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남편이 야근을 했다.
10시가 넘어 들어온 남편이 아이랑 자고 있는 나를 깨운다.
손에는 젓가락 한 짝이 들려있다.
아이가 무섭다고 방문을 잠그고 잔 모양이다.
그 문을 또 열어 보겠다고 남편은 늦은 시간 젓가락으로 방문을 쑤셨나 보다.
학부모 총회를 마치고 하소연 거리가 얼마나 많았으면 나를 깨우는데 이렇게 열정적인가 싶어 졸린 몸을 일으켰다. 남편의 하소연을 안주삼아 맥주 한잔하고 잤더니 아침 기상이 힘들다.
아이 학교에서 거듭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아이 아침을 먹여 보내달라고.
무거운 몸 겨우겨우 달래서 남편과 아이의 아침밥을 챙기다 보니
10년도 전에 만났던 어느 은행 지점장 어머님이 생각난다.
그 지점장 어머니를 뵌 건 그분의 둘째 딸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던 반의 아이.
여고에 초임 발령을 받아 1학년 입학하는 것부터 3학년 졸업해 대학 가는 것까지 지켜봤던 아이다.
그 아이는 전교 학생회장이었다.
반에서 1등이었고, 전교에서도 1등이었다.
우수한 스펙과 성적으로 SKY 진학에 성공했다.
스펙, 성적을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도 인성이 좋았다.
전교에 1~2명 있을까 말까 한 리더십 있고, 솔선수범하고, 예의 바른데, 위트와 사회성까지 갖춘 그런 아이.
그 아이의 어머니는 이름 대면 누구나 아는 XX 은행의 지점장이셨다.
3학년에 올라가 입시 상담하며 제대로 뵈었다.
실제로 뵀을 땐, 그냥 옆집 아주머니 같은 소탈한 분.
그 당시에는 몰랐다.
엄마가 되고 보니 그분이 그냥 옆집 아주머니는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둘 딸린 워킹맘으로서 그 자리까지 가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결혼 전이었지만 그 아이가 너무도 훌륭했기에 그 어머니께 물었더랬다.
"어떻게 oo 이를 그렇게 잘 키우셨어요?"
그 어머니께서는 눈시울을 붉히셨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해주기라도 바랐던 것처럼 휴지로 눈물을 찍어내시며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25살 즈음, 그땐 사실 "왜 우시지?" 했다.
지금 생각하니 20년 가까이 워킹맘으로서 겪었을 그 어머니의 고충이 십분 공감이 된다.
"두 딸 키우면서 출산 휴가도 한 번 못 썼어요. 일하는 바쁜 엄마라 아이는 이모 손에 컸어요. 근데 내가 딱 2가지는 했어요."
그 어머니께서 하신 두 가지는,
1.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손수 가족의 아침밥 챙기는 것.
2. 출근 · 등교 전, 가족 다 같이 힘찬 구호 외치는 것.
그 어머니는 하루 시작의 중요성을 아셨던 게 아닐까.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탄탄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힘.
긍정적인 구호를 외치고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힘.
그 시작의 힘으로 아이는 하루를 잘 살아냈겠지.
바쁜 워킹맘으로서 지혜롭게, 똑똑하게 아이를 길렀던 현명한 엄마셨다.
그 지점장 어머니를 떠올리며
졸려하는 아이에게 아침밥 한 입 더 권해 본다.
교문 앞에서 세차게 뒤돌아 가는 아이 불러 파이팅 한 번 더 외쳐 본다.
오늘 하루 잘 살아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