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기술의 미래와 상상 ] 01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과학의 산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과학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수록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더욱 답하기 어려워진다. 마치 공기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본질을 파악하기 힘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을 '객관적 사실의 집합체' 혹은 '실험실의 복잡한 기계들과 화학 공식들'로 떠올린다. 하지만 과학은 훨씬 더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현상이다. 과학은 단순한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인간의 호기심과 사회적 필요, 그리고 끊임없는 의문과 도전이 얽혀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문화 체계다.
이 글에서는 과학에 대한 여러 정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영국의 과학사회학자 존 자이먼(John Ziman)의 구조적 접근을 통해 과학자-과학지식-과학사회의 삼각관계를 탐구한다. 궁극적으로는 "과학자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21세기 과학기술문화 속에서 과학과 과학자의 사회적 의미를 성찰해보고자 한다.
라틴어 'Scientia(지식)'에서 유래한 과학은 오랫동안 '검증된 진리의 집합'으로 여겨졌다. 관찰과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 체계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과학은 검증된 사실과 법칙들의 체계적 집합이다. 예를 들어, 만유인력의 법칙은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에서부터 행성의 궤도까지 설명해 주는 보편 법칙이며, 진화론은 생물의 다양성과 변화를 이해하는 핵심 틀이다.
이러한 ‘지식 체계로서의 과학’은 주로 일반인의 관점이다. 과학지식은 절대적이며 객관적이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과학을 '완성품'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치명적인 함정을 안고 있다. 18세기까지 불타는 물질에서 '플로지스톤'이라는 가상의 물질이 빠져나간다는 이론이 과학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라부아지에가 산소의 존재를 발견하고 연소의 진정한 메커니즘을 밝혀내면서, 플로지스톤 이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처럼 과학 지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것이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Thomas Kuhn)의 표현을 빌리면, 과학은 '정상과학'과 '패러다임 전환'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일정 기간 동안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패러다임(paradigm) 안에서 연구가 진행되다가,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정상현상(anomaly)들이 축적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되어 과학혁명이 일어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학은 결코 완성된 지식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과학자의 시각에서 과학은 지식을 생산하는 탐구 과정이다. 2012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되었다는 발표를 생각해 보자.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64년 이론이 제안된 후, 50년 가까이 반복된 실험, 데이터 분석, 국제 협력이 이어졌다. 거대강입자충돌기(LHC)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실험장치를 만들고, 수조 개의 입자 충돌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마침내 힉스 입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결과만이 아니다. 실험 설계 단계에서 발생한 무수한 시행착오, 데이터 분석 방법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의 혼란과 재검토 과정 등이 모두 과학의 일부다. 앞에서 소개한 지식 체계로서의 과학은 결과물인 지식에 무게를 둔다면, 탐구 방법으로서의 과학은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을 중시한다. 즉 과학의 본성은 지식 집합체보다는, 그 집합체를 구성하는 조화로운 질서 추구에 있다는 것이다. 지식을 만들기 위해 하는 모든 과정, 질문하고 탐색하고 관계를 규명하는 모든 활동을 통해 논리적 체계를 형성하는 과정이 과학이다.
하지만 탐구 방법으로서의 과학이라는 정의도 한계가 있다. 과학적 방법론이 마치 요리 레시피처럼 정해진 순서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과학 연구는 훨씬 더 복잡하고 비선형적이며, 때로는 직관과 우연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페니실린의 발견이나 X-선의 발견처럼, 많은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이 예상치 못한 관찰이나 '행복한 우연(serendipity)'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학철학자들이 강조하는 세 번째 정의는 과학을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대표 주자였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증거에 기반해 추론하고, 기존의 믿음도 과감히 의심하며,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주장을 제시하는 태도가 과학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경험적 방법인 관찰과 실험 등을 통해 증거를 얻어 입증하는 것을 강조했다. 반면 칼 포퍼(Karl R. Popper)로 대표되는 반증주의자들은 입증에 의한 검증은 귀납문제를 낳는다고 보았다. 귀납 추론은 지금까지 관찰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아직 관찰되지 않은 미래나 전체를 추론한다. 그러나 이 추론은 단지 개연적인 사실, 즉 거의 참이나 참일 가능성이 높은 사실만을 제공할 뿐, 필연적 참이 되는 확실한 사실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유럽에서 발견된 백조들은 모두 하얗다. 그래서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명제가 귀납적으로 추론되었다. 그러나 호주에서 검은 백조가 관찰되어, 이 명제는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이처럼 귀납 추론은 예외와 확실성 한계의 문제를 보이기에, 반증주의 진영은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원리에 반발하며 반증가능성 원리를 강조했다.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주장이 호주 검은 백조에 의해 반증될 가능성을 가진 것처럼, 과학적 주장은 반증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제안된 주장이 여러 반증 시험에서 폐기되지 않고 용인되면, 과학적 지위를 지니게 된다. 반증주의에 의하면, 과학은 반증이라는 논리적 사고방식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시도이다.
