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출산은 멀었는데요...?
7월의 여름. 임신 31주차 반에 접어들었다.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님은 분명하지만 어쩐지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하다. 고대했던 30주를 넘겼고 남편도 무사히 한국에 와 나와 뱃속 아이의 곁을 지키고 있는 덕분이리라. 다만 문제가 있다면 상대적으로 내 몸이 지나치게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여름의 임산부가 이렇게 힘들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살이 접히는 부위마다 속수무책으로 땀이 흐르고 내딛는 걸음마다 몸의 체중이 한 뼘씩 늘어나는 느낌이다. 밤이건 낮이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두 눈을 꼭 감고 에어컨을 풀가동할 수밖에 없다. 지구에게 죄스러운 인간, 여기 하나 추가요.
임신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배가 그렇게 많이 나온 축에 속하지 않았다.(진짜다.) 그러다 임신 6~7개월이 다다를 무렵부터 슬 만삭이냐는 말을 심심찮게 듣더니 28주차를 넘어서서는 하나둘 심각하게 걱정 어린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내 배를 빤히 바라보던 언니가 어쩌려고 배가 그리 큰 것이냐는 타박을 했을 때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솔직히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알다시피 이건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언니말로는 자기 주변에 나와 비슷한 주수의 산모가 있지만 그의 배는 내 배만큼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슬 걱정이 됐다. 만삭에 이르기까지는 10주 가량이 남아있고 뱃속 아이가 폭발적으로 자라나는 시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내 배가 객관적으로 봐도 다른 임산부에 비해 크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있었는데, 지난주 남편과 아이 초음파를 보기 위해 산부인과 병원을 방문했던 때였다. 의사 선생님은 내 배를 보자마자 이건 만삭의 배 크기라며 놀라워했다! 맙소사! 의사가 보기에도 내 배가 그렇게 크단 말인가?!
나는 의사 선생님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 대체 이유가 뭔가요?"
초음파를 통해서 본 뱃속 아이는 주수에 비해 지나치게 크지 않았다. 적정 체중에 양수량 역시 적당하다 했다. 의사 선생님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내 키와 골반의 모양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추측 어린 답변을 주었다. 내 키는 정확히 160으로 대한민국 평균 키에 비해 조금 모자란 정도이다. 골반이 문제라면 아마도 병원에서 흔히 말하는 속골반이 좁다는 이야기일 텐데, 그 부분은 예전 출산 때에 전해 듣긴 했었다. 결과적으로 크지 않은 키 탓에 뱃속 공간이 그리 넓지 못하고, 아기를 받치는 골반도 좁아 아이가 위로 불쑥 솟아있다 보니 배가 더 많이 나와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조심스레 한 가지를 더 물었다.
"... 그럼 여기서 배가 더 나올까요?"
의사 선생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아...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산만한 배를 내민 채 길을 걸어다니면 마치 개선장군이 된 느낌이 든다. 내 앞에 마주 오던 모든 사람이 양쪽으로 흩어져서 길을 터주기 때문이다. 다들 시선은 내 배를 향하고 있다. 슬쩍 민망하긴 하지만 어떤 때에는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기도 한다. 종종 언급을 했던 것처럼 이렇게 자랑처럼 배를 내밀고 길거리를 활보하며 걷는 일을 아주 간절히 염원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속절없이 커지는 배 정도야 우스갯 농담으로 치부한다한들, 무엇이 억울할까 싶기도 하다.
남편이 한국에 온 후로 심플했던 나의 일상이 조금은 다채로워졌다. 멀리는 가지 못하지만 근방에 산책을 가거나 갓 문을 연 가게에 가 순두부찌개를 먹기도 한다. 해가 떨어지고 지상의 열기가 약간 잦아들 때 마트에 가서 내일의 식사를 위한 식자재를 사고 그 틈에 약간의 산책도 덤으로 해본다. 오랜만에 먹는 컵라면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켜 캬~ 소리를 지르거나, 비싸서 쫄리긴 하지만 제철 과일인 복숭아를 호들갑을 떨며 먹어보기도 한다. 가만히 누워 남편 등에 배를 기대어 아이의 태동을 함께 느끼기도 하는 이런 일상이, 정말 소중하고 또 소중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