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미래와 상상] 03
우리는 하루 종일 기술과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기술은 그저 배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사고방식을 깊이 규정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술은 ‘뒤로 숨은 존재’였다.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고상한 지적 활동으로, 기술은 그저 수단이나 도구로 이해되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기술이 단순히 보조적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사회를 형성하고 방향을 결정짓는 힘이라는 사실을 점점 더 자각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술의 정의와 특징을 살펴보고, 역사 속에서 과학과 기술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검토한다. 이어 기술과 가치의 관계를 짚고,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이 하나로 얽힌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의 의미를 탐구한다.
‘기술(technology)’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tekhnologia에서 비롯되었다. tekne는 ‘만들다, 직조하다’를 뜻하고, logia는 ‘이론’ 혹은 ‘체계적 지식’을 의미한다. 즉, 기술은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라 무엇을 만드는 것에 대한 체계적 지식이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tekne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기술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tekne를 "결과를 만들어내는 합리적 능력"으로 정의했다. 여기에는 의술, 건축술, 음악, 시작(詩作) 등이 모두 포함되었다. 중요한 점은 tekne가 단순한 경험이나 우연이 아니라, 원리와 원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식이라는 것이었다.
서양 중세부터 근대 초기까지 기술은 라틴어로 ars(영어로 art)라고 하면서 기예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기술과 예술은 결코 분리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이다.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과 같은 명화를 그렸던 그는 동시에 뛰어난 기술자였다. 건축가로서 도시를 설계했으며, 새의 비행을 관찰하여 비행 원리를 파악한 후 헬리콥터나 비행기를 설계했다. 그에게 예술과 기술은 하나의 통합된 탐구 활동이었다.
기술과 예술의 분리는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과 함께 본격화되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전통적인 길드 시스템이 해체되면서, 그전에 기예를 담당하던 장인(artisan)은 예술가(artist)와 엔지니어(engineer)로 분화되었다. 19세기 중반에는 엔지니어링(engineering)이 공학(engineering)과 기술(technology)로 다시 세분화되었다.
기본적으로 기술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자연을 조작하고 변형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여기에 어떤 행동이나 표현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부차적인 뜻이 담겼다. 이러한 기술은 여러 측면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대상로서의 기술’, ‘지식으로서의 기술’, ‘행위로써의 기술’, ‘시스템으로서의 기술’ 등을 들 수 있다. 현대 기술은 이 네 측면이 결합된 복합적 체계다.
* 대상으로서의 기술 – 인간이 만든 인공물, 즉 결과물 그 자체. 스마트폰, 자동차, 컴퓨터 등의 물리적 장치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나 시스템도 포함된다.
* 지식으로서의 기술 – 설계·제작에 필요한 이론적 지식. 공학 원리, 설계 방법론, 제조 공정에 대한 체계적 지식이다. 대학의 공학 교육이나 기술 문서가 이런 지식을 전달한다.
* 행위로써의 기술 – 현장에서 발휘되는 숙련된 활동. 숙련된 기술자의 노하우, 문제 해결 능력, 창의적 응용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는 단순히 매뉴얼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지식을 적용하고 변형하는 능력이다.
* 시스템으로서의 기술 – 현대 기술은 개별 기기나 지식이 아니라 복합적인 시스템으로 존재한다. 인터넷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프로토콜, 표준, 기관, 사용자가 모두 연결된 거대한 기술 시스템이다.
또 기술은 단순히 인간의 도구적 활동을 넘어서 인간 존재를 규정한다. 철학자들은 이를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만드는 인간)의 역설로 표현했다. 인간이 기술을 만들지만, 동시에 기술이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인공지능, 원자력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공학과 기술은 같은 것일까? 과학, 공학, 기술은 종종 혼용되지만 각각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 이들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현대 테크노사이언스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 과학(Science):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물리법칙, 화학반응 메커니즘, 생물학적 진화 과정 등을 탐구한다. 과학은 일반화 가능한 원리와 법칙을 추구한다.
* 공학(Engineering): 과학적 원리를 응용하여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지닌 새로운 제품이나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학문 분야다. "어떻게?"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제약 조건(비용, 안전, 환경 등) 하에서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목표다.
