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빠와 맛있는 저녁 시간을 보냈다. 걷는 걸 좋아하는 우리는 자연스레 거닐다가 겨울 양말을 사러 옷 가게에 들어갔다. 평소에 옷을 잘 사진 않지만 베이식 한 옷이 필요해 한 개 두 개 고르고 있었는데 오빠의 부러운 눈빛을 보았다. 월급 차이가 크게 나진 않지만 이번 달에 오빠가 쓴 돈이 많아서 용돈이 부족했나 보다. 예쁜 옷 하나 사주고 싶다고 고르라고 했더니 바로 셔츠 하나를 집어든다. 올라가는 길에 봤는데 너무 예뻐서 찍어 놓았던 셔츠란다.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가끔 내가 사주는 옷 한 벌이 참 고마운지 함박웃음을 짓는다.
오빠 덩치에 맞는 옷을 찾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이즈가 딱 맞았다. 정확히는 오빠 덩치보다 조금 더 컸다. 워낙 한국에서 찾기 어려운 사이즈라 자신의 덩치보다 큰 옷을 발견하면 엄청 좋아한다. 덩치가 더 커 보인다며,, (얼마나 더 크고 싶은 걸까) 셔츠는 크리스마스 느낌 나는 색깔이었고 사이즈도 핏도 너무 예뻤다.
오빠와 내 옷을 계산하고 지하철 역으로 왔다. 갑자기 폰이 없다고 한다. 이 옷 저 옷 입느라 옷가게에 두고 온 줄 알았는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저녁 식사한 가게에 충전을 시켜두고 나왔다. 오늘 사람이 없다며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라고 하셨는데,, 연락을 드려보니 이미 퇴근하셨다고 내일 오후 4시에 오라고 하셨다. 사실 내일은 오랜만에 쏘카 빌려서 가까운 이천에 다녀오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쏘카 문도 못 열게 생겼고, 저녁 일정에도 차질이 가게 생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폰으로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다. 다행히도 쏘카에 오빠 번호를 인증하지 않고도 예약을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서 일단 취소를 했다. 그런데 여전히 오빠 얼굴이 어두웠고 시무룩했다.
아이패드나 노트북에 카카오톡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했더니, 연락 올 사람이 없어서 연락은 상관없단다. 단지 이천에 가게 되면 홍대와 더 많이 멀어져 다음 일정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다음 일정이 오빠와 관련된 일정이라 과감히 내일 이천 가는 계획을 취소했다. 홍대에 미리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빠 폰 찾고 다음 일정 가기로!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는지 그전보다 얼굴이 밝아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였어야 하는데 이천 계획이 취소대는 바람에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지니 나도 마음이 한결 편했다. 다음 날 아침엔 함께 집안일도 하고 청소도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랜만에 영화 볼까? 노트북 보자!”라고 말했는데 오빠가 급 활짝 웃더니 "나 너무 좋아!!! 자기야 사랑해!!!”라고 외쳤다. 자신도 갑자기 사랑해를 외친 게 머쓱한지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다며 씩 웃었다. 참 단순한 사람,, 매번 오빠가 어떤 상황에 고민하고 걱정하면 내가 아주 명쾌한 답을 주고 오빠 고민을 해결해줬는데 오랜만에 해결 됐을 때의 표정과 행동을 보니 너무 귀여웠다.
참 단순한 오빠가 너무 좋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 숨김이 없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여주는 사람, 사소한 일에 깊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생각대로 바꿔 해석하지 않는 사람. 사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오빠 마음은 눈에 보이는 것처럼 나에게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람.
큰 굴곡이 있는 하루는 아니었지만, 잔잔하고 소소하게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고 크게 나누는 우리가 참 좋다. 변수가 많은 인생에서 변수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고 또 단순하게 모든 걸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 오빠의 태도가 참 좋다. 슬프고 속상한 건 금방 잊어버리고 금세 나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단순한 오빠의 매력에 오늘도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