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생 김광선(3)

by 진키

삶이라는 길 위에서

그의 삶은 늘 낯선 도시의 문을 두드리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군대 제대 후, 이전한 그의 회사를 따라

안산에 첫발을 디뎠다.

낯선 도시였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뛰어난 손재주로

이내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나갔다.

공장 안에 울려 퍼지는 기계음 속에서

그의 손길은 빠르고 정확했다.

그 손길 하나로 생산부터 관리, 기계 수리까지

공장의 모든 업무가 그를 통해 움직였다.

승진은 빠르게 따라왔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할수록 그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끝없는 인력난과 쌓이는 스트레스 속에서,

그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대로는 내가 견디지 못하겠다.”

회사의 간절한 만류에도 그는 택시를 선택했다.

자신의 손과 발로 직접 뛰는 일을 선택한 건

노후를 위한 결단이었다.

그는 밤낮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고,

도시의 불빛이 스쳐 가는 풍경 속에서,

그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었다.

모범운전자라는 타이틀은 그의 성실함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택시 일을 하던 중 지역에 상록경찰서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그는 경찰서 초대 총무부장을 맡으면서

지역사회에 깊게 스며들었다.

경찰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이웃들의 애경사를 챙기며

그의 일상엔 조금씩 따스한 온기가 더해졌다.

삶이 안정되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폭풍을 몰고 왔다.

한밤중 12시 반, 그날은 유난히 어둡고 적막했다.

택시를 인수받으러 가던 그의 차가

비보호 좌회전을 하던 순간,

어둠 속에서 시속 70~80km로 달려오는 차량이

그를 향해 쏜살같이 다가왔다.

순식간이었다.

굉음과 함께 세상이 멈춰 섰다.

그 찰나의 충돌로, 그가 평생 성실하게 쌓아온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한순간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그는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깊은 절망과 회의감에 빠졌다.

억울함과 좌절이 뒤섞인 채,

한참 동안 어두운 도시의 불빛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어두운 도시의 밤을 수없이 달리며 되새겼던 자신의 꿈과 희망을 그는 아직 놓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택시 일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안산도시공사에서 새로운 자리를 얻으며

그는 또 다른 삶의 챕터를 열었다.

인생이 다시 한 번 손을 내민 것이다.

그의 삶은 그렇게 늘 흔들리고 부딪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넘어질 때마다 오히려

더 단단히 땅을 딛고 일어섰다.

세상이 그를 넘어뜨릴 때마다, 그는 더욱 강해졌다.

흔들림 끝에 찾아온 단단한 자신만의 자리에서

그는 여전히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쉽게 포기했을지 모를 길 위에서,

그는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삶과 마주한 그는,

어느덧 자신만의 강인한 서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

유난히 불안하고 촉이 좋지 않은 날이 있다.

하늘은 무겁게 가라앉았고, 마음도 덩달아 어둡고 불안했다. 그날 아침도 꼭 그랬다. 그는 몇 번이고 어머니에게

외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유 없이 가슴이 덜컹거렸다.

그런데 교대를 하려던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길에서 넘어지셨다는 다급한 소식이었다. 어머니는 그날 고관절 골절로 쓰러지셨고,

그렇게 길고 고된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유방암이 있으셨던 어머님의 항암 치료까지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몸은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그는 병원에서 작은 침대 하나를 펴고

어머니 곁에서 쪽잠을 잤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찾으실까,

언제든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옮겼다.

그리고 그는 그날부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병실까지 걸리는 시간을 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을 반복했다.

빠르게 걸으면 몇 분, 천천히 걸으면 몇 분.

평균적으로 그 거리는 7분이 걸렸다.

“언제 위독해지실지 모르니까요. 어머님 한테 갈때

여러번 시간을 쟀어요. 전화가 오면

제가 바로 뛰어갈 수 있게 연습했어요.

우리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은 꼭 제가 봐야 하니까요.”

살아오면서 큰 효도 한 번 제대로 못 해드렸다는 후회가

그의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만큼은 곁을 지켜드리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결국 그토록 두려워하던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많이 위독하십니다. 지금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수없이 걸었던 그 길을, 이번엔 차마 시간을 재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뛰었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떨리는 손으로 잡아본

어머니의 손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너무 미어져요.

