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때문에 난리다. 언론에서는 연일 합계출산율이 ‘바닥’이라고 한다. 최근 나온 기사를 보면 지난 1분기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은 0.81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또 갈아치웠다. 지난해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9명대였다. 각 지자체나 정부는 저출생과 관련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썩 와닿지 않는다.
내 주변에는 아기 엄마들이 많다. 언니, 동생 다 애 하나둘씩 키우고 있다. 다들 한 목소리다.
애 키우는 거 진짜 힘들다. 차라리 일하는 게 낫다.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30대 나이에 무려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일 잘하고 야무진 그 친구는 회사에서 육아 휴직을 반복하며 내고 있어서 눈치가 보인다고 토로했다.
“내 30대는 임신, 출산밖에 없어.”라는 친구의 말이짠하게 들렸다.
친구의 육아는 친정 부모님이 도와주신다. 집 근처로 이사와 세 아이를 봐주시고 있단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을 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산 '다둥맘' 내 친구는 최근 셋째를 낳고 또다시 육아 휴직에 들어갔다. 셋째를 낳은 지 얼마 안 됐지만 벌써 복직을 걱정하고 있다. 복직해도 육아휴직을 계속 써서 육아 시간을 쓰기가 눈치 보인단다.
아무리 정부와 지자체가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치지만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다.
일터에서는 여전히 육아 휴직이나 육아 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분위기다. 예전보단 나아지긴 했지만 눈치가 보인다는 게 대다수다. 아이 키우는 부모에게 필수인 유연근무제도 대기업과 공공기관 외엔 정착된 회사가 많지 않다.
갚아도 갚아도 줄지 않는 대출금, 늘어나는 교육비에 맞벌이는 필순데 일이나 육아 둘 중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그나마 돌봐줄 조부모들이 있으면 다행이다. 이마저도 힘겨우면 한 명이 일을 그만둬야 애를 키울 수 있는 사회에 아등바등 살고 있다.
결혼해 보니 왜 출산율이 바닥인지 이해된다. 커플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지도. 나 혼자 살기도 팍팍하다. 애까지 낳으려면 많은 부분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한 생명이 태어나 온전히 나에게 의지하는 일, 그 생명을 키워내는 일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진 일’이라는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져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몸을 갈아서 하는 육아가 힘들지라도, 이 힘듦이 잊힐 만큼의 기쁨과 보람이 있는 일이자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기억하고, 이고난의 과정에 기꺼이 뛰어들어 해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낼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
엄마 아빠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길,아이가 태어난 것만으로 넘쳐나는 축복과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견고한 사회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한다.
출산율 정책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인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사람을 애써 설득하는 것보다 아이를 낳으려고 결심한 사람들이나 이미 아이를 낳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건 어떨까.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으면 뭘 해주겠으니 애 좀 낳아라'고 하면 반감만 커진다. 지금까지 나온 정부 정책 중에는마음을 돌릴 만한 파격적인 정책이 없다.
아이에 대한 마음이 간절한 사람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지금보다 더 나은 양육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16년간 280조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어도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을 잡기 위해서는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지’, '미래의 희망인 아이를 위해 과연 어떤 게 가장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