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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의 시대

우리는 모든 것에 익숙해야 하는가?

by 한수

돌아서면 새롭다. 어제의 것은 구식이 된다. 오늘은 내일과 호환되지 않는다. 사실 기능에 문제는 없지만 버려야 한다. 흐름을, 시대를 거스를 수 없으니. 그래야 할 것 같으니. 특정 브랜드의 노트북이 있어야 특정 커피숍에 갈 수 있다는 말이 마냥 우스갯소리는 아닌 것 같다.


새로운 것은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종종 돈이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새로운 것은 매우 고되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 욕구는 상당히 강하고 또 광범위하다. 정말로 대세인가 보다.


영상편집프로그램 사용법, 자막삽입프로그램 사용법, 대화형 인공지능서비스 활용하는 법…. 새로운 무언가는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어 낸다. 매뉴얼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수많은 사람이 배움의 길에 접어든다. 일단 오늘은 그것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물론 중요한 일이다. 매뉴얼?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중요한 건 아니다. 적어도 이렇게 우후죽순 뻥뻥 터질 만큼 모두에게 중요한 건 더더욱 아니다.


시도와 포기가 반복된다. 삶이라는 게 본래 그렇더라도, 가끔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에 전문가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것에 전문가가 된다고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 능력을 활용하는 건 다시 각자의 몫이다. 일례로 사회복지사 자격증 소지자의 10분의 1만이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모든 도전은 응원할 만하다. 언제 어디에서 (일이든 취미든) 나의 것을 찾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것을 배울 필요는 없다. 모든 것에 익숙해질 필요도 없다. 물론 그럴 수도 없고.


배워야 할 게 많다는 건 제대로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과 같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렇다. 선택과 집중. 지금처럼 딱 들어맞는 때가 또 있었을까. 지금처럼 그것이 어려운 때가 또 있었을까.


늘어나는 전자기기와 그에 딸린 충전기들 간수하기도 나는 벅차다. 그럼에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나의 심리는 무엇인가.


나의 무언가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면, 때론 과감히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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