* 기술(Technology): 이러한 공학적 원리를 실제로 구현하고 활용하여 자연을 조작하고 변형하여 인간 생활에 이로움을 주는 실질적인 지식과 수단이다. 현장에서의 실행과 구현에 초점을 맞춘다.
증기기관 사례를 들어보자.
과학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든다. 예: “열을 가하면 물은 끓는다.”
공학은 과학 원리를 활용해 장치를 설계한다. 예: 피스톤과 증기기관을 설계·제작한다.
기술은 실제 현장에서 어떤 재료와 방법을 사용해 효율적으로 장치를 만들고 운영할지를 아는 것이다.
즉, 과학이 원리를 제공하고, 공학이 설계를 담당하며, 기술은 그것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고 개선한다. 산업혁명기의 증기기관 개발 과정은 이 관계를 잘 보여준다. 지하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기펌프가 발명되었고, 과학과 기술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다.
서양 고대 사회를 보면 과학과 기술은 서로 분리되어 처음부터 다른 역사 궤적을 그렸다. 과학(자연철학)과 기술(수공업)은 명확히 분리되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과 이론적 탐구가 최고의 지적 활동으로 여겨졌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감각적 경험보다 이성적 사유가 우월하다"라고 주장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관조적 생활(vita contemplativa)"을 "활동적 생활(vita activa)"보다 높이 평가했다.
반면 기술은 하찮은 육체노동으로 취급되었다. 자유시민은 노동하지 않았고, 기술적 작업은 노예나 수공업자들의 몫이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수학과 기하학에는 뛰어났지만 자신의 기계 발명품들에 대해서는 저술을 남기지 않은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실용성이 더 강조되었다. 로마의 건축·토목 기술은 오늘날까지 감탄을 자아낸다. 판테온의 돔, 콜로세움의 구조, 전국을 연결한 도로망과 수도교 시스템은 고도의 기술적 성취였다. 하지만 과학 탐구와는 분리되어 있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과학을 받아들였지만, 실용적 기술과 연결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중세 대학에서는 자연철학(과학)이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의 하나로 교육되었다. 7개 자유학과는 문법, 수사학, 논리학(삼학과)과 산수, 기하, 천문, 음악(사과)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자유시민의 교양으로 여겨졌다. 반면 기술 지식은 길드(guild) 체계를 통해 전수되었다. 대장장이, 석공, 직조업자 등의 길드에서는 도제 시스템을 통해 실용적 기술을 가르쳤다. 이런 지식은 대부분 문서로 기록되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중세 후기에는 변화의 징조가 나타났다. 13세기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은 『대저작(Opus Majus)』에서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기계적 기예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는 "실험 없이는 어떤 것도 충분히 알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17세기 과학혁명은 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당시 실험이 과학 방법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다양한 기구들이 필요했다. 망원경, 현미경, 진공펌프 등이 발명되거나 개량되면서, 과학과 기술은 만나기 시작했다. 갈릴레이(Galileo di Vincenzo Bonaiuti de' Galilei)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관측했으며,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은 현미경을 이용하여 미생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은 공기펌프 실험을 했다.
이 시기의 과학자들은 단순히 책을 읽고 사변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기구를 만들고 실험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신기관(Novum Organum)』(1620)에서 "지식이 곧 힘"이라고 선언하며, 자연을 정복하고 인간 생활을 개선하는 것을 과학의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관조적 지식관에서 실용적 지식관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18세기 산업혁명 시기에는 과학자, 기술자, 사업가 등이 함께 모여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의 장이 열렸다. 영국의 버밍엄 루나협회(Lunar Society of Birmingham, 1765-1813)는 그 대표적 사례다. 루나협회는 달이 보름인 날 저녁에 모임을 가져서 '만월회'라고도 불렸다. 여기서 제임스 와트(James Watt, 증기기관), 매튜 볼턴(Matthew Boulton, 제조업자), 조지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화학자), 조지프 블랙(Joseph Black, 화학자), 에라스뮈스 다윈(Erasmus Darwin, 의사·자연철학자) 등이 활발히 교류했다.
이들은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과 실용적 문제 해결을 구분하지 않았다.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발견한 화학자였지만, 동시에 탄산음료 제조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와트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뉴커먼 엔진 모형을 수리하다가 분리 응축기 아이디어를 얻었다.
