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살고 싶어”
할머니는 갑자기 개종을 했다.
그리고 얘기했다.
종교를 바꾼 이유를, 그토록 고집하며 평생을 믿던 종교를
갑자기 등지고 끝내 바꾸었던 이유를...
"내가 누워서 밖을 보면 세상이 아주 깜깜하니
아무것도 안 봬.
근디 멀리서 빛이 찬찬히 보여.
자세히 들여다 봉께 십자가여.
그 꼭대기서 십자가들만 눈에 계속 뵈니께
아고 내가 죽을 때가 되니께
이제야 십자가가 눈에 들어오는구나 싶당께.
교회라도 댕기면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랑께 나 교회다닐란다"
창밖을 내다보던 할머니 눈에 들어온 건 건물 위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십자가 조형물이었다.
밤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유일한 십자가조형물들은
할머니에겐 살 수 있다는 희망이고 생명연장의 꿈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할머니가 종교를 바꾼 진짜 이유를..
살고자 하는 꿈이나 의지보다
남겨질 자식들의 종교로 개종을 해야
그들의 방식으로 할머니를 추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배려 때문이라는 걸..
할머니에게 당장의 종교보다 중요한 건 남겨질 자식들이었다는 걸..
안녕 내 친구, 할머니 잘 가
급하게 목사님까지 요양병원으로 모셔 세례를 받으며
더 살고 싶다던 할머니의 꿈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할머니가 죽었다. 할머니의 죽음은 준비된 것이었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셨다.
그때 죽음을 기다리던 할머니가 왜 살고 싶어 졌는지
나는 묻지 못했다.
"빨리 죽어야지" 하는 할머니가 왜 그토록
더 살고 싶었는지 요양원이라는
그 답답한 곳에서 왜 그리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을 구걸하고 싶었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나 오래 못 살 거 같은디“
"무슨 소리야 할머니 나 시집가는 것까지 보고 가야지"
할머니는 결국 내 결혼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장례비용은
돈 한 푼 모아놓지 않은 철없는 손녀딸의 결혼자금이 되었다.
할머니를 간호했던 간호비라며
고모 몫으로 남겨진 부조금까지도 고모는 나를 위해 내어놓으셨다.
나는 지금 할머니의 삶과 맞바꾼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할머니가 누렸어야 마땅했던 삶들의 행복을
내가 나누어 대신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살아생전 그토록 미워했던
손녀에게 할머니는 너무 큰 사랑을 남겼다.
"미안해"
아직 엄마는 모른다.
평생 시집살이에 받은 상처로 요양병원에 갈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며느리인 엄마 앞으로
할머니가 병상에 누워 나에게 어떤 말을 남겼는지..
"니그 엄마한테 잘햐. 니그 엄마도 고생 많이혔어
너무 미안한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네.. “
끝내 며느리에게 사과를 직접 건네지 못하고
손녀딸에게 그 마음을 전달했던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장례식장에서 며느리를
만났다.
그때 못다 한 사과를 건네고 싶었을까?
아직도 종종 할머니는 엄마 꿈에 찾아간다.
"너네 할머니가 꿈에 나와서 나를 쳐다보길래.
어머님아들 때문에 힘들어서 더 이상 못살겠어요!!
했더니 말없이 사라지셨어"
"엄마는 왜 할머니한테 꿈에서도 싸움을 걸어?
이제 할머니 더 이상 꿈에 안 나오겠다 “
할머니가 하나둘 가족들을 찾아
못다 한 마음을 전하고 나면
내게도 순서가 오지 않을까?
그럼 나도 꿈에서 할머니를 만날수 있지 않을까?
내가 쓴 할머니의 기록을 보면
천국에서도 기특해하며
응원하기를 눌러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