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와 유서, 그 경계 어딘가

삶의 흔적을 엮는 기억의 기록자

by 진키

죽음 이후 남는 것은 결국 남은 사람들의 기억뿐이다.

박광우 『죽음공부』 中


전기(傳記)가 한 사람의 발자취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며,

그가 세상에 남긴 크고 작은 흔적들을 엮어낸다고 생각했다.

반면, 유서(遺書)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토해내는

진솔한 감정,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

그리고 남겨질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속삭임이라고 여겼다.

오래전부터 이 둘의 경계 어딘가에서,

유서라는 형식을 빌려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고

그 마음을 대신 전하는 일을 꿈꿔왔다.

처음에는 그저 죽음을 앞둔 이의

마지막 편지를 쓰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쓸수록 내 마음속에는 의문이 피어났다.

과연 내가 쓰는 글은 유서일까, 아니면 전기일까.

글을 쓰는 동안,

나는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자주 떠올렸다.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죽은 이들이 이승의 사람들과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제시했다.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승에 남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다가,

그 기억마저 사라질 때

비로소 진정한 소멸을 맞이한다고 했다.

"영혼의 진짜 죽음은,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을 때 온다"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메시지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넘어,

누군가를 기억 속에 영원히 머물게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기록하며,

그들의 목소리가 시간의 강을 넘어

다시금 살아날 수 있도록 문장으로 붙잡았다.

못다 한 이야기, 시간 너머로 전해지는 진심

나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작별을 경험했다.

사랑하지만 끝내하지 못했던 말들,

미루기만 했던 고백들,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진심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말들은

대부분 너무 늦게야 꺼내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미리,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마음을 대신 전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내가 쓰는 글은 때로는

삶의 여정을 묵묵히 따라가는 전기이기도 했고,

때로는 그 삶 속에 담긴 말하지 못한 진심을

세상에 꺼내 놓는 유서이기도 했다.

결국, 전기와 유서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삶의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제 전기와 유서를 굳이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그 경계는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문장 사이를 넘나들었다.

그 경계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받아 적었다.

나는 믿는다.

사람이 남기는 가장 진심 어린 말은 죽음의 끝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비로소 피어난다고 말이다.

나는 내 글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영원히 반짝이는 별이 되기를 소망한다.


죽음 이후에 남는 것은

나를 알고 기억해 주는 사람들의 감정뿐이다.

죽어가는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내가 죽고 나서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박광우 『죽음공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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