하지만 '사고방식으로서의 과학' 정의 역시 한계가 있다. 과학적 사고가 만능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고, 과학 이외의 다른 사고방식들—예술적 직관, 종교적 성찰, 윤리적 판단 등—을 평가 절하할 위험이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정의는 각각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공통적으로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을 간과한다. 바로 과학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냉전 시대의 우주 경쟁을 생각해 보자.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와 1969년 미국의 달 착륙은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의 결과가 아니었다. 이념적 대립과 군사적 경쟁이 우주과학의 발전을 견인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AI 연구 열풍도 과학적 관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경제적 이익과 국가 경쟁력, 그리고 사회적 기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학의 사회적 성격은 연구 윤리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1975년 아실로마 회의에서 분자생물학자들이 유전자 재조합 연구의 안전성을 논의한 것이나, 최근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의 임상 적용을 둘러싼 국제적 논쟁은 과학이 단순히 '진리 탐구'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의 반영이다.
앞에서 제안된 과학 정의들은 단편적이어서 과학의 본성 일부만을 보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인 존 자이먼(John Ziman, 1925-2005)은 기존의 과학 정의들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적 접근을 제안했다. 철학, 심리학, 사회학 측면에서 과학에 구조적으로 접근했다.
1984년에 출간한 『과학학개론: 과학기술의 철학과 사회적 측면(An Introduction to Science Studies: The Philosophical and Social Aspects of Science and Technology)』에서 자이먼은 “과학의 구조는 과학자, 과학 지식, 과학 사회의 세 가지 차원과 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진다.”라고 언급했다. 과학자의 속성이나 개인적인 호기심 그리고 태도와 지능과 동기, 인식 등은 심리학 측면과 연관된다. 과학 지식의 본질, 지식 획득과 관련된 실험, 관찰, 이론 등은 철학적 측면과, 과학의 내외적 사회성, 과학 사회의 구성, 과학적 기준 및 절차와 과정 제반에 나타나는 특징은 사회적 측면과 관련된다.
자이먼의 접근법 핵심은 세 요소가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자의 개인적 관심사와 능력이 연구 방향을 결정하고, 그 결과 생산된 지식이 과학사회의 규범과 제도를 변화시키며, 변화된 과학사회가 다시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을 양성하는 순환 구조를 이룬다.
마리 퀴리(Marie Curie)의 삶을 들여다보면 과학자라는 존재의 복합성이 드러난다. 그녀는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으로 방사능 연구를 시작했지만, 동시에 남성 중심의 과학계에서 여성으로서 인정받으려는 강한 의지도 가지고 있었다. 실험실에서 라듐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받은 방사선 피폭의 위험을 알면서도 연구를 계속한 것은 단순한 무모함이 아니라, 과학적 발견에 대한 열정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열망이 결합된 결과였다.
현대의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는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개발할 때, 기초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이 기술이 인류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깊은 고민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에서 "과학자는 단순히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기술이 사회에 미칠 파장까지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과학자의 연구 방향은 개인적 특성뿐만 아니라 문화적 배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일본의 줄기세포 연구자 야마나카 신야가 iPS 세포를 개발할 때, 배아 줄기세포 사용에 대한 윤리적 우려를 고려했던 것은 일본 사회의 생명윤리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반면 서구의 많은 연구자들은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더 적극적이었다. 이처럼 과학자는 결코 가치중립적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연구 선택과 방법론, 해석은 개인적 경험과 사회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것이 과학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과학이 더욱 풍부하고 견고해지는 원동력이다.
