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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Mar 10. 2021

집에서 만드는 김밥에는 스팸을 넣는다

일상의 흔적 130

3월 3일. 김밥햄 대신 스팸 두 조각, 사치스러운 집 김밥

엄마의 큰손 본능이 되살아났다. 코로나 19 때문에 친한 이모들을 불러 밥 먹일 수도 없어서 조심해왔는데 결국 올게 왔다. 반찬도 국도 조금씩 만들던 엄마가 답답함을 외치며 한가득 밥을 하고 김밥 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 집 냉장고에 없어서는 안 될 김밥용 단무지와 우엉을 꺼내고 물기를 빼면서도, 양푼 가득 계란을 깨 넣고 지단을 두툼하게 구워내면서도 엄마는 굉장히 신난 얼굴이었다.


엄마는 늘 음식을 많이 만들어서 나누는 걸 좋아한다. 허리 아프고 손목 아프다고 하면서도 사람들 먹일 음식 만들 때는 없는 힘도 솟아나는 것처럼 가볍게 움직인다. 사람들이 먹고 큰 리액션과 고마움을 전할 때면 엄마 얼굴에서 환하게 빛이 난다. 그런 엄마에게 식사 초대도 못하고 만든 음식을 마음껏 나누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나 우리끼리만 나눠 먹을 김밥에는 엄만 늘 스팸을 넣는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깡통 햄이기도 하고 김밥에 넣을 햄으로 비싸지만 맛있는 걸로 넣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삼삼하게 간한 밥에 아삭한 단무지, 꼬들한 우엉, 보들보들하고 고소한 계란 지단, 짭조름한 스팸까지. 우리가 좋아하는 재료들로만 구성된 우리 집 스페셜 김밥.  맛있는 거와 맛있는 것의 조합이니 당연히 맛있다. 두세 줄은 우습게 먹을 정도로.


소풍 갈 때면 주변 친구들을 의식하며 빵빵한 재료에 다양한 김밥을 만들지만, 우리끼리 먹을 때면 이렇게 편파적인 재료만을 사용한다. 계란도 더 두툼하게 두줄, 맛없는 당근이나 시금치는 빼고 햄은 큰 깡통에 든 스팸을 시원하게 따서 두 줄씩! 편파적인 재료를 밥 위에 꾹꾹 누르면서 엄마는 늘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마치 장난을 치는 아이처럼 은밀하고 빠르게 재료를 집어 얼른 김으로 둘둘 싸버린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나도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괜히 키득키득 웃게 된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싸는 김밥에 스팸 넣는 게 뭐라고 이렇게 웃을 일인가 싶지만, 스팸이 들어간 김밥은 나름 엄마와 나만의 비밀스러운 추억이 있는 음식이다. 김밥에 넣을 스팸을 자르고 구워서 양껏 넣을 때마다 그때 기억이 떠올라 엄마와 웃곤 한다.


내가 초등학생 때 할머니가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돌봐주러 잠시 오셨었다. 가공품을 싫어하고 제철 음식을 좋아했던 할머니는 엄마가 사 오는 깡통 햄이나 냉동 너겟을 정말 싫어하셨고 나에게 먹이는 걸 마치 잘못된 일처럼 여기셨다. 물론 할머니 솜씨가 너무 좋아서 딱히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은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특히 스팸 특유의 짜디 짠 햄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엄마가 김밥에 몰래 스팸을 넣어줬다. 그땐 할머니 감시 아래 나물과 다른 야채가 가득 들어갔지만 할머니의 눈길을 내가 뺏은 사이에 엄마가 몰래 스팸을 넣었다. 할머니한테 드릴 김밥은 스팸 없이 나물만 들어간 김밥이라 엄마는 일부러 옆구리를 터트려 스팸 김밥을 표시했다. 그러고는 옆으로 살짝 빼놓고 나물 김밥을 다 같이 먹고 몰래 다시 주방으로 나와 스팸 김밥을 먹었다.


할머니가 잠시 전국노래자랑에 빠진 틈을 타 주방에 서서 스팸 김밥을 먹고 있으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다 큰 엄마와 딸이 나란히 서서 김밥을 몰래 먹고 있는 모습이 웃겼다. 대단한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처럼 엄마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할머니가 다시 가신 후로는 얼마든 먹고 싶은 가공품을 먹을 순 있지만 어쩐지 몰래 먹던 스팸 김밥만큼 맛있는 건 없었다.


엄만 그 후로 한동안 잊고 있다가 종종 스팸 김밥을 만들었다. 좋은 사람들과 나눠먹을 김밥을 만들 때, 그저 눈에 스팸이 보여서. 이유는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가 생각날 때라는걸 알고 있다. 나이가 먹을 수록 할머니가 더 보고 싶다며 웃는 엄마의 눈이 슬퍼서, 어쩐지 스팸 김밥이 더 짜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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