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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28. 2022

깨끗한 교복보단 고소한 계란 후라이

엄마의 삶 2

엄마의 책을 쓰기로 하면서 이런저런 옛날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 모든 걸 정리해서 쓰자고 하니 게으른 내 성품이 발목을 잡는다. 결국 내 선택은 엄마의 기억을 따라 모든 이야기를 적고, 나중에 편집하는 것! 이렇게라도 하나씩 시작하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언젠가 끝에 다다르겠지라는 생각이다. 이번 이야기는 엄마의 중학생 때, 교복에 얽힌 이야기다.



엄마의  교복은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길고 종아리까지 오는  교복이었다고 한다. 당시 모두가 그랬듯이 비싼 교복을 오래 오래 졸업까지 입히기 위해 크게, 최대한 길게 교복을 맞췄다.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 졸업한 어린아이에게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그저 다른 언니들 교복과는 다르게 하얀색 칼라가 깨끗했고, 교복 색이 쨍하다는  정도.


그런 엄마의 교복은 언니들 중 둘째 언니가 호시탐탐 바꿔 입을 기회를 노리는 귀한 물건이었다. 한번 사면 고등학생 때까지 입는 교복이기에 둘째 언니의 사이즈에 딱 맞았고, 무엇보다 깔끔하고 색까지 예뻤으니, 예쁜 것에 예민한 시기인 둘째 언니에게는 엄마의 교복이 가장 부러운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둘째 언니의 교복 바꿔 입기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둘째 이모는 몸이 가장 허약했고, 할머니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다. 딸 다섯의 도시락 중 유일하게 둘째 이모의 도시락에서만 귀한 계란 후라이를 몰래 넣었다고 한다. 둘째 이모는 먹을 것에 약한 엄마에게 도시락의 계란 후라이를 보여주며 교복을 바꿔입자고 했고, 깨끗한 교복보단 고소한 계란이 더 먹고 싶었던 엄마는 냉큼 교복을 주었다고 한다.


자주 먹을 수 없는 계란이 도시락에 들어있다니! 엄마는 도시락을 들고 학교를 가는 내내 두근거리는 마음에 빨리 점심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순진한 엄마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꺼내 밥 밑에 슬쩍 들어있는 고소한 계란 후라이를 먹으며 행복했고, 무엇보다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둘째 이모는 딱 맞는 교복에 새하얀 칼라 교복을 입고 등하교하며 즐거웠으니 사실 서로 윈윈이 아닐까.


한동안 할머니는 이 두 딸이 모종의 거래를 하는 것을 몰랐는데, 어느 날 보니 갓 입학해서 새 교복을 샀던 아이가 누런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이마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몸이 약해서 몰래 챙겨주던 계란을 건강하고 활발했던 엄마가 다 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꿀밤을 먹이며 혼냈지만, 몰래 이루어지는 거래를 막을 순 없었다.


엄마가 학년이 올라가 혼자만 누렇고 색이 바랜 교복을 입는다는 것을 깨닫고 계란 후라이를 거절할 때까지  거래는 계속되었고,  학교를 졸업하자 교복은 어느 창고로 들어갔다가 다른 옷으로 탄생하며  거래는 끝이 났다.


새하얀 칼라와 쨍한 교복 vs 고소한 계란 후라이, 어떤 것이 더 큰 행복일지는 각자 다 다르겠으나 나도 엄마의 딸인지라 교복보단 계란 후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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