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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May 01. 2023

당신은 '세상의 파도'를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태도가 경쟁력>이 되기 위한 나의 노력에 대한 단상 

한평생 산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의 일에 반응하는 것이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세상사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전부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태도'라 하는 것은 이런 반응들의 총칭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즉 어떤 태도를 갖는가가 특히 마흔 이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제 생각이고요.

_ 최인아, <내가 가진 것은 세상이 원하게 하라> 中




1

한때는 다이어리를 꽤 열심히 사용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프랭클린플래너를 구입해 '소중한 것 먼저 하기'를 실천으로 옮기려고 무척이나 노력했고, 한동안은 양지 플래너를 사용하면서 연간 목표, 월간 목표, 주간 목표와 계획, 실천사항을 꼼꼼히 기록해 보기도 하였다. 그 시절 나는, 시간에 쫓기어 살아가면서도 어떻게든 매번 나를 압도하는 시간에 짓이겨지지 않으려고 꽤 노력을 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의 일도, 자취방을 구하는 것도, 심지어 연애를 하는 것도 내 뜻대로 되어주는 것이 거의 없었던 시절, 그나마 시간이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싶어서 그렇게 다이어리를 기록하면서 변수의 시간을 상수처럼 붙잡아두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는 항상 크기와 높이를 알 수 없는 파도가 치고, 거대한 쓰나미와 같은 파도가 언제 들이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난 내가 쌓을 수 있는 댐과 방파제로 그것들을 막으려고 했다. 파도가 들이치는 순간을 예측하려 노력했고, 가능한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목표'를 앞세워 준비했다. 만일 목표가 필요했다면, 그것은 내가 손쓸 수 없는 파도에 대한 나의 관점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어야 했으나, 그 시절 나의 목표는 파도에 대항한 설익은 대처와 조치에 불과했다.



2.

양지 플래너의 자리에 구글 캘린더가 들어서고, 목표와 실천을 기록했던 노트가 블로그와 브런치로 대체되었지만, 예전과 동일한 것은 계속해서 세상의 파도에 대한 나의 생각과 마음가짐을 기록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세상의 파도를 문제로 정의하고, 그에 대한 대처를 솔루션으로 여겼다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진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내가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올바른 태도임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파도에 맞서 가장 쉽게, 통제의 용이성이 높은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타인을 내 마음대로 바꾸기는 늘 쉽지 않다. 아니 바꾸기는 불가능하다. 만일 누군가 내 뜻에 맞게 행동해준다면 그것은 나에 대한 배려임이 분명하다.


환경은 바꿀 수 있을까? 직장에서 시스템 하나를 도입하려 해도 그것이 어디 나 혼자만의 의지로 되는 일이던가? 얽히고 설킨 복잡한 이해관계자와의 수많은 커뮤니케이션과 합의를 통해 우리는 조직 안에서 실행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당연한 '루틴'이 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지난한 반복과 습관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집안에 '내 서재의 책상'이라는 환경은 어떨까? 어린 자녀가 들어와 잘 정리되어 있는 책상을 어지른다거나 오늘 아침에 분명 책상 위에 놓아둔 자료가 배우자가 방을 청소한 이후 행방불명되어 묘연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파도에 맞서기 위해 각각의 환경을 조성하고 구축하는데 지나치게 에너지를 사용한 A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일 다른 사람이 그 환경에 약간의 영향을 주어 그 환경이 A의 생각과는 다른 모양새가 되어버린다면, A는 파도로 인한 자신의 피해를 그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 자신은 충분히 잘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른 이로 인해 원래의 계획이 틀어져 버렸으므로 자기 자신을 의도치 않은 손해를 본 '피해자'로 둔갑시키게 된다.



3.

세상의 파도에 맞서 통제의 용이성이 높은 대상은 '나 자신'이라고 했지만,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은 무척이나 어렵고 힘들다. 왜냐하면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각자의 당연함의 세계'에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이 부탁하면 당연히 OOOO 하게 반응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전에 한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으면 당연히 OOOO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다 같이 하기로 한 건데 당연히 OOOO 정도는 준비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각자의 당연함은 주로 '과거의 경험적 패턴'에 기인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와의 관계에서부터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 길고 짧은 사랑과 이별, 잊혀지지 않고 깊게 패인 아픔과 슬픔 등의 경험은 우리의 기억과 마음에 각인되어 약간씩의 흔적을 남기고,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와 신념을 터득한다. 삼십 년, 사십 년, 그리고 그 이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삶이라는 환경에 적응해 나가며 특정한 방향으로 점점 강화되고 각자의 모양대로 빚어지게 된다. 수십 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만들어진 나라는 사람은 나의 경험에 빗대어 '상식'이라고 불리는 당연한 것들을 터득하게 되고, 이를 통해 쉽게 타인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게 된다. 상식, 곧 당연함은 매우 빠르고 효율적인 소통을 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타인을 쉽게 '판단'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면서 갈등과 다툼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고 변화와 혁신을 가로막는 '관행'으로 흐르기도 한다.


이러한 당연함을 의심하고,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 선택을 하는 일은 꽤 불편한 일이다.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근육을 사용해 운동을 하면 그 부위가 파르르 떨리고 아픈 것처럼, 상황이나 타인에 대한 생각과 관점, 해석과 선택의 과정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불편함과 고통을 겪게 된다.



4.

세상의 파도에 맞서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은, 나의 부족함, 연약함, 결핍과 욕구를 확인하며 (그동안에 쉽게 해왔던) 가장 빠르고 쉬운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동안 당연하게 여긴 나의 습관이 어디에서 왔는지 탐구하고, 만일 그 습관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단호히 그 습관과 이별을 꾀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잘못을 탓하는 것이 본능처럼 내가 가장 쉽게 반응하는 행동이었다면, 단호하게 이러한 나의 선택과 이별하고 다른 선택을 하겠다는 불편함의 과정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내가 의존하고 있던 누군가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게 되는 상황이 두려워서 그의 지나친 요구사항을 거절하지 못하고 수용하는 것이 나의 습관이라면, 단호하게 이러한 나의 선택과 이별하고 용기 있게 다른 선택을 하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면 내가 무시당할까 염려되어 항상 과하게 자존심을 내세우고 타인을 공격적으로 대했다면, 단호하게 이러한 나의 선택과 이별하고 진실되게 나 자신을 내가 먼저 수용하고 타인에게 보여주는 시도를 해야 한다.



5.

아직도 나 역시, 나의 당연함의 세계에서 벗어나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매번 크고 작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세상의 파도를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 나는 이제 내 앞에 놓인 파도 앞에 댐과 방파제를 쌓아놓지 않는다.


나는 파도에 대항하지 않는다.

나는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던져, 어제 보다 조금 더 파도와 친해지려 노력한다.

때로는 조금 더 거친 파도의 흐름과 높낮이에 나를 맡겨본다.


파도에 내 자신이 더 적응하길 바라며 

인생의 모든 파도에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되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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