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따로 먹지만 저녁은 늘 함께 먹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밖에서는 못하고 안에서 신나게 하는 가족.
저녁 식탁에 둘러앉으면 저마다 오늘 하루 동안 참아온 이야기를 쏟아낸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단 각자의 이야기를 내뱉던 중,
아이의 한 마디에 정적이 흐른다.
"나는 학교 쉬는 시간에 책만 읽어."
우리 집 아이는 낯을 심하게 가린다.
5세에 들어간 유치원을 7세에 적응했을 정도.
초등학교 입학,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지가 제일 큰 걱정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학교가 좋다고, 재밌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보면
같은 반 친구들이 모여 모래 놀이를 하고 있어도 그 곁에 다가가지 못한다.
옆에서 혼자 줄넘기를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속상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속이 터져라 거북이걸음으로 걷던 아이가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진다.
1m 앞에 태권도장 차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있다.
같은 반 친구가 분명하다.
우리 집 아이는 그 친구와 눈이 마주칠까 봐 토끼 걸음으로 뛰어간다.
그런 아이가 학교 쉬는 시간에 책만 읽는다고 했다.
우리 집 아이는 제 손으로 책을 읽는 아이가 아니다.
엄마가 읽어줘야, 그것도 잠자리에서만 1~2권,
습관처럼 책을 읽는 아이. 아니, 듣는 아이.
남편의 대화를 가장한 취조가 시작된다.
"다른 친구들도 책 많이 읽어?"
"아니, 다 놀러 가."
"같이 책 읽는 친구 있어?"
"아니, 나 혼자 읽어."
"친구들이랑 놀고 싶지 않아?"
"응, 책이 너무 재밌어."
기가 막힌다.
책이 재밌단다.
친구들 무리에 섞여 들어가는 게 어려운 거다.
쉬는 시간엔 친구들이랑 놀라는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는 순간, 남편이 나를 막는다.
부엌 뒷정리를 하는 내내 심란하다.
쉬는 시간 교실에 혼자 앉아 책을 읽는 아이.
학교에서도 가장 마음 쓰이는 아이가 혼자 있는 아이다.
그 때문에 쉬는 시간, 점심시간 괜스레 담임이 교실을 어슬렁 거려 본다.
이동 수업인 줄도 모르고 혼자 잠들어 있는 건 아닌지, 밥을 또 거르는 건 아닌지...
유치원이면 내일 당장 선생님께 여쭤보기라도 하겠지만
학교에 여쭤보자니 극성 엄마 같아 보일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이가 잠들고 남편에게 걱정을 한 보따리 늘어놨다.
남편은 의연한 척, 내게 욕심내지 말란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대인 관계도 좋고, 예의 바르고...
다 갖춘 아이가 학교에 몇이나 되는지 생각해 보란다.
내 아이가 상위 1%가 되길 바라는 기대를 버리란다.
"걱정도 하면 늘어. 그냥 기다려 보자.
애는 괜찮은데 엄마가 계속 이야기하면 본인도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어."
'누가 상위 1%를 바랬나? 그래, 니 똥 굵다' 하고 방에 들어와 누워 떠올린다.
욕심이 맞다.
내 뱃속에서 나왔는데 적응이 빠를 수 있나.
밖에서 할 말 못하고 집에 와서 늘어 놓는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받아 태어난 아이.
처음이 원래 힘들던 아이였다.
낯을 원래 심하게 가리던 아이였다.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 어린이집으로 곧장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집 현관문에서부터 전쟁을 치르거나, 어린이집 주변을 뱅글뱅글 맴돌거나,
어린이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을 갔다.
유치원 등원도 힘들었다.
겨우겨우 유치원에 들여보내면 유치원 반 문 앞에 숨어 들어가질 않았다.
유치원에서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사진에는 반 문 앞에 신발 들고 붙어 있는 사진이 어김없이 있었다.
유치원 7세 되던 해 담임 선생님과 첫 대면하던 날,
담임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냐고 물으셨다.
애가 적응하는데 오래 걸린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담임 선생님 말씀하시길,
"어머니, 제가 애가 셋이에요.
엄마가 걱정하면 애도 걱정해요.
믿어주세요. 믿는 대로 아이가 자라요."
아이는 유치원 7세 되던 해 가을, 반 친구들 사이에서 인싸가 되었다.
그래, 이번에도 믿어보자.
2학년이 되든, 3학년이 되든 그때는 적응하겠지.
혹,
적응이 안 되면,
그땐 혼자서 잘 지내는 방법을 알려주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