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EK Miyoung Jan 23. 2024

지난여름, 산에게

수축, 버텨야 한다.

27주를 코앞에 앞두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만약 이대로 수축이 잡히지 않고 진통으로 진행이 되면 출산을 진행하는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다 했다.

아직 27주가 안되었다. 아직 네 몸무게는 1Kg을 넘기지도 못했다.

“아직 아기가 너무 작아요 선생님…”

심각한 표정으로 초음파를 보는 의사 선생님에게 아직 출산은 이른 일이라 간청하고 싶었다.

“그래도 진통으로 이어지면 어쩔 수 없어요. 어제 25주 산모도 출산했어. 걱정 마요. 최선을 다할게요.” 

의사 선생님은 답했다.


수축억제제를 달아야 했다. 맨 처음 쓴 약물은 라보파였다. 관리만 잘하면 수축이 가장 잘 잡히면서도 급여가 적용되어 가격도 저렴한,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약물이다. 이때부터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 양물의 투입량을 조절했다. 시간당 약물 투입량을 아주 미세한 단위까지 조정할 수 있었다. 처음 시간당 10mg의 양을 투여받았다. 

폴대에 설치된 약물 투여기.

 안 그래도 움직일 때마다 끌고 다녀야 하는 링거 폴대가, 이제 이 기계 탓에 무거워지기까지 했다. 침대에 누워있을 때는 이 기계를 충전한 채 지내야 한다. 깜빡하고 충전 코드를 빼놓았다가는 기계에서 엄청난 굉음의 알람 소리가 울렸다. 치료실 전체를 울리는 알람이라 거의 소방 경보처럼 들리기도 했다. 뭐랄까, 나는 터미네이터가 된 느낌이었다. 라보파를 달아주는 간호사 선생님은 찹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한 달 이상 입원을 하면서 고위험 산모 치료실 대부분의 의료진과는 안면을 텄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수액줄도 없이 자유롭게 지냈다는 것을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늘은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라보파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어제는 수액 라인도 없이 다녔는데… 그렇죠?”

“그러게요… 어쩔 수 없죠.”

 라보파의 가장 일반적인 부작용은 손떨림, 심장 두근거림으로 인한 불면증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폐에 물이 차는 것이다. 그를 체크하기 위해 약을 투여받는 순간부터 입으로 먹고 마시는 것과 소변/대변과 같이 밖으로 배설하는 모든 것을 기록해야 했다. 라보파의 진정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주기적으로 잡히던 수축이 안정되었다. 부작용 역시 바로 나타났다. 손이 떨렸고 심장이 말할 수 없이 두근거렸다. 식사 시간 수저를 들어 올리는 것이 어색했다. 어째서, 임신을 하고 이런 일들만 경험해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라보파를 쓴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참을 수 없는 답답함과 토기로 몸을 똑바로 세울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누군가 내 가슴 위에 올라가 짓밟는 듯했다. 그 탓에 숨을 내쉬는 것이 힘겨워졌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 나는 의료진을 호출하여 내 상태를 알렸다. 혹시라도 폐에 물이 차면 큰 일이었다. 의료진들은 나를 바로 엑스레이 검사실로 보냈다. 

 새벽 2시. 고위험 산모 병동이 있는 6층에서 엑스레이 검사실이 있는 2층으로 휠체어에 탄 채 내려갔다. 그렇게 빈 병원을 마주할 일은 앞으로도 없겠지만, 생경한 풍경이었다. 외래 환자와 의료진들 모두가 빠져나간 병동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막 잠에서 깨어난 것으로 보이는 당직 의사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으로 폐에 물이 차지는 않았다. 하지만 라보파 약물을 계속 쓸지 논의를 해야 한다 했다. 우선은 약물 수치를 10에서 5로 내렸다. 만약 이것으로도 부작용이 지속된다면 약물을 바꿔야 했다. 

 며칠을 잘 버텼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라보파를 사용한 지 4일쯤 지났을 때 다시 수축이 찾아왔다. 약물을 바꿔야 했다. 나는 마그네슘과 트랙토실을 달게 됐다. 트랙토실은 라보파보다 부작용이 적고 산모의 몸에 부담도 적어 이상적인 약물로 불리지만 비급여 항목이라 매우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한 사이클에 50만 원 정도이니, 약물을 길게 사용할 경우 몇백만 원이 우습게 깨진다. 하지만 라보파를 고농도로 사용할 수 없었기에 나는 트랙토실 이외의 선택가 없었다. 

약물 투여기가 2대로 늘었다. 각각 마그네슘용&트랙토실용

 수축이 오면서 아기의 심장 박동 역시 조금 불안정하다 했다. 안정적인 산소 공급을 위해 산소마스크를 꼈다. 주렁주렁 달린 수액줄에 산소마스크까지 끼고 보니 정말 중환자가 다 된 모양새였다. 슉-슉 산소마스크로 산소를 들이키며 이제 내 임신이 정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친정에 전화해서 출산 용품을 챙겨놓을 것과, 남편에게 해당 용품들을 보내놓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병원 근처 산후조리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그네슘을 쓰기 전부터 의료진은 이 약물로 몸이 꽤나 힘들거라 알려줬기 때문에 무척 긴장되었다. 길게 쓸 약물은 아니지만 잘만 쓰면 수축에 큰 도움이 될 거라 했기에 없는 기운을 모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마그네슘의 영향은 굉장했다. 강한 열감이 느껴지고 정신이 아득하니 몽롱해졌다. 수축억제제는 결국 몸의 근육을 억지로 이완하는 약물이다. 때문에 전반적으로 몸에 기운 하나 없이 축 늘어지게 된다. 나는 이제 일기를 쓰지도, TV를 볼 수도 없었다. 단 몇 분을 어떤 곳에 집중하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만히 누워 졸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마치 물도 흙도 아닌 진흙 속에 천천히 몸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얼굴에는 열이 바짝 올라 견디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열감이 느껴지는대도 몸에 열을 재면 정정 체온인 것이 신기했다. 뱃속에 있는 너를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산모의 몸에 열이 나면 양수가 뜨거워져 아이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수축억제제를 맞은 지 일주일가량 흘렀을 때, 나는 심각한 코감기에 걸렸다. 살면서 그렇게 코가 막혀본 적은 처음이었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코로는 공기 한 줄 기도 통과시킬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잠을 전혀 잘 수 없었는데, 입으로 숨을 들이켜다가 컥, 하고 코에 걸려 깨어나는 것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임신 중이니 약물을 쓸 수도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뭐라도 처방을 해달라 부탁했지만 딱히 손 쓸 방법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물에 적신 수건을 침대 머리맡에 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입으로 숨을 내쉬니 입술은 바짝 마르고, 몸은 더럽고, 잠은 못 잤고, 약물로 인해 기운이 한없이 쳐졌다. 입술이 새하얗게 부르텄다. 남편이 싸 온 도시락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껏 만들어온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수 없어 슬펐다. 이게 최악의 상황일까 싶었을 무렵,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이 닥쳐왔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난여름, 산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