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by Sam의 기억 궁전


한 달이라는 시간은 늘 묘한 감각을 남긴다. 하루는 너무 짧아 금세 사라지고, 일 년은 멀리 있어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러나 한 달은 그 사이에서 삶을 조율하는 특별한 호흡처럼 다가온다. 달력이 넘어갈 때마다 우리는 벌써 한 달이 지났다며 놀라워하면서도, 지난 시간에 담긴 일들이 얼마나 빽빽했는지를 떠올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길게 늘어져 버티기 힘든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한 달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거울이다.


새 달의 첫날은 늘 설렘으로 시작한다. 달력의 빈칸을 바라보며 이번 달에는 달라지리라 다짐하고, 아직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칸들이 가능성으로 반짝인다. “이번 달에는 운동을 시작해야지, 이번 달에는 꼭 책을 몇 권 읽어야지, 이번 달에는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야지.” 이런 다짐들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른다. 그러나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그 칸들은 약속과 업무, 계획과 기록으로 가득 차고, 때로는 새로운 다짐을 잊은 채 바쁜 일상에 쫓기기도 한다. 그리고 달의 끝자락에서 또다시 한 장을 넘기며 지난 시간을 평가한다. “아, 이번 달도 벌써 끝났구나. 내가 하려던 건 얼마나 해냈지?” 이렇게 한 달은 시작과 끝이 분명한 작은 실험장이며,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우리를 점검하게 만든다.


똑같은 30일이지만 체감은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한 달은 눈 깜짝할 새 흘러가지만, 불안과 기다림 속에서 보낸 한 달은 마치 일 년처럼 길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 채용 발표를 기다리는 구직자, 병실에서 회복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한 달은 고통스러운 기다림으로 늘어진다. 반대로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 몰입해서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에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에게 한 달은 너무나도 짧다. 결국 시간의 길이는 달력이나 시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라는 주기는 우리 삶에 중요한 리듬을 부여한다. 월급은 매달 들어오고, 목표는 매달 새로 세워진다. 회사는 매달 실적을 기록하고, 학교는 매달 시험이나 평가를 진행한다. 다이어트나 공부 계획도 결국 한 달 단위로 관리된다. 하루는 너무 짧아 변화가 잘 보이지 않고, 일 년은 너무 길어 중간에 흔들리지만, 한 달은 적당히 길어 변화를 확인할 수 있고 적당히 짧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한 달은 실패한 이들에게 언제든 다시 기회를 주는 위로의 단위다. “이번 달엔 제대로 못했어도, 다음 달에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한 달이다. 작심삼일로 끝나더라도 새 달이 시작되면 우리는 또다시 할 수 있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한 달은 우리에게 갱신과 회복을 허락하는 작은 사이클인 셈이다.


사실 한 달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인간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다. 본래 달이 차고 기우는 자연의 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의 농부들은 달을 보며 씨를 뿌리고 수확했으며, 축제와 제례도 달의 모양에 맞추어 치렀다. 바닷가 어부들은 달의 차고 기우는 주기를 보고 조수간만의 차를 계산했다. 여성의 생리 주기도 달의 주기와 맞닿아 있어 ‘달의 시간’이라고 불렸다. 그렇기에 한 달은 인간과 자연이 맺은 오래된 약속이자, 우리가 본능적으로 시간을 정리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달빛이 매일 밤 달라지는 모양을 보여주듯이, 우리 인생도 한 달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지어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결국 수많은 한 달들의 합이다. 어떤 달은 눈부신 성취로 기억되고, 어떤 달은 힘겨운 고통으로 남는다. 또 어떤 달은 특별한 일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 평범한 달들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된다. 바쁜 일정 속에 정신없이 보내버린 달도 있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 채운 달도 있다. 인생의 질은 거창한 일 년의 성과보다, 매달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한 달을 허투루 보내면 일 년도 허무하게 흘러가지만, 한 달 한 달 의미를 쌓아간다면 그것이 모여 인생 전체를 빛나게 만든다.


한 달은 늘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선다. 어떤 때는 기다림의 고통으로, 어떤 때는 성취의 기쁨으로, 또 어떤 때는 조용한 평온으로.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시작은 흰 페이지이고, 끝은 발자취다. 매달 반복되는 이 작은 순환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살아간다. 그렇게 쌓인 수십 번의 한 달이 결국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


그래서 한 달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관한 문제다. 같은 30일을 누구는 지루하게 흘려보내고, 누구는 땀과 열정으로 채운다. 같은 30일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미루기와 후회로 남고, 어떤 이에게는 도전과 성취로 기억된다. 한 달이란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안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다. 달력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넘어가지만, 그 달력 위에 새겨지는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한 달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삶의 리듬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며, 우리 인생을 지탱하는 기본 단위다. 달력을 넘기는 순간마다 우리는 또 다른 삶의 장을 맞이한다. 한 달이 쌓여 일 년이 되고, 수십 번의 일 년이 모여 한평생이 된다. 그러니 지금의 한 달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결국 우리의 인생 전체를 결정짓는다. 한 달은 작은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가까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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