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미학
결혼에는 독립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심리적인 거리감을 두어야 한다고 했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적당한 거리는 나와 타인 모두에게 좋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서로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 관심을 주고받는 겁니다. 나와 상대방의 독립적인 공간을 보장하는 겁니다. 정해 놓은 그 선을 함부로 넘지 않는 겁니다. 그런 관계야말로 건강히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선이 늘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간혹 경계를 넘나들어야 할 때도 있지요. 이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커플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전에 없던 다툼을 겪게 됩니다. 굳이 꺼내놓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묘한 신경전이 있죠. 나와 상대방의 선호가 달라서이기도 하고 서로의 가족에 더 맞추려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우위에 서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겁니다. 이왕이면 가족들과 친구들이 편하기를 바라는 마음인 거예요.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합니다. 참석하거나 준비하기 좋은 날짜와 시간, 식장의 지리적 위치, 개인적으로 바라고 있는 예식의 방식 등 모든 것에 한목소리가 나올 수는 없겠지요. 우리 둘의 의견을 합치는 것도 힘든데 가족과 친구들의 사정까지 고려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내가 될 사람 역시 나와 같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겁니다. 그래서 대립이 생깁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이 더 쓰이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결혼할 상대는 그보다 가까운 사람이니, 고민할수록 야속할 겁니다. 물론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상황이 그러한 것뿐입니다.
그 당시 저는 이 모든 상황을 먼저 겪은 결혼 선배들을 떠올렸습니다. 부모님, 형제들, 친구들을요. 새삼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는 꽤나 벅찼거든요. 그냥 우리 둘이 결정하면 좋겠더라고요. 피곤함이 정점을 찍을 때쯤엔 이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우리가 결혼하는 건데 우리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결혼식을 준비하는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시달림에 지친 목소리라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해 줄 수 있어요. 안 될 건 없습니다. 단, 뒷감당 할 각오는 해야겠지요.
사람의 감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무언가를 두고 ‘좋은 마음'이 드는 것도 그래요. 보통은 내 입맛에 맞는 것, 내가 멋있게 보이는 것, 내가 앞서 나가는 것, 내 시간이 단축되는 것, 내가 비교적 조금 움직이는 것이 좋지요. 이득이라 생각하는 그것이 ‘나’와 결합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결코 그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때로는 타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지요. 그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체면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그들을 신경쓰면 몸은 피곤할지언정 마음은 좋거나 편하거든요. 어찌 보면 그 역시 나를 위한 행동인 거지요.
결혼식을 치를 때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아내와 상의하여 결정한 그 몇 가지는 끝까지 고수하는 강단이 필요합니다. 대신 나머지 것들은 상황에 맞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고 우리가 주인공인 행사이지만 그들 역시 조금씩은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이 상황은 예비 신부에게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침착함, 담대함, 인자함, 포용력을 보여줄 수 있거든요.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태도는 지켜보는 사람에게 각인될 게 분명하지요. 평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왕이면 스타트를 잘 끊는 게 좋지 않겠어요?
여담으로, 결혼식을 준비하는 시기에는 가족들과도 다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니 무엇 하나 시원하게 대답해 주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왠지 저쪽과 이쪽 모두에게 압박을 받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날 수 있거든요. 하지만 각자의 입장을 인정하고 설득을 시도하길 바랍니다. 같은 결과가 예상되더라도 옳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 관계가 그렇습니다. 나만 좋다고, 우리만 좋다고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우리만 좋았던 그것이 결과적으로 우리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적절한 안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