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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아 Feb 14. 2022

범인의 역사

         

 미국 드라마를 보면, 아버지가 아들한테 먼 조상의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종종 있다. 몇 대 할아버지가 이런 일을 했고, 그래서 우리가 그때부터 여기서 터를 잡게 되었다는지 등. 아마도 미국이 다민족, 이민자의 역사이고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조상의 생애로부터 지금 자신의 삶이 이어져서 그런 것 같다. 관련해서 자세한 기록은 없을 텐데, 대를 이어가며 구전이 잘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100년 전 자기 조상이 어떤 분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먼 미래를 계획하는 건 실패를 계획하는 거라고 하지만, 지금 나의 30년 뒤 목표는 내 미래의 손주를 돌봐주는 것이다. 그때까지 건강하기 위해서 술, 담배도 안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런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내 손주에게 할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기억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나와 내 아들은 삼대를 겪어보지 못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내 아버지도 내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내 아들도 나처럼, 할아버지는 사진으로 접하게 될 것이다. 그나마 내 아버지는 영상이라도 있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영정사진과 몇 장의 사진으로 본 것이 전부다. 그래서 ‘내가 저분을 통해 이 세상에 왔구나’, 라고 생각해보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거리를 좁힐 수 없다. 제사 때마다 영정사진 속의 할아버지를 보아도, 그 얼굴에서 더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근엄하게 입술을 다물고 있는 얼굴에선 웃는 표정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요즘 딥페이크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나, 할아버지의 웃는 표정을 재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나는 할아버지가 살아온 인생과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묻고 싶다. 작은할아버지와 고모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물어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생각을 못 했다. 지금은 물어볼 사람도 없다. 분명히 존재하여 나와 내 아들로 이어지고 있는데, 내 할아버지의 역사는 없다. 이순신 장군 같은 위인은 몇백 년이 지나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데, 나의 할아버지는 불과 몇십 년 만에 제로에 가깝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물론 우리 같은 범인(凡人)에게 역사라고 하면 거창하겠지만, 그래도 누구에게나 역사는 있다, 다만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아들의 생일에 편지를 쓰고 있다. 그 당시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적는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나중에 글을 이해할 나이가 되면 본인의 과거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가끔 그 편지를 꺼내 보면, 아들의 1년간의 변화가 느껴진다. 성장기라 그런지, 1년에 강산이 변한다.         

그러한 맥락으로 일기를 쓴 지도 20년이 넘었다. 뇌는 한 줄의 글만도 못하다는 말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예전 일기를 보면 그때의 내가 너무 새롭다. 가능하다면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일기는 쓰고 싶다. 일기는 삶을 풍부하게 해 준다. 일기를 쓰시는 분은 공감할 것이다. 기억에 의존해서 사는 인생이 열 쪽짜리 책이라면 일기로 기록한 삶은 수백 쪽짜리 책과 같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죽는다. 책이 덮이는 순간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할 수 있게 우리의 역사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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