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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뭐먹지?]네르친스크 홍차

by Sejin J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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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년 8월 27일은 러시아와 청나라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은 날이다.


이 조약으로 러시아는 연해주를 차지하게 되는데, 국경의 변동은 결과적으로 식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바로 차의 유입이다.


1727년부터는 접경 도시인 카흐타에서 차의 중개 무역이 시작됐다. 영국과 달리 중국과 국토가 이어진 러시아는 배가 아니라 수백 마리 낙타떼가 운반하는 '카라반'들에게서 차를 사들였다.


중국의 귀한 홍차는 순식간에 러시아 귀족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티타임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도 이 시기다. 19세기 이후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개통되면서 물류 비용이 절감, 서민들도 즐길 수 있게 됐다.


러시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다구는 ‘사모바르’라는 급탕기다. ‘스스로(sam) 끓인다(varit)’는 뜻을 지닌 이 도구는 안톤 체홉의 희곡 '바냐 아저씨'에도 등장한다.


사모바르는 난방기와 가습기 역할도 하는 러시아의 생필품이었다. 혹한의 기후에 최적화된 도구인 셈이다.


쓰디쓸 정도로 진하게 우려 투명한 유리잔에 마시는 것이 러시아식 티문화의 특징이다. 잼 한스푼을 입에 머금고 입안에 쓴 차를 흘려보낸다.


달달한 과자도 빠질 수 없다. 파이나 비스킷 등을 주로 먹고, 꿀이 들어간 '메도빅'이라는 케이크도 단골 메뉴다. 샌드위치 같은 가벼운 세이보리도 곁들인다.


구소련 개방조치 후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 한국 과자가 있다. 바로 초코파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 맛이 진하고, 차에 어울리는 식감을 지닌 덕이다.


당시 초코파이는 보따리장수들이 싹쓸이해갈 정도의 인기템이었고,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초코파이를 놓고 차를 마시는 사진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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