과학지식은 단순한 '발견'이 아니라 '구성'의 산물이다. 같은 실험 데이터라도 연구자의 이론적 배경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1919년 아서 에딩턴이 개기일식 때 별빛의 굴절을 관측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한 사례를 보자. 당시 촬영된 사진들은 실제로는 매우 흐릿했고, 별빛의 굴절 정도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에딩턴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데이터를 해석했고, 이것이 상대성이론의 승리로 선전되었다. 나중에 더 정밀한 실험들이 아인슈타인의 예측을 확인했지만, 초기의 '확증'은 엄밀히 말해 과학적 해석과 사회적 기대가 결합된 결과였다.
현재 기후과학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후 모델들은 수십 년간 축적된 관측 데이터, 정교한 수학적 모델링, 그리고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결합된 과학지식의 결정체다. 하지만 이 모델들이 예측하는 미래 시나리오는 과학적 계산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의 가정(예: 인구 증가율, 경제 성장 패턴, 기술 발전 속도)에도 의존한다. 더 나아가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합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는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패널)와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 각국 정부의 정책적 필요, 환경운동가들의 사회적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는 과학지식이 순수한 자연 현상의 반영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과학사회의 핵심 제도 중 하나인 동료 심사(peer review) 시스템을 보자. 이 제도는 과학 지식의 품질을 관리하는 중요한 장치지만, 동시에 기존 패러다임을 강화하는 기능도 한다. 이를 보여주는 예로 헬리코박터균 발견을 들 수 있다. 1982년 로빈 워런(Robin Warren)이 위궤양의 원인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라는 가설을 제시하는 연구 논문을 냈을 때, 주류 의학계는 동료 심사시스템을 통해 워런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비판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의학계의 통념은 위궤양이 스트레스와 매운 음식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었고, 강산성인 위에서 세균이 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워런의 주장을 지지하는 배리 마셜(Barry Marshall)은 워런과 함께 약 100명의 위염과 위궤양, 십이지궤양 환자를 대상으로 검사를 하여 위의 유문부에 나선 모양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항생제와 산분비 억제제로 이 균의 증식을 막아 위궤양 등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워런과 마샬의 주장이 의학계에 받아들여지기까지 약 20년이 걸렸다.
과학사회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연구비 배분 시스템이다. 미국의 국립보건원(NIH)이나 국립과학재단(NSF) 같은 기관들이 어떤 연구 분야에 예산을 집중하느냐에 따라 과학의 발전 방향이 좌우된다. 1971년 미국에서 '암과의 전쟁(War on Cancer)'이 선포된 이후, 암 연구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면서 분자생물학이 급속히 발전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분야들—예를 들어 기생충학이나 열대의학—은 뒤처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AI와 빅데이터 분야에 연구비가 집중되면서, 전통적인 실험과학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자들이 이쪽으로 이동하는 현상도 관찰된다.
21세기 과학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국제화다. 대형 과학 프로젝트들—국제우주정거장(ISS), 인간게놈프로젝트, 거대강입자충돌기(LHC) 등—은 모두 국제 협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런 국제 협력도 단순히 과학적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국의 과학기술 정책, 외교 관계,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최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과학자들의 국제 교류에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05년 기적의 해(Annus Mirabilis)에 상대성이론을 포함한 다섯 편의 혁명적 논문을 발표했을 때, 그는 베른 특허청의 3급 기술자였다. 그는 오전에는 특허 서류를 검토하고, 오후와 저녁 시간을 이용해 물리학 연구를 했다. 이 사례는 과학자의 본질이 '직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도'에 있음을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에게는 일상적인 업무 중에도 물리 현상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특허청에서 동시성을 다루는 발명품들을 검토하면서, 시간의 절대성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 것도 그런 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로저 펜로즈, 라인하르트 겐첼, 안드레아 게즈는 블랙홀 연구로 상을 받았다. 그들이 수십 년간 블랙홀을 연구한 이유는 당장의 실용적 응용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우주의 가장 극단적인 환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근본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 연구는 개인의 호기심만으로는 수행하기 어렵다. 거대한 장비와 연구팀, 그리고 막대한 연구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자신의 호기심을 연구비 지원 기관의 우선순위나 사회적 요구와 조화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연구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현실적인 직업적 고민도 안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포스닥(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거쳐 정규직 연구직을 얻기까지의 긴 여정, 연구비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 논문 출간 압박, 그리고 평가와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것이다.
