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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이름 Jan 12. 2023

쉬운 임신은 없다

7년 만에 찾아온 둘째… 마흔두 살의 출산, 쉽지 않은 육아 이야기

7년 만이었다. 꼬물거리는 아이를 키워본 기억이 가물 거릴 때쯤 둘째가 찾아왔다. 마흔 하고도 하나였다.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와 이직을 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시기였다. 주말부부를 청산하려던 것이 내 의지가 아니었기에 나는 늘 화가 나 있었는데, 그 화가 체념으로 바뀌었을 때였다. 당연히 계획한 일도 아니었다. 기쁨보다는 당혹이,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것은 바로 내 나이와 체력 때문이었다.


첫째를 낳은 게 서른다섯 살. 그때도 나이가 많은 산모라 했고 임신기간 아이를 유지하는 것이 조마조마했다. 힘이 들었지만 둘째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두 번째 임신에서는 어쩐지 아이의 심장이 제 박자대로 뛰어 주지 않아 소파술을 해야만 했고 세 번째 임신일 때도 “태아 심장이 조금 늦게 뛰네요. 쉽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라은 말을 들었다.


두 번째 유산을 하던 때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원래 자궁 질환이 있어 서울 큰 병원을 예약하고 방문했을 때였다. 난소 혹과 근종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확인하러 가서 임신 사실을 알았다. 의사 선생님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일단 기다려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상냥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절대 안정. 일주일 뒤 다니던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리하지 말고 그냥 누워있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냥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다. 회사에서 행사 하나 치르고 이런저런 일을 평소처럼 해냈다.


아마 그날이었던 것 같다. 소곱창에 갈비가 당겨 근 2주 동안 저녁 외식을 했는데, 회식 때 이상하게 고기가 당기지 않았다. 아침부터 굶고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한 후라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냥 입맛이 뚝. 그러더니 월요일 아침 피가 비치기 시작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졌다.


응급처치를 하고 언니를 불렀다. 남편이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언니와 40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겨우 도착했다. 급하게 접수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가는 데, 다리를 타고 피가 흘러 신발까지 흥건해졌다. 당황했지만 여기서는 안 된다 싶어 죽을힘을 다해 뚜벅뚜벅 진료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대기실에 앉아 있던 만삭의 산모들이 '헉!'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급하게 피를 닦아내고 진료를 하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00 씨 이제부터는 뒤로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생각해야 해요. 아셨죠?"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정리가 되고 난 뒤 병실에 누우니 그제야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냥 드러누워있었으면 달라졌을까.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까. 시간을 돌리도 또 되돌렸다. 원망, 후회가 또 눈물이 교차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뒤로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앞으로만..’


이틀 뒤 퇴원을 했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자 마음도 조금 안정이 되었다. 얼마 뒤 회사를 빠져가며 나를 태우고 병원으로 내달린 언니가 말했다.


"우리는 네가 제일 중요해.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후에는 둘째에 대한 생각은 접고 살았다. 이상하게 몸이 자꾸 아팠고, 두 번째 유산했을 때 생각이 나서 두렵기도 했다. 무엇보다  큰아이가 주는 사랑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을 겪기 전에는 결혼을 하면 애는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임신’이라는 두 글자 사이에 이렇게 많은 일이 있다니. 어쩌다 덜컥 임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열 달을 무사히 나기가 쉽지 않고 출산은 더더욱 힘들다. 모두가 ‘순둥이’라고 하는 아이조차 하루하루 키워내는 순간은 꽤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며칠 전 ‘손 없는 날’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차 싶은 장면이 있었다. 출연자가 신청 사연이 너무 평범해서 당첨될 줄 몰랐다고 했다. 그것도 첫 회 사례자로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방송에서 보던 자극적이거나 극적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함이 주는 공감의 힘이 느껴졌다. 결혼과 쉽지 않았던 임신과 출산, 워킹맘의 이야기가 오히려 ‘맞아, 나도 그랬지’ 싶어 재방송까지 두 번이나 더 챙겨보았다.


그 공감의 힘에 나도 용기를 내어 내 이야기를 정리하게 되었다. 무엇을 쓰고 싶은데 ‘이게 이야기가 될까?’ 싶어 망설였던 일을 하나씩 풀어보기로 했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이지만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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