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화초에서 발견한 9가지 팀 유형
최근 6-7년간 내가 가장 많이 몰두해 온 일은 팀 단위의 조직개발 프로젝트다. 각 팀이 직면한 이슈를 함께 고민하면서 사람과 문화, 일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아젠다를 도출해 왔다. 그리고 이를 워크숍/세미나/그룹코칭 등 다양한 형태로 HRD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팀의 성과와 조직문화를 동시에 개선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하더라도 논의 장면에서 구성원들이 소통 할 때 쓰는 표현이나 대화 분위기의 유연성, 이후 실행으로 이어지는 정도 등은 팀마다 전혀 달랐다. 이러한 모습들을 볼 때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베란다에서 애지중지 기르시던 화초들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화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어떤 화초는 물을 많이 줘야 잘 자라고, 또 어떤 화초는 물을 덜 주어야 오히려 생기가 넘친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셨다. 햇빛도 종일 쬐어야 하는 종이 있고, 오전만 잠깐 빛을 받는 정도가 오히려 더 적합한 종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조직과 팀을 돌보는 과정과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다.
팀 단위 조직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모든 팀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어 보이더라도 ‘언어 표현’, '서로에 대한 개방성과 의존성', ‘대화의 범위’, ‘논의 후 실행으로 이어지는 지속성’ 등이 천차만별이었다. 마치 베란다 한 칸에서 여러 종류의 화초가 자라고 있는 것처럼, 서로 다른 종(種)마다 필요한 물과 빛, 그리고 토양의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떤 팀은 마치 다육식물처럼 아주 최소한의 물과 햇빛만으로도 끈질기게 버텨나간다. 과도한 지원이나 잦은 간섭은 오히려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어떤 팀은 한 번만 영양 공급 시기를 놓쳐도 금방 시들시들해지기도 하고, 긴밀한 피드백과 대화가 없으면 쉽게 동력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조직도 하나의 생태계이기에, 단순히 “자원이 부족하니 예산을 늘려주자”라는 식의 접근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떤 조직, 어떤 팀이냐에 따라 ‘적절한 환경 조성’의 방식이 달라지니까. 결국 꽃이 피고 자라는 조건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팀 역시 각자에게 맞는 자원 배분 방식과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갖출 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러한 관점으로 팀/조직을 생태계에 비유하여 내 나름의 관점으로 조직이 처해있는 환경을 유형화하고 각 유형별로 이름을 지어보았다. 자원(시간, 예산, 인력 등)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X축)와, 구성원 간 협력과 상호작용이 얼마나 활발하느냐(Y축)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조직을 9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단순히 조직이 “잘 돌아가는지, 못 돌아가는지”를 넘어, 각 조직 상태의 특징과 잠재력을 자연 풍경으로 빗대어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를 통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1. 메마른 사막
* 사막은 물과 자원이 거의 없고, 생명체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을 상징한다. 이와 같이 자원이 거의 제공되지 않고 구성원 간 협력도 거의 없는 상태로 조직이 매우 고립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성장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태로 급격한 변화와 자원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2. 혼란의 강
* 혼란스러운 강은 물이 빠르게 흐르지만, 흐름이 거칠고 방향이 일정하지 않아서 물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상태를 상징한다. 구성원 간 상호작용은 어느 정도 있지만 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과 활용으로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물은 풍부해도 거친 흐름 탓에 농사에 쓰기 어려운 강과 같으며, 자원의 흐름을 제대로 잡아줄 제도·전략이 필요하다.
3. 잠재된 숲
* 숲은 잠재력이 있지만 자원 부족으로 인해 그 잠재력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물과 영양분만 공급되면 금세 우거질 숲처럼, 적절한 자원과 지원이 뒷받침되면 폭발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4. 흐린 호수
* 흐린 호수는 물이 있지만 그 물이 깨끗하지 않아 사용하기 어렵고, 생명체가 잘 자라기 힘든 환경을 상징한다. 물은 있지만 탁해서 마시기 어려운 호수이니 커뮤니케이션과 프로세스를 맑게 정비하는 것이 핵심 과제이다.
5. 안개 낀 언덕
* 안개로 덮인 언덕은 길이 보이지 않아 방향을 찾기 어렵고, 발전 속도가 느린 환경을 상징한다. 안개 낀 언덕처럼 시야가 흐릿해 구체적인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 명확한 지침과 방향성 (조직 비전과 전략) 이 더 명확해져야 한다.
6. 바람의 언덕
* 바람이 부는 언덕은 바람이 자유롭게 흘러 협력을 상징하지만, 아직 완전히 안정된 상태는 아닌 환경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바람 세기가 아쉽다. 자원이 조금만 더 뒷받침되면 큰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7. 고립된 바위산
* 고립된 바위산은 자원이 충분히 있지만, 외부와의 상호작용이 거의 없는 환경을 상징한다. 자원이 충분하지만, 구성원들 간 협력이 부족해 자원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상태이다. 높은 바위산에 물은 고여 있지만 활용이 어려운 것처럼, 열린 내부 소통과 팀워크가 절실한 상황이다.
8. 흐르는 들판
* 흐르는 들판은 자원이 풍부하고 구성원 간 상호작용이 활발한 환경이지만 아직 완벽하게 안정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곡식이 자라고 있지만 작황을 극대화하려면 조금 더 정교한 관리와 협력이 필요하다.
9. 초록빛 숲
* 초록빛 숲은 자원이 풍부하고 생명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건강하게 자라는 생태계를 상징한다. 자원이 충분히 배분되고, 구성원들 간 상호작용과 협력이 매우 활발하여 조직이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운영되는 상태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양분이 되어주는 울창한 숲으로 조직이 가장 지속 가능하고 생산적인 모델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화초를 키울 때, 물을 줄 때마다 화초의 잎과 줄기를 유심히 살폈던 것처럼, 나 또한 조직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팀이 발산하는 ‘미묘한 신호들’을 주시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여건에서 어떤 팀이 자라나는가”를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생태계적 접근을 시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화초를 기르는 것처럼 결코 단순히 물만 주면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 온도, 빛, 흙의 성분, 통풍, 심지어는 화분의 크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세심한 관리와 애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어린 시절 베란다의 화초들을 떠올리며 늘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