특히 '게재 아니면 소멸(Publish or Perish)'이라는 과학계의 문화는 과학자들의 연구 행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좋은 저널에 많은 논문을 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압박은 때로 과학자들로 하여금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연구보다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를 선택하게 만든다. 이런 압박은 부작용도 낳는다. 2010년대 들어 여러 분야에서 재현 불가능한 연구 결과들이 문제가 되면서 ‘재현성 위기(Replication Crisis)’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심리학, 의학, 생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유명 저널에 실린 연구들을 다른 연구팀이 재현해 보니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되었다.
한편 현대 과학의 또 다른 특징인 대형 협력 연구에서는 전통적인 '개인 천재' 모델과는 다른 능력이 요구된다. 수백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이끌려면 과학적 역량뿐만 아니라 관리 능력, 소통 능력, 정치적 감각까지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과학자들의 사회적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하루아침에 공적 인물이 되었다. 방역 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시민들에게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며, 때로는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불확실한 과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 권고를 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했기도 했으며 정치적 압력과 과학적 판단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
21세기 들어 과학자들의 대중 소통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시민들도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하고, 동시에 더 많은 우려도 표현한다. 칼 세이건(Carl Sagan)은 이미 1980년대부터 과학자들이 상아탑에서 나와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TV 프로그램 '코스모스(Cosmos)'를 통해 천문학을 대중에게 알렸고,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에서는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유명한 과학자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며 과학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일방향적 정보 전달이 아니다. 시민들의 우려와 질문에 귀 기울이고, 과학기술의 한계와 불확실성도 솔직하게 인정하며, 윤리적·사회적 쟁점에 대해서는 열린 토론을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자들이 공적 영역에 참여하면서 겪는 가장 큰 딜레마 중 하나는 정치적 중립성 문제다. 기후변화, 원자력 에너지, 유전자 편집 등의 이슈에서 과학적 사실과 정치적 입장을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합의는 명확하지만, 그에 대한 정책적 대응 방안은 정치적 가치와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과학자가 기후변화는 실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 판단이지만, "따라서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순간 정치적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두 가지 상반된 압력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과학적 발견의 사회적 함의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발언하라는 요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편향성을 피하고 객관적 중립성을 유지하라는 요구가 있다.
‘과학자(scientist)’라는 용어 자체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 단어는 1833년 영국의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이 만든 것으로, 그 이전에는 갈릴레이나 뉴턴 같은 사람들을 '자연철학자(natural philosopher)'라고 불렀다.
19세기까지 과학 연구는 주로 개인적 호기심이나 철학적 관심에 의해 추진되었다. 찰스 다윈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경제적 부담 없이 자연사 연구에 평생을 바칠 수 있었고, 그레고르 멘델은 수도원의 정원에서 완두콩 실험을 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과학은 점차 전문화되고 제도화되었다. 대학의 연구소, 정부의 연구기관, 기업의 R&D 부서가 생겨나면서 과학자는 하나의 직업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게 되었지만, 동시에 제도적 제약도 많아졌다.
2차 대전 이후 '빅사이언스(Big Science)' 시대가 열리면서 과학자의 역할도 크게 변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한 경험은 과학자들에게 자신들의 연구가 인류에게 미칠 수 있는 엄청난 영향을 깨닫게 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첫 핵실험 성공 후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구절—"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도다"—을 인용한 것은 과학자들의 복잡한 심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적 발견의 기쁨과 동시에 그 결과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느꼈던 것이다.
21세기의 과학자들은 이전 세대와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기후변화, 인공지능, 생명공학, 우주탐사 등 현재의 주요 과학 이슈들은 모두 다학제적 접근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AI 연구에서는 컴퓨터과학자, 수학자, 인지과학자, 철학자, 윤리학자, 법학자들이 협력해야 한다. 기후변화 연구에는 대기과학자, 해양학자, 생태학자뿐만 아니라 경제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들의 참여도 필요하다. 이런 변화는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능력을 요구한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과학은 결코 정적인 지식 체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과 사회적 필요, 기술적 가능성과 윤리적 성찰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하는 살아있는 문화다. 과학자들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개인적 야심과 학문적 열정, 경제적 필요와 사회적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하는 평범한 인간들이다. 때로는 실수를 하고,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동료들과 경쟁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인간적 면모가 과학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든다. 완벽한 기계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들이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때로는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질문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과학자보다 더 뛰어난 발견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과학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유전자 편집 기술로 인간의 본성 자체를 바꿀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우주 탐사가 본격화되면 인류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도 결국 과학자들만의 몫은 아니다. 과학기술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만큼, 모든 시민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