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비맘의 임신 이야기_임신 중기 (20주-25주)
정밀 초음파, Ultrasound to check baby’s major anatomic structures (“anatomy scan”)는 원래 19주 4일째에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검사 바로 전주 금요일에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와서 갑작스레 예약을 변경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초음파 직원이 그날 오프라고. 조금 맥이 빠지긴 하였지만 한주가 밀려도 정밀 초음파를 하기에 주수가 괜찮은지만 확인한 후, 그냥 딱 한 주 뒤로 예약을 다시 잡았다.
보통 정밀 초음파는 예약 시간 30분 전에 물을 1리터나 마셔야 한다고 해서 많이 걱정했는데 그런 건 13주 이내의 임산부들에 해당하는 거라고. 나는 이미 20주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준비과정이 필요 없다고 한다. 물을 잔뜩 마시지 않아도 복부 초음파가 잘 보일 주수라서 그런 거겠지.
12주 정도에 했던 NT scan을 위한 정밀 초음파는 다른 시설로 가서 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다니는 병원의 Diagnostic Imaging 실에서 초음파를 진행하였다. 어디나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익숙한 곳이 낫지. 이 곳은 임신 후 첫 정기 검진을 하기도 전에 하혈을 하여 급하게 진료를 받던 날 질 초음파를 받았던 곳이다.
로비에 직원은 단 한 명뿐인데도 쉴 새 없이 환자들이 오고 가고, 뿐만 아니라 전화도 끊임없이 울려댔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직원은 정말이지 놀랍도록 차분하고 친절했다.
안내에 따라 대기실에서 잠깐 대기를 한 후, 초음파 직원과 함께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초음파실에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웃음 띈 표정으로 아이의 성별을 알고 있으냐 물었다. 아직 모른다고 하니 알고 싶냐고. 당연하죠! 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기대하라며 다시 웃는다.
Anatomy Scan은 30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어느 정도 아이가 자란 상태이기 때문에 해부학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뼈나 장기들이 잘 자리 잡혔는지를 보는 검사라고.
거의 두 달만에 초음파로 만나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몰라 볼 정도였다. 지난번에도 이미 작은 아이 같은 모습이라 놀라웠는데 지금은 정말 척추, 팔, 다리, 얼굴뼈 등이 제대로 생겨있을 뿐만 아니라 크기도 아주 커 보였다. 내 뱃속 공간이 아이에게 너무 좁아 보일 정도로.
직원의 도움으로 아이의 심장 (판막이 잘 생겨있는지), 콩팥과 폐 등 장기들을 함께 확인하고, 눈, 코, 입을 확인한 후 머리둘레를 재고, 팔과 다리의 길이, 척추의 모양까지도 다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성별! 준비 됐어요? 라고 묻는다. 으아, 너무 떨려. 네, 준비됐어요!
It’s a little girl!
화면 상의 이러저러한 부분들을 볼 때 딸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에 찬 직원의 말. 사실 이런저런 조건들로 딸일 거라는 생각을 미리 하고 있긴 하였지만, 정말 딸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싱숭생숭,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딸이기를 매우 바라고 있던 남편의 입은 귀에 걸릴 듯. 이어서 우리를 위해 아이의 다양한 모습을 이곳저곳 찍어 사진들을 프린트해 준 다음에야 검사는 끝이 났다. 정말 꽉 채워 30분 정도가 걸렸다.
시종일관 유쾌했던 초음파 직원은 방을 나서면서 Girls Rule! 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검사가 끝난 후, 우리는 운동도 할 겸 집까지 살랑살랑 걸어왔는데, 걸어오면서는 내내 우리 딸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아이가 태어난 후 우리 가족의 모습을 상상할 때면 늘 아이의 부분은 뿌옇게 블러 처리된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치맛자락을 팔랑이며 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이 상상되는 것 같기도 하고.
집에 돌아온 후, 시차를 고려해 한국에 연락을 할만한 시간이 되자마자 우리 집과 시댁에 나란히 전화해서 기쁜 소식도 알렸다. 엄마한테는 딸이 좋대. 라며 다들 반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뭐, 어디 엄마한테만 좋은가요, 아빠는 이미 입이 귀에 걸리셨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딸이니까 너무 아빠를 쏙 빼닮으면 곤란한데 어쩌지, 하며 남편을 골리기도 하고, 한창 궁금해하던 친구들에게도 소식을 알렸다. 특히 한국에서 이제 막 두 돌 되는 딸을 키우는 친구가 몹시 기뻐했다. 두 살 차이니까 원래는 겸상도 하면 안 되는 건데, 우리 딸은 특별히 친하게 지내게 해 주겠다나 뭐라나.
