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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May 02. 2024

쓰레기 같은 일상에 등장한 루시퍼

는 아니고... 스투키!

이번에 서울로 올라올 때 다짐했다.


이번 자취는 전처럼 하지 말아야지.

나를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밥도 정성스럽게 해 먹자.

집에만 처박혀있지 말아야지.

쓰레기 같은 글이라도 매일 30분씩 써보자. 그럼 식물을 키워볼까? 씨앗부터 심어서 매일 관찰일지를 쓰는 거야!


그리고 3개월이 흘렀다. 거창하게 다짐했던 나에게 미안해서 집 주변 꽃집에 몇 번 들락 거려봤다.

"자취방에서 키우기엔 뭐가 좋아요? 벌레가 생기진 않나요? 그런데 저희 집이 북향이라 해가 잘 안 들어서..."

사소하고도 별 것 아닌 고민들에 발목 잡혀 번번이 식물을 들이는 데 실패했다. 집이 1층이니까 빌라 앞 화단에서 키워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선뜻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사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요즘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생각마저 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쉬는 시간이면 그냥 침대에 누워 쇼츠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모든 시간을 때웠다. 지겹고 심심하고 외로웠다. 머릿속으로는 나름의 성취감과 자기만족을 위해 여러 가지 할 계획을 세웠지만 도무지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종일 누워있었던 적은 있었지만, 뭔가를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던 적은 오랜만이었다. 쓰레기 같았다.


쓰레기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욕을 했다. 혼자서 쌍욕을 읊조렸다. 지금껏 욕을 입 밖으로 내본 적 없었다. 욕은 나에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철저히 금기의 영역이었는데 쓰레기 같은 내 기분에 30년 묵은 금기는 쉬이 깨뜨려졌다. 욕 말고 또 다른 금기의 영역을 깨뜨린 것이 있다. 담배. 재작년에 전담을 시작하면서 뜨문뜨문 피웠다가 안 폈는데 올 4월부터 연초를 시작했다. 하루에 한두 개피씩 피우는데 일시적으로나마 스트레스가 풀렸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려 3분이라도 밖으로 나오니 좀 괜찮았다. 그렇지만 욕도 담배도 중독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기도 하다.


주말. 어김없이 쓰레기처럼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물론 담배 피우는 시간을 제외하고. 이 기분을 견디면서도 아무것 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해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주인 없는 자리가 하나 있다. 그 책상 위에 바짝 마른 스투키 하나가 놓여있었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놈이다 싶었다. 옆자리 팀원에게 이걸 내가 키워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있는지도 몰랐고 주인도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스투키는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식물이라고 알고 있었다. 해를 직접적으로 쬐면 안 될 것 같지만 너무 오랫동안 빛을 못 봤을 것 같아, 물을 준 뒤 썬팅이 돼있고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창가에 두었다. 앞으로 자주 이 친구의 사진을 찍으며 업로드하려 한다.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까? 처음으로 물 준지 2주가 지났는데 변화 없이 바짝 마른 이 스투키처럼, 지금 나도 걱정과 불안에 바짝 타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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