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생 김광선(1)

빛이 앞서는 이름 光先

by 진키

장마의 시작, 이야기의 시작

습한 기운이 하루 종일 방 안을 맴돌던 어느 여름날,

예고 없이 장마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을 때리는 비소리가 묘하게 정겹던 그 시간,

나는 김광선님을 만났다.

그는 이 인터뷰가 어색하면서도,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다는

사실에 약간은 들뜬 얼굴이었다.

쇼파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천천히 안경을 눈에 올려놓는다.

그러곤 조심스레 자신의 지난 시간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의 깊게 팬 이마와 눈가의 주름들,

하나하나가 긴 인생의 장면처럼 나를 향해 펼쳐졌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조용히 말을 걸기 시작했다.


바다 끝에서 태어난 아이

그는 전라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태어났다.

딸만 둘이 있던 집안에 태어난 귀한 아들.

어머니는 그를 ‘광선’처럼 귀히 여겼고,

세상의 전부처럼 안았다.

그러나 행복했던 유년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가 네 살 되던 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등을 마주했다.

아버지가 상경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린 것이다.

가세는 기울었고, 누나들은 일찍부터

일을 하기 위해 상경했다.

어머니와 단둘이 남은 소년은 스스로를

단단히 다잡기 시작했다.

어느 날 새벽, 그는 아무 말 없이 운동화를 신고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누구보다 멀리 달렸다.

3~4킬로미터를 매일 빠짐없이 뛰었다.

언덕을 넘고, 논두렁을 지나, 이슬에 젖은 들판을 지나며

그는 그저 앞을 향해 뛰었다.

달릴수록 숨이 차올랐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시원했다.

"달리기만큼 솔직한 건 없었어요.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는다는 것,

내가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것,

그게 좋았어요."

그는 그렇게 달렸다.

앞서가기 위해, 세상에 지지 않기 위해,

외로움을 잊기 위해달리는 동안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고요했고, 자유로웠고, 외롭지 않았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자부심이었다.


펜을 든 소년, 글로 세상을 꿈꾸다

중학교도 시험을 봐야 입학할 수 있었던 시절,

그는 수많은 경쟁자를 뚫고 중학교에 합격했다.

하지만 중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학교는 멀었고, 발은 늘 무거웠다.

여름엔 등굣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겨울엔 찬 바람에 손이 얼었다.

그래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다.

바쁜 어머니를 대신하여 젖은 교복을 비벼빨며,

다음날을 준비했다.

그렇게 버텨낸 시간 속에서도

그의 주머니 안에는 언제나 작은 수첩과 펜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바닷가로, 때로는 산으로 향했다.

광활한 바다를 보며, 바람 소리를 들으며

그는 숨쉬듯 글을 썼다.

처음엔 시였다.

점차 소설이 되었고, 시나리오가 되었다.

글을 쓸 때면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쓸수록 그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또렷하게 느꼈다.

그의 글은 친구들의 연애편지가 되기도 했고,

백일장에서는 다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것도.

“글을 쓴다고 밥이 나오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보다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죠.”

꿈은 마음에 남았지만, 발걸음은 생계를 향해 나아갔다.


다시 찾은 아버지, 그리고 또 한 번의 상처

고등학교를 마친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네 공부를 책임지마.”

그 말 한마디에 그는 미련 없이 짐을 쌌다.

어릴 적 기억 속 흐릿했던 아버지.

서울에서 다시 만난 그 얼굴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닮아 있었다.

너무 일찍 헤어진 탓에 원망도, 분노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다시 품에 안긴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은 그가 그려온 그림과는 달랐다.

아버지 곁에는 이미 새로운 가족이 있었고,

이복 형제들과의 사이는 쉽지 않았다.

말 한 마디, 시선 하나에도 날이 서 있었고,

서먹함은 곧 갈등으로 번져갔다.

결국 어느 날, 큰 다툼 끝에

아버지는 그에게 짐을 싸라고 했다.

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에

그 누구도 붙잡는 이는 없었다.

그것은,

두 번째 이별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체념이었다.

갈 곳 없던 그는 사촌형을 찾아갔다.

“형님한테 그랬어요.

먹고 잘 수만 있으면 어디든 괜찮다고,

일할 수 있는 곳만 소개해달라고요.

그러자 하룻밤 재워주시고는

다음 날, 공장 하나를 소개해주셨어요.”

그는 그렇게 서울 삼양동의 섬유공장에 취직했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단 6개월 만에

‘기술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다 기술을 좀 더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서울 본동의 다른 공장으로 옮기려 했지만,

그 앞을 가로막은 건 ‘출신 지역’이었다.

“아니, 그게 너무 억울하잖아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기술을 배웠는데,

단지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일을 못 하게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나, 여기서 꼭 일 안 해도 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 이유 때문이라면,

그 말은 직접 들어야겠다고 했죠.

그래서 집에도 안 가고 공장장 나오라고 버텼어요.

한 30분쯤 지나서 나오시더니

‘젊은 친구, 기백이 대단하네.’ 그러시더라고요.

그러곤 이틀 뒤부터 출근하라고 했어요.

그 공장에서 전라도 출신으로는 내가 처음이었죠.”

이틀 뒤, 그는 출근했다.

기술력과 성실함,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따뜻함까지.

그는 결국 공장장의 신임을 얻었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또 하루를 다부지게 살아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에게 영장이 날라왔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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