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생 김광선(2)

by 진키


군대, 처음 쓰는 이야기

입대 당시 훈련소에는 머리를 깎지 않고 들어온 이들이 서른에서 마흔 명쯤 되었다.

"조교들이 '머리 깎을 줄 아는 사람 손들어!'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손재주가 좋으니까 손을 들고서는

손으로 하는 건 자신 있다고 얘기했죠.

그러고 4주 동안 그렇게 훈련병들 이발을

책임지게 되었어요"

처음 손에 쥔 이발 도구였지만, 금세 그의 손에 익었다.

서툴던 손길은 점점 능숙해졌고,

그 실력은 자연스레 주변의 인정을 받았다.

훈련소 마지막 즈음엔 연대 장교 이발소로 차출되었고,

4주 동안 갈고닦은 솜씨로 조교들의 머리까지 도맡게 되었다.

그의 손끝은 어느새, 머리칼 너머 마음까지 다듬고 있었다.

당시는 수도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물지게에 지고

이발소까지 날라야 했다.

손발은 늘 젖어 있었고,

허리는 자주 굽어 있었지만 자부심을 느꼈다.

상병 무렵, 이발소 근무 틈틈이 생긴 시간 속에서

그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심히 시작한 글이었지만,

전우신문사에 보낸 수필이 최우수작으로 선정되면서 일주일간의 특명 휴가를 받게 된다.

이후 그는 전우잡지 요원으로 발탁되었고,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며

여러 차례 당선되는 영광도 누렸다.

그의 군생활 도중 학생운동과 광주민주화운동이 터지게 되면서 그는 앞선 기수보다 일주일이 늦은 81년 10월 27일에 제대하였다.

첫 연애, 그리고 결혼

당시 군대에서 펜팔의 인연으로 연락을 하던

몇 명의 여성들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후처를 보았다는 것이 걸림돌이 되어

그 인연은 계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누나의 주선으로 선을 보게 되었다. 1983년 10월 28일이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마음이 고운 사람이었다.

말수는 많지 않았지만, 눈빛은 단정하고 따뜻했다.

선을 본 지 꼭 1년이 되던 날인 1984년 10월 27일,

두 사람은 약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1985년 3월 10일, 노동절 아침,

이화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그는 기숙사 생활을 접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신혼을 시작했다.

단둘이 꾸리는 신혼이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그것 또한 삶의 일부였다.

이듬해인 1986년 1월 10일, 아들이 태어났다.

밥도 잘 먹고 순하디 순해 손이 많이 가지도 않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든든한 아들이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려는 아이였고, 그래서 늘 기특했다.

1년 반 뒤, 1987년 7월 7일에는 딸이 태어났다.

큰 눈에 애교도 많고, 참 예쁜 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란 말이 실감 날 정도로,

그의 눈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의 딸은 유난히 그의 작은 재주들을 많이 닮아 아이가 해내는 모든 것들이 그저 뿌듯했다.

롤모델이 될 아버지의 부재로

그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동안 그의 삶을 하나씩 적어 내려오듯

그는 아이들을 위한 글과 사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꼼꼼하게 모은 그 모든 기록들은 성인 되어 떠날

내 아이들에게 커다란 선물이고 자산이 될 거라고 믿었다. 유난히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그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핑크빛일 줄 알았던 그의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순탄하진 않았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 고부간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두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고,
그는 그 틈에서 어느 쪽의 손도 쉽게 잡지 못했다.

가부장적인 생각에 익숙했던 그는
아내가 조금 더 어머니를 이해해 주길 바랐지만,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결코 물러서지 않는 고집스러운 분이었다.

조율은 점점 지치고 버거운 일이 되어버렸다.
무슨 말을 해도 오해가 되고,
그 말들은 결국 아내에게 상처로 남았다.


"그래도 아내가 조금은 어머님을

이해해줬으면 했던 마음이 있었죠.

근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우리 때만 해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면

다 듣는 세대였는데...

와이프도 상처가 깊고 고집도 쌨던 거 같아요.

둘을 더 이상 화해시킨다거나 이해시킨다기보다는

나중엔 그냥 내버려 두게 된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아내에게 내가 상처를 준 부분도 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미안하죠"


아들도 남편도 아버지도 모든 게 처음이었던 그였던지라 본의 아니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가족들은 서로를 안았다.


그의 꿈 『거기 낙엽』

2003년 우연히 그의 시를 본 회사 사무부장이

그에게 시를 엮어서 책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한다.

책에 대한 모든 인쇄비용을 그가 내겠다는 조건이었다. 당시엔 출판사로 연계하여 책을 내는 루트를 알기가

쉽지 않았고 책장에서 무한의 잠을 자는 자신의 글들이 그렇게라도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것이

그에게는 설레는 일이었다.

그렇게 『거기 낙엽』이라는 그의 시집이 인쇄되어 비공식적인 책으로 엮어진다.

그 작은 책 한 권에도 그는 심장이 벅차올랐다.


"당시에 나오자마자 여기저기 선물도 하고

함께 나눠서 읽고 했었어요.

내가 우리 딸한테 그랬어요.

나 죽으면 내 심장 위에 이 책 한 권 올려서

화장시켜 달라고요.

지금 이 책이 딱 한 권 남았거든요.

습기 때문에 상태도 좋지 않아요.

그래도 나 죽을 때 이거 한 권 손에 쥐고 가면

여한이 없어요"


그가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은, 그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삶에 치여 잠시 잊고 지냈을 뿐,

꿈은 여전히 그의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은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와,

다시 그를 숨 쉬게 했다.
잊힌 줄 알았던 마음의 온기와 숨결이,

글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다음 회 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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