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문학관①
어렸을 때부터 발표 울렁증이 있었다. 남들 앞에 서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개미 목소리가 나왔다. 말도 조리 있게 못 해 더듬거릴 때도 많았다.
대학교 때 해야 했던 PT, 취업 면접 때 거쳐야 했던 면접, 회사 다닐 때 해야 하는 PT...모든 게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두려움을 푼 건 글쓰기였다. ‘난 왜 말을 이렇게 밖에 못하지?’ ‘목소리는 왜 이렇게 기어들어갈까?’ ‘발표를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 말은 잘 못하지만 글은 좀 쓰잖아”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2020년 출간된 정용준 작가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나를 위한 책이었다.
책은 열네 살 소년이 언어 교정원에 다니며 언어적,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았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 소년은 세상의 차디찬 시선과 힘이 되어주지 않는 어른들 앞에서 오롯이 혼자 힘으로 일어서야 했다. 나약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강했다.
책은 소년의 내면 목소리를 들려준다. 말하기 연습, 자기 얘기하기 연습, 이름 바꾸기, 자신감 갖기 연습 등 연습을 거듭하는 사이 달라지는 건 말하기 기술만은 아니다.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과정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기록’이다. 글을 쓰는 것이다. 말하기가 두려운 소년은 먼저 ‘글쓰기’를 통해 두려움을 잠재우기 시작한다.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도 잊지 않을 거다. 어떤 기억도 희미해지지 않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
책엔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 많다. 기억에 남는 구절을 적어본다.
“하마 같은 사람이 되렴. 약해 보여도 강할 수 있어. 맘만 먹으면 누구든 이길 수 있고.”
“더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안 더듬는 건 아니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도 아니야. 다들 어느 정도는 말 더듬이들이야. 우리는 보이게 조금 튀는 거고. 너도 나중에 더듬지 않게 되면 알게 될 거다.”
글과 관련된 일을 10년 넘게 한 내게 이 책은 흥미로웠다.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할 때, 떨린 적이 많지만 유독 글을 쓸 때는 마음이 편하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끝이지만, 글을 퇴고에 퇴고를 거칠 수 있는 점도 좋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까 고민하는 작업을 거치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내 얘기를 잘 풀어낼 수 있다는 확신도 든다.
무언가를 쓰고 기록한다는 건 행위 자체의 힘을 발휘한다. 기록하는 일을 하면서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있다. 메시지, 글은 힘이 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글, 말이 다 담지 못한 글을 나도 계속 써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