈췄고, 납기는 깨졌으며,
거래처의 신뢰는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공백은 곧 ‘부도’라는 단어로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보증금조차 낼 수 없을 만큼
바닥까지 내려앉은 상황.
기계는 멈췄고, 한때 북적이던 작업장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는 다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거대한 생산라인도, 수십 명의 인원도 없었지만
샘플실이라는 작은 공간은 남아 있었다.
그곳은 그에게 마지막 남은 배와도 같았다.
의뢰가 들어오면 밤을 새워서라도 완성했고,
한 벌 한 벌, 책임감 있게 마무리했다.
품질은 여전히 완벽했고, 거래처는 그를 잊지 않았다.
그는 고객과 직접 마주 앉아 원단을 고르고,
패턴을 수정하고, 한 땀 한 땀 재봉하며 다시 신뢰를 쌓았다.
거래 규모는 예전보다 훨씬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모든 과정을 자신의 손안에 쥘 수 있었다.
작지만 단단한, 그만의 작업 방식이 다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태어난 옷들이 회사를 키웠고,
마침내 남은생 아내와 여행을 다닐 만큼의 자금을 마련했다.
그동안의 땀과 인내가 결실을 맺어,
남은 노년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다.
마스크가 필수가 되자 주변의 권유로 마스크 사업에 뛰어들었다.
잠깐 해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였지만,
단 2년 만에 시장은 포화됐고 재고와 손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가 쌓아 올린 시간과 자금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텅 빈 작업실에서 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처음 봉제 일을 시작하던 날처럼
다시 재봉틀 앞에 앉았다.
그의 손이 페달을 밟고,
바늘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듯했다.
“무엇이든 단기간에 하는 건 성공하기 어려운것 같아요.”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는 게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여러 번 무너진 인생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혜가 뭐가 있나요. 그냥 좌절하지 않을 뿐이죠.
고민하고 슬퍼할 시간도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무조건 움직이는 것이 나에겐 새로이 일어나는 힘이었어요.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에 그저 주저앉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그 말속에는 화려한 수사보다 더 강력한,
삶의 체온이 묻어 있었다.
그는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수없이 넘어져도 바늘을 다시 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손끝에서, 또다시 한 벌의 옷이 조용히 완성되고 있었다.
<다음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