19세기에는 대학에 공학 교육이 본격 도입되었다. 미국의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1861), 독일 베를린공과대학교(Technische Universität Berlin, 1879) 등이 설립되었다. 독일에서는 19세기 후반 화학 산업과 전기 산업에서 산업연구소가 설립되었다. BASF, 바이엘, 지멘스 등의 기업들이 체계적인 R&D 조직을 만들어 과학과 기술을 결합한 연구를 수행했다.
20세기 들어 미국에서는 연구 중심 대학이 발달했다. MIT, 칼텍(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스탠퍼드 대학 등에서 과학과 공학이 긴밀히 협력하는 연구 문화가 형성되었다. 2차 대전 중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폭탄 개발), 레이더 개발 등 대규모 군사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과학-기술-정부-산업의 대규모 협력 모델을 확립했다. 전후 이런 모델이 민간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현대적 R&D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원자폭탄개발은 과학과 기술이 분리되기 어려운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어, 과학과 기술의 경계 구분이 어려운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eince) 시대가 열렸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과 기술의 구분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술이 과학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과학과 기술 그리고 공학의 접점이 확산되면서 과학과 기술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현대의 많은 연구 영역에서는 과학인지, 기술인지, 지식인지, 상품인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바로 테크노사이언스다.
∙ 경계의 해체: 전통적인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연구와 개발, 공공연구와 민간연구의 경계가 흐려진다. 대학의 연구소와 기업의 R&D센터가 협력하고,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함께 연구한다.
∙ 상업화의 가속화: 과학적 발견이 상품화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바이오테크놀로지, 나노테크놀로지,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연구 결과가 거의 실시간으로 사업화된다.
∙ 네트워크 연구의 확산: 개별 연구자나 연구기관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네트워크를 이루어 연구한다. 대학, 기업, 정부출연연구소, 벤처캐피털, 규제기관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된다.
현대 생명공학 연구는 테크노사이언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대학의 분자생물학 연구실에서 발견된 유전자나 단백질이 바이오벤처 기업을 통해 신약으로 개발되고, 대형 제약회사에 의해 상품화된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는 동시에 기업가가 되고, 연구 결과는 특허와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는다.
나노테크놀로지는 물리학, 화학, 재료공학, 전자공학이 융합된 대표적인 테크노사이언스 분야다. 나노 스케일에서는 물질의 성질이 기존과 달라지는데,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첨단 장비와 기술이 필수적이다. 주사터널현미경(STM), 원자힘현미경(AFM) 같은 나노 측정 장비들은 연구 도구인 동시에 그 자체가 하이테크 상품이다. 나노소재 연구는 바로 전자제품, 화장품, 의료기기 등의 상품 개발로 이어진다.
AI 연구도 테크노사이언스의 전형이다. 기계학습 알고리즘 연구는 컴퓨터과학의 이론 연구이지만, 동시에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의 핵심 사업 기술이다. 대학의 AI 연구실과 기업의 AI 연구소 사이의 경계는 거의 없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현대 과학기술 활동이 더 이상 "순수 과학"과 "응용 기술"로 나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을 통해 과학기술을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사회, 지식과 권력이 복합적으로 얽힌 네트워크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라투르의 관점에서 과학기술은 고립된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걸쳐 펼쳐진 네트워크 활동이다. 과학자, 기술자, 기업가, 정치가, 소비자, 그리고 기계, 재료, 데이터까지도 모두 이 네트워크의 행위자들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연구는 이론 물리학, 재료공학, 제조 기술, 산업 정책, 국제 무역, 소비자 수요가 모두 얽혀 있다. 어디서 과학이 끝나고 기술이 시작되는지, 어디서 연구가 끝나고 사업이 시작되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은 더 이상 조용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사회의 권력 구조를 바꾸며,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적극적 주체다. 과학과 기술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고, 오늘날에는 테크노사이언스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가치, 권력, 사회적 함의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기술이 중립적이라는 신화를 버리고, 기술의 설계와 적용 과정에서 어떤 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러기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기술 문해력(technological literacy)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기술의 사회적 함의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