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간병일기

by 진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12층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 아가씨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면서

서울대 다닌다면서?"

"네? 제가요?"

"응!! 할머니가 그러시더구먼 서울대 다닌다고 “

순간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머리가 새하얘졌다.

분위기 파악이 필요했다.

"아... 네 제가 그런가 봐요. 감사합니다"

집에 올라와 할머니에게 따져 물었다.

"할머니가 나 서울대 다닌다고 했어? “

"응. 왜?"

"나 서울대 안 다니는데 할머니 왜 거짓말을 해? “

"서울로 학교댕기면 다 서울대여.

지방으로 댕기면 지방대고"

아... 그랬던 거다... 할머니에게 있어 학교는 딱 두 가지 종류였다.

어쨌든 인서울이니까 나는 서울대생이 되어있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들이 내게 인사를 건네면

나는 최대한 지적인 표정을 지으며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오직 당장 자신의 판단에 옳고 그름만이 있었고

어느 누구도 이를 부정해서는 안 됐다.

할머니에겐 할머니가 내린 법칙만이 법이었고 자존심이었다.


"여기 할머니가 다치셨어요. 빨리 나와보세요"

집에서 티브이를 보는데 벨이 울렸다. 경비아저씨였다.

"이 집 할머니가 길바닥서 넘어져서 일어나질 못해!!!

빨리 와바!!! 할머니가 아들만 찾는데 얼른 모시고 병원 가야 돼!!!! “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보도블록 위에 할머니는 얼굴이 잔뜩 구겨진 채 주저앉아있었다.

여태껏 할머니에게서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숨쉬기조차 버거워 보였다.

"우리 아들 오랬더니 왜 니가 와 내 아들 불러줘!!!"

그 아픈 순간에서도 아들이 떠올랐다는 게 화가 났다.

119고 뭐고 아들을 불러달란다.

"할머니 아들 뭐 돼? 아빠가 뭐 의사야?

지금 빨리 병원 가야 돼!!!"

옆에서 누가 보든 말든 고래고래 할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와 나를 에워싸고

웅성거리며 번갈아 쳐다봤다.

그때의 나는 다른 이의 시선이 부끄러운지도 몰랐다.

결국 고집불통 할머니는 아들이 온 뒤에야

마음을 놓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진찰결과 '고관절골절'...

성격 고약한 할머니의 투병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한순간 잘못 디딘 할머니의 한걸음은

할머니가 걸어야 할 남은 걸음들을 빼앗아갔다.

남편 없이 남매 셋을 악착같이 키워냈던

누구보다 튼튼하고 강인했던 다리는

그 한 번으로 더 이상 재구실을 하지 못했다.

찰나의 접질림은 할머니의 삶을 넘어뜨렸다.


성격 더러운 할머니와 더 더러운 손녀간호사

할머니를 간호하겠다고 결심했던 건

유난히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간 할머니에게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온 엄마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피라도 섞인 내가 하는 게 맞다고

어쨌든 엄마는 남이고 며느리지 않냐고..

고집불통할머니에겐 뭐니 뭐니 해도

그의 핏줄이라 더 성질 더러운 손녀딸인 내가 필요했다.

그렇게 할머니의 간병일기가 시작되었다.


할머니에게는 유방암도 있었다.

나이가 있어서 수술은 진행할 수 없었다.

바깥으로 가슴이 곪고 썩어 악취가 났다.

소독으로 더 이상의 부패와 염증을 늦출 뿐이었다.

악취를 참기 위해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최대한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할머니에게 들키면 안 된다.

가슴에 드러난 곪은 종양들이 마르면 가슴이 당기고

통증이 느껴진다. 그래서 종양이 마르지 않게

젖은 거즈를 가슴에 대고 소독약이 흐르지 않도록

테이핑을 했다.

나중엔 그 테이핑에 할머니의 피부는

쩍쩍 늘어나 빨갛게 헐어버렸다.


대학원 논문준비와 기자생활로 바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엄마아들이 나를 다급하게 부르며 전화를 했다.

"야... 어디야 빨리 들어와 봐"

집에 가보니 할머니는 일어설 힘이 없어서

방바닥에 대변을 보았다.

닦고 치워줘야 하는 그 모든 것은

생전 사랑받은 손주가 해낼 수는 없는 것 들이였다.

엄마아들은 바닥에 묻은 할머니의 대변을 물티슈로

닦아내다 때맞춰 들어온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 또한 내 몫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생물학적으로 여자라는 이유로

태어난 순간부터 할머니에게 있어

그리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나의 쓸모를 확인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할머니의 간병이었다.

나는 간병을 통해서 할머니의 사랑을

그렇게 확인받고 싶었나 보다

”아들손주만 이뻐하면 뭐 해

어차피 할머니 아프면 기댈 사람은 나뿐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야지 “

할머니는 나아지지 않았다.

도저히 집에서 할머니를 간병하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할머니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할머니에겐 치매라는

기억지우개가 찾아왔다.

기억의 순서가 뒤바뀌고 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나 누구야?"라고 물어보면 할머니는

"간호사 아니여. 내 손녀딸 진희"라고 대답했다.

난 간호사가 아니다.. 전공은 그 근처에도 못 간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기억에 잠시라도

할머니를 간호했던 나라는 사람은

간병해 주는 손녀이자 간호사로 기억되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잠시나마 서울대생에 이어 간호사로 신분상승을 했고,

의사로까지 기억되지 못함에 못내 아쉬움을 느꼈다.

요양병원으로 할머니가 옮겨진 후

처음엔 오히려 할머니의 빈자리가 좋았다.

나에게 그 순간 자유가 주어진 것 같았다.

더 이상의 간섭도 저주도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건 없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빠르게 내 일상으로 돌아갔다.

할머니가 아프다는 사실도 더 이상 집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 잊었다.

집에 남겨있던 할머니의 짐들은 조금씩 줄여졌다.

매일 보러 가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할머니를 향한 나의 얄팍한 효심은 생각보다

성실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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