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이 몸에 배고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그동안 당연히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지나고 보니, 정말 바보 같은 삶이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생수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마저 부러웠던나는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 사 먹어 본 적이 없다.갈증이 나도 마트에 가서 구입하기에 시원한 콜라를 마셔본 적도 없었다. 그런 건 내게 사치였다.
내가 나에게 돈을 쓸 수 있는 길은 여행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억지로 여행을 떠났지만 또 절망을 보았다.
난,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봐.
여권의 유효기간 만료로 인해 내 여행은 조용히 종료되었다. 여권을 재발급받겠다는 마음이 사라지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집에서 청소만 했던 것 같다.
주방 레인지후드는 지난 세월만큼,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찌든 때가 있었다. 수시로 청소했지만 생각만큼 깨끗하지는 않았다.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방법들도 다 써보았지만 항상 2%가 부족했다.
필터 철망 바깥쪽은 솔질로도 닦을 수 있었지만, 두 겹으로 되어있는 철망 사이에 낀 기름때는 제대로 닦이지 않았다. 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 구연산 등등을 사용해 봐도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은 적이 없었다.
베이킹소다가 기름때를 녹이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만 들었다. 물 없이 베이킹소다 가루를 뿌려서 기름때가 가루에 달라붙으면 떼어내는 방법을 그나마 선호했을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묵은 때가 남아있는 필터를 이젠 교체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한 번만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베이킹용으로 사다 놓은 베이킹소다가 많이 남아있었다.
철망 사이의 기름때가 문제였다. 베이킹소다를 부어서 철망 사이에 가득 찰 정도로 채웠다. 끓는 물을 조심스럽게 부으니 거품이 일어나면서 누런 기름때가 분리되는 게 보였다. 역시 끓는 물이 포인트였다.
물에 헹구어보니 기름을 사용하지 않은 쪽의 필터는 이미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기름을 사용하는 쪽의 필터도 하얗게 빛나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철망 사이에 기름 얼룩이 조금 남아있는 게 보였다.
녹지 않은 베이킹소다를 긁어모았다. 그 위에 필터를 놓고 끓는 물을 다시 부으니 기포가 올라왔다. 두 번만에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힘들게 솔질할 필요도 없었다.
레인지후드 필터 (철망) 청소법 1. 베이킹소다를 필터 철망 사이에 가득 찰 정도로 채운다. 2. 팔팔 끓는 물을 조심스럽게 붓는다. (무선 주전자 이용) 3. 흐르는 물에 헹군다.
청소를 하다 보면 조금만 더 깨끗해지면 좋겠다는 욕심에, 자칫 최악의 결과를 보기도 했다.
화장실에 변기솔을 두는 것이 싫어서 매번 바로바로 물로만 청소했다. 하지만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곰팡이나 물때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교체하고 있는 칫솔을 이용해서 청소하고 버리곤 했다.
락스를 뿌려두면 곰팡이나 물때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마찬가지였다. 물때가 생기고 나서 청소하는 것보다 생기지 않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점차 농도가 진한 락스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락스 원액을 뿌리게 되었는데 하지만 아침에 보니 얼룩이 남아 있었다.
락스 얼룩이란 게 누런 얼룩이라, 마치 오줌 방울이 떨어진 자국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그 자국이 너무 거슬려서 솔질도 해봤지만 정말 지워지지 않았다. 락스 얼룩을 없애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그 얼룩은 커져만 갔다. 얼룩을 없애기 위해 사용하는 표백제였지만, 그 어디에도 표백제 얼룩을 없애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스트레스를받으며 지내왔다.
얼마 전에 화장실 청소에 유용하다는 구연산을 사게 되었다. 구연산을 물에 녹여서 욕실 바닥에 뿌리니 기포가 생기면서 톡톡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타일 줄눈이 새하얗게 깨끗해졌다. 변기 바닥의 마감용 시멘트에 뿌리니 곰팡이와 찌든 때까지 말끔히 사라졌다.
구연산의 효과를 톡톡히 본 덕에 변기 도기의 락스 얼룩도 깨끗하게 지워지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효과는 없었다.
락스 얼룩은 세월과 함께 어느덧 두껍게 굳은 모양새였다. 그래서 혹시나 싶은 기대감에 사포로 갈아냈다. 그러자 락스 얼룩은 떨어져 나갔다.
조금 더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뿌려두었던 락스로 인해 정말 오랜 시간 고통받았다. 처음엔 거슬리기만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청소해서 깨끗해지면 된 거지 뭘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며자책하게 되었다. 그래서 변기가 깨끗해진 그 순간, 마치 십 년의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호텔 변기에도 락스 얼룩으로 추정되는 자국을 볼 때가 있었는데,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싶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거란 기대가, 때론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나에게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유치가 늦게 빠지면서 아랫니 하나가 살짝 삐뚤어졌는데 교정하면 정말 완벽한 치아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충분히 고른 이를 가졌고 충치도 없었지만 욕심이났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전체 치아를 교정하면 더 좋을 거라는 병원의 권유에, 부분 교정이 아닌 전체 교정을 했는데 다른 치아까지 틀어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 충치도 생겼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은 살아봐요, 날이 좋으니까.
항상 불안한 11월. 다시 일 년을 살아봤지만 작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절망,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한 해가 끝나간다는 불안,내년이 되어도 올해와 같을 거라는 공포. 이제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