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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닉 Nov 02. 2017

대성당 - 초감각적 소통법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아내의 오랜 친구가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친구가 집으로 오는 게 못마땅하죠. 아내의 친구는 남자이며 노인이었고, 게다가 맹인이라는 이유로요.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만나는 게 몹시 불편합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그가 오기만을 기대합니다. 그와 함께 했던 인상적인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면서요.


남편은 아내가 맹인에 대한 추억을 꺼내 놓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친구를 불청객 취급하는 게 싫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죠. 서로가 배려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초대받은 손님이 도착하고 그들은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눕니다. 아내가 먼저 잠이 들고 남편과 손님만이 남았습니다. 티브이에서 대성당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죠. 그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대성당에 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남편은 티브이에 나오는 대성당을 맹인에게 설명해 줍니다. 그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해합니다. 이 일에 내 목숨이 달렸다면 어찌해야 할까,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결국 한계를 느낍니다. 


그때 맹인이 종이 위에 대성당을 그려 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남편이 펜을 잡고 대성당을 그리기 시작하자 맹인이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습니다. 대성당 그림이 그려질수록 맹인은 대성당을 볼 수 있었죠.


맹인은 남편에게 눈을 감고 대성당을 계속 그려달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그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대성당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대성당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맹인이 보았던 대성당을 보게 된 겁니다. 화자이자 남편인 그가 말합니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단절된 부부에게 맹인 손님이 찾아오고, 그와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소통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통의 주체는 남편과 맹인입니다. 남편은 처음부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죠. 맹인과는 절대 소통할 수 없다고 여겼으니까요. 


두 사람의 손이 겹쳐져 대성당을 그리기 시작하자 남편은 그전에 알지 못하던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초감각적 소통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남편은 맹인 자신의 손으로 대성당을 느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성당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화자이자 남편은 맹인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만을 알 뿐 눈이 먼다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선입견은 마음의 눈을 멀게 하고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손님이 찾아오기 전 남편과 아내 역시 서로에 대한 선입견으로 단절돼 있었습니다.


마음의 문이 닫히는 순간 관계는 거대한 벽 앞에 가로막힙니다. 사랑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죠. 그 벽을 뚫고 지금까지와 다른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유연한 사고와 작은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춤과 음악으로 소통할 수도 있습니다.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사람의 마음도 그 사람의 입장이 돼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물론 말처럼 상대의 입장이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선입견까지 갖고 있다면 더 힘들겠죠. 함께 있는 것조차 싫은데 그 사람의 입장이 돼 보라는 건 가당찮은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가볍게 내려놓고 상대를 보기 시작하면 우리에게도 대성당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마음이 눈뜨게 되면 초감각적 능력을 갖게 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상대와 함께 세상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생기게 됩니다. 만약 그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행복이겠죠. 내가 이해한 만큼 그 사람과 초감각적으로 소통하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한 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가난했고, 학력도 별 볼 일없었습니다. 그는 생계를 위해 공장 잡부, 정원사 등의 일을 하며 틈틈이 단편소설을 썼습니다. 항상 부족한 시간 때문에 단편밖에 쓸 수 없었죠. 


그의 소설엔 단절되거나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이 단골로 등장합니다. 그는 소설을 통해 이해할 수 없고 소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접점을 찾아내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더 많이 이해할수록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지 않겠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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