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를 쓴다는 것

by 진키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경험.

그것은 그의 체온 없이 이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천국이나 지옥, 영혼의 존재, 사후세계에 대해

나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죽음은 끝이라고 여겼고,

보이지 않는 그 너머보다는

지금 이 눈앞의 현실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 "


그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

별이 된다고 말해야 할까?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고 해야 할까?

신의 품에 안긴다고 종교적인 언어로 풀어야 할까?

이를 설명하기엔 나는 아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 대신, 밤을 건너야 했다.

아이의 질문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죽으면 정말 끝일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할머니는 지금 어디쯤을 떠돌고 있을까.

그날 밤 꿈에서 나는 할머니를 만났다.

기억 속의 할머니를 가만히 불러내어

추억할 수 있다는 것

그건 기억이라는 세상에서 떠난 이들을 만나는 방식이었다.

그때 문득, ‘기억’이야말로 진짜 추모이자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과학자 Xu Liu와 Steve Ramirez,

그리고 Susumu Tonegawa의 연구(2012, 『Nature』)는 “특정 기억은 특정 뉴런 집단의 활성화로 재현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 후속 연구(2015, 『Science』)에서는

기억상실 상태의 생쥐에서도 기억을 저장한 뉴런을 자극하자 잊힌 기억이 부분적으로 되살아났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떠올리는 일’이 아니라 뇌 안의 특정 뉴런 집단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다. 그러니 기억 속 존재는 단지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있는 관계’다.


사람은 결국, 떠난 뒤에도 기억이라는 방식으로
우리 안에 오래도록 머무는 게 아닐까.
눈앞에서는 사라졌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말을 걸고,
순간마다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존재.
어쩌면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 속에 조용히 머물게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에 관한 글을 쓸 때 친정집에서 아빠의 쌓여있는 사진들을 뒤적거리며 물었다.

"아빠 저 이사진들 가져가도 돼요?"

"가져가 어차피 아빠 죽으면 없어지고 말 것들이야 "

죽으면 사라질 것들을 우리는 왜 그토록 남기려 애썼을까?

수없이 찍었던 사진들,

남겨진다고 믿었던 추억들은 결국 사라지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걸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놓은 것들이

죽음과 함께 모두 흩어지는 거라면,

우리는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남김’을 원했을까.

갑자기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을 당신으로 만든 이야기를 들려 달라.

당신이 멈추지 않기 위해 필요로 했던 이야기도 들려 달라.

두꺼운 고독을 뚫고 나오게 했던 존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달라.

당신의 고유한 기쁨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나는 살아있는 자의 귀로 듣겠다.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中에서


정혜윤 작가의 말처럼 이야기는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

우리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위인의 삶은 시간이 흘러도 기록으로 남는다.
후세는 그 이름을 부르고, 책 속에 새기며 기억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 곁에 오래 전해진다.

하지만 이야기란 반드시 위대해야만 남겨지는 걸까?

평범했던 우리 할머니의 삶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건너온 하나의 서사였다.
누구도 그녀의 인생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기록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야기를 남기는 일은 누군가를 잊지 않기 위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야기들은 어떻게 우리의 마음에 닿아,

또 어떤 문장이 되어 남게 될까.

언젠가, 우리 모두 잊히겠지만.

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남겨두고 싶다.


유서를 쓴다는 것

유서란 단지 ‘남기는 글’이 아니라
‘전달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마음을 자꾸만 미룬다.

사랑하지만 어색해서 하지 못했던 말,
감추기만 했던 상처,
끝내 꺼내지 못한 고백들.

그렇게 미뤄둔 마음은
삶의 마지막 문 앞에서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유서는 그 모든 말들의 마지막 통로가 된다.

끝이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는 글이다.

유서라는 글 한 편이

남겨진 사람에게는 살아갈 힘이 된다.

그렇게 남겨진 그 짧은 문장이

슬픔 속에서 누군가를 버티게 하고,

다시 하루를 살아가게 만든다.

삶이란 그렇게,


한 사람의 마지막 문장이

또 다른 사람의 첫 문장이 되기도 한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에서 폴 칼라니티는

죽기직전 까지 끝내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문장과 아내 루시가 덧붙인 마지막 이야기 속에는

사랑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결국 유서를 쓴다는 것은, 사랑을 놓지 않기 위해서다.

떠난 뒤에도 내 마음이 이 세상 어딘가에 머물기를 바라며,

언젠가는 우리 모두 잊히겠지만, 그전에

기억을 남기고, 사랑을 남기고, 존재를 남기고 싶다.

아름답게, 다정하게, 천천히 사라지도록.

나는 믿는다.

유서는 삶의 가장 진심인 순간에,

가장 말하고 싶었던 그 마음 하나를 남기는 편지라고…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말을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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