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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Jan 06. 2022

거울아, 거울아

아름다움과 예쁨  

  

 ‘아름답다’는 ‘예쁘다’보다 너그럽다. ‘예쁘다’는 보통 누가 봐도, 뭐 누구나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이 인정할 만한 ‘미’를 지녔을 때 하는 말이다. 순수하고 단순한 어린아이의 눈에도, 모진 풍파를 거친 노인의 눈에도 예쁜 사람은 예쁘다. ‘아름답다’는 좀 더 품이 넓다. 몇 날 며칠 잠을 못 자 퀭한 눈에 까치집 머리, 옷엔 토한 우유 자국이 얼룩덜룩한 채로 신생아를 돌보는 새내기 엄마, 아빠는 예쁘지는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 신체 일부가 절단 나거나 화상을 입은 환자가 예쁠리는 없지만, 생의 활력을 가지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답게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니까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시선에서 예쁘다고 볼 순 없지만,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피조물을 바라보는 신의 눈으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으로, 내면을 바라보는 성인의 눈으로. 그것은 인식이 아닌 의지였다. ‘아름답다’가 아닌 ‘아름답다고 생각하자’에 가까웠다.   

       

거울 앞에서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사무실에서만 보기 아까워, 점심시간이 되자 탈출하듯 카페로 향한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어쩐지 혼자 즐기고 싶어 약속 있다는 핑계를 대고 일터에서 조금 떨어진 전망 좋은 카페를 찾았다. 책 한 권과 카페라테 한 잔을 앞에 두고 흐뭇하게 창밖을 바라다보다 문득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렸다. 거기엔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웃음기를 머금고 한 여인이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예뻐졌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순간적으로 ‘엄마야’가 튀어나오듯,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혼자 느끼고는 바로 뒤이어 우스워했으니. '풋, 이 생각은 뭐지? 뭘 잘못 먹었나?'

아름다움 아니 예쁨을 의지가 아닌 인식으로 느낀 일은 누구에게 말하기 다소 민망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자존감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자랑할 만했다. (물론 자랑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예뻐지기로 결심하다   

  

'예뻐지다'는 재미있는 말이다. ‘예쁘다’라는 형용사에 ‘어지다’가 붙어 동사가 되었다. 형용사와 동사의 차이는 변화 가능성이다.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하는 형용사에는 현재 진행을 의미하는 ‘-는’이나 ‘-고 있다’가 붙을 수 없다. ‘예쁘는’과 ‘예쁘고 있다’는 어색한 표현이다. 하지만 ‘예뻐지다’는 ‘예뻐지는’과 ‘예뻐지고 있다’가 가능하다. ‘젊는’과 ‘젊고 있다’는 말이 안 되어도, ‘젊어지는’과 ‘젊어지고 있다’는 종종 사용되는 것처럼. 말장난 같지만 ‘예뻐지다’라는 합성어의 탄생은 ‘예쁘다’와 ‘예쁘지 않다’가 고정불변의 상태가 아닌 변화할 수 있음을, 실제가 아닌 착각일지라도 그러한 가능성을 품고 싶은 기대를 보여준다.


예뻐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이 빠져 체형이 달라졌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날따라 화장이 잘 되어서 혹은 잘 어울리는 옷을 입어서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거울 앞에서 잠시나마 공주병에 걸렸던 날은 살이 쪘으면 쪘지 빠지지 않았고, 코로나 이후 화장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옷도 교복처럼 맨날 걸치는 코트를 입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헤아려보건대, 편안해진 마음 덕분 같다. 자기 전에 걸리는 일이 없으면 행복하다고 했던가? 행복의 정의가 그러하다면 최근 나는 많이 행복했다. 행복해졌다. 무엇 하나 거리끼는 일, 염려스러운 일이 없었으며,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일상이었다. 스트레스가 없으니 표정이 밝고 혈색이 좋을뿐더러 피부도 전보다 깨끗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예뻐져야겠다. 예뻐야겠다. 하루하루 근심을 지워가며, 행복을 쌓아가기. 그 점검을 위해 거울을 자주 들여다봐야겠다.

“거울아, 거울아. 오늘 내 예쁨 상태는 어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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