사람이 죽어도 한동안은 체온이 남는다잖아요.

근데 우리 어머니 손은 차갑더라고요.

그래서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혹시 그 전날 이미 돌아가셨던 게 아닌가.

병원에서 너무 늦게 인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자꾸만 저를 괴롭히죠.”

그의 눈빛엔 깊은 후회와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지켜드리고 싶었건만,

그는 끝내 그 순간을 놓쳤다.

어머니를 위해 평생을 준비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는 자책이 여전히 그를 아프게 했다.


삶이 다시 주는 작은 기쁨들

이제 그의 곁엔 새로운 기쁨이 있다.

아이들은 각자의 둥지를 꾸리며 떠났지만,

아내와 고양이 ‘레옹이’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녀석이 꼭 사람 같아요. 하루 종일 집안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제 옆을 지켜줘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그의 삶에 작은 온기를 더했다.

때로는 손녀들이 놀러 와 그의 무릎에 앉아 재롱을 부린다.

“옛날엔 먹고사는 게 바빠서 가족들 얼굴 볼 틈도 없었죠. 이제는 달라졌어요. 가족들과의 이 시간이 정말 귀해요. 요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내년이면 그는 칠순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후 한 번도 떠나지 못한 가족여행을 이번 칠순에 계획 중이다.

새로 온 며느리와 사위까지 합세하여 북적이는 가족여행을 생각하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한때 네 명이 둘러앉던 소박한 식탁은

이제 상을 두 개나 펴야 할 정도로 풍성해졌다.

“이렇게 가족이 많아지고 북적이는 게 꿈만 같아요. 이 나이에 와서야 비로소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죠.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나려는 순간,

그는 서랍 속에서 낡은 책 한 권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누렇게 바랜 표지의 책, 바로 『거기 낙엽』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평생 자신만을 위해 남긴 기록이었다. 그 기록 속엔 그가 걸어온 삶과 꿈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 책이 이제 마지막 한 권 남았어요. 많이 읽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참 행복해요.

누군가에게 보여줄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좋은 인생을 산 거죠.”

그의 얼굴에는 처음 본 순간보다 더 깊고 따뜻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퍼지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는 결국 삶의 모든 시련과 슬픔을 견디고 일어나, 조용히 빛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김광선, 내 아버지

김광선, 그는 내 아버지다.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나는 내 아버지를

처음으로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주 앉았던 그날, 나는 오래도록 품어온 미움과 오해를 비로소 내려놓았다.

어린 시절 내게 아버지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그 벽 앞에서 나는 자주 울었고, 숨어버렸고, 등을 돌렸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내가 어른이 되어

다시 바라본 아버지의 얼굴엔, 슈퍼맨 같은 위엄도

두려운 기운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엔 내가 처음 마주하는 한 노인의 얼굴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아픔만을 보듬으며 자라났다.

늘 어머니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어머니의 입장에서만 아버지를 판단했다.

그런데 이번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아버지의 깊은 상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내 아버지도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상처받은 남편이었으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고 묵묵히 견뎌왔던

사람이었음을..

인터뷰 도중 문득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 지금 내 나이였던 시절의 아버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철없이 아버지를 원망하던 바로 그 나이에,

그는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흔들리고,

또 얼마나 막막했을까. 나와 다르지 않았을

그의 젊은 날의 모습에 마음이 저렸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철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때의 내 아버지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의 나보다 더 단단하게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 곁엔 이제 두렵고 미웠던 아버지가 없다.

대신, 자녀를 키우느라 여전히 서툴고 흔들리는 딸을

말없이 응원해 주는 한 노인이 서 있다.

묵묵히 등을 토닥여주고, 조용한 눈빛으로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 아버지다.

우리는 오랜 오해 끝에 마침내 서로의 손을 잡았다.

나는 이제 그가 평생 마음속 깊은 곳에 품어온 꿈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으려 한다.

누렇게 변색된 오래된 책 『거기 낙엽』을 다시 열고,

내 손으로 아버지의 꿈과 기억을 다시 정리할 생각이다.

지금이라도,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다.

그가 앞으로 건강하게 내 곁을 오래 지켜주길 간절히 바란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늘 나를 응원해 준 그를,

이제는 내가 응원하려 한다.

내 아버지, 김광선의 남은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keyword
이전 07화57년생 김광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