태동의 느낌도 점점 익숙해져 가고, 아이와 내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보통의 나날들 사이에, 이렇듯 축제와도 같은 날이 있었다.
그리고 또, 2주 뒤 네 번째 정기 검진.
역시나 간호사와 함께 몸무게와 혈압을 잰 후, 의사와 상담을 하고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은 뒤 배의 크기를 줄자로 재는 순서로 이루어졌다.
몸무게가 또 많이 늘었다 싶어 걱정스러웠는데 의사는 또 이 정도는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리고 철분 섭취를 보통 이맘때쯤 한다던데, 그에 대한 말이 전혀 없어서 철분 섭취는 어떻게 하면 되나 물어보았다. 의사는 임신 아주 초기, 첫 번째 검진 때 했던 내 혈액검사 결과를 다시 살펴보더니, 전혀 문제가 없어서 아직은 괜찮고 다음 검진 때쯤 다시 한번 하게 될 혈액검사 결과를 본 후 철분 섭취 여부를 결정하자고 말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임신 초기에 엽산 섭취를 꼭 해야 하는 것처럼 엽산 섭취를 멈추고 난 중기부터는 철분 섭취는 무조건 권장한다고 하던데 미국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4주 뒤에 있을 다음 정기 검진이 있는 주 (26주 차)에는 1차 임당 검사를 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역시 혈액 검사 등을 받았던 Lab으로 가서 하면 되는데 이때 혈액검사를 하면서 적혈구 등 빈혈과 관련된 수치들을 다시 측정하게 되기 때문에 이 결과로 철분 섭취 여부까지 결정하자는 말이었던 거다.
여기까지, 다행히도 지난번과는 달리 네 번째 정기검진은 아주 만족스럽게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임신 전 입었던 속옷을 어찌어찌 입었는데 이 시기 정도부터는 몸이 점점 커져서 예전 속옷들은 입기가 도저히 불편해졌다. 그래서 급하게 임산부용 속옷을 몇 개씩 구입했다. 그랬더니 함께 도착한 아기용품 샘플들. 앞으로 여기저기서 또 받게 될지 모르지만, 처음으로 받게 된 아기용품 샘플이라 또 느낌이 새로웠다. 공갈 젖꼭지가 하나 들어있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서 신기한 마음에 정말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던...
유별날 일이 없기는 했지만 이 시기에 나타난 신체의 변화라고 한다면,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약간의 허리 통증과 갈비뼈에 통증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여기저기 뼈들이 엄청 아프다고들 하는데 나는 너무 아픈 정도는 아니고, 그냥 같은 자세로 오래 있다 보면 압박이 되는 쪽 갈비뼈가 아프다거나, 허리가 조금 아프다거나 하는 정도.
흐릿했던 배위의 임신선이 점점 짙어지면서 겨드랑이도 눈에 띄게 거뭇해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그리고 또 하나, 가슴 두근거림! 가슴 두근거림 역시 임산부들이 자주 겪는 증상이라고 한다. 이게 사실은 임신성 빈혈의 증상이라고. 14주 15주 정도에는 가끔씩 자리에서 일어날 때 어지러움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어지러움은 전혀 없고 하루 한두 번씩 심장 박동이 이상하리만치 강하게 느껴지곤 한다. 빈혈 증상이라고 하니 살짝 겁이 났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26주에 할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철분을 섭취할지 말지 결정하면 되는 거겠지.
혈액검사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지만 임당 검사는 그런데 조금 걱정이다. 1차 임당 검사를 통과하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통과를 못하게 되면 2차 검사, 그도 통과를 못하면 출산 때까지 엄청난 식이조절을 병행해야 한다고 하는데 설마 괜찮겠지… 미국 병원들에서 의사들이 하는 말로 우리처럼 마른 동양인 여자들 (tiny asian ladies)에게서 임신성 당뇨가 많이 나타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해서 더 걱정이긴 하지만, 부디 이번에도 문제없이 잘 지나가길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