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 외국 명품업계에서는 별로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었던 대한민국.
그러나 이 백화점에는 발리와 막스마라 펜디 등 지금 봐도 고가 제품들이 수두룩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난 강북 어린이였고 내가 아는 백화점이라 봐야 중구 소공동에 자리잡은 롯데, 신세계 백화점 정도였다.
지금도 삼풍 CF를 검색해보면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세련되고 매끈하고 흠 없고, 절대 무너질 일 없는 화려함이 돋보였다. 삼풍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쇼핑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그곳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채 자랐고.
한창 비가 내리던 여름날, 자습서를 사서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하던 중 뉴스를 보게 된다.
삼풍 백화점이 붕괴되었다고.
이 다큐멘터리는 당시의 현장과 기업주의 잘못, 구조 공법상의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이 지경으로 상황을 몰아온 '한국의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이야기하고 있다.
뭐든 빨리빨리 해내야 하는 시대였다. 일단 수단은 상관없으니 결과가 나와야 했다. 미국에서 선진 교육을 받고 민주적으로 뇌가 적응되어 온 당시 차일석 부시장은 박정희 정권의 불도저가 되어야 했고, 모형 제작을 담당했던 전 한국 기술개발공사 기흥성 팀장의 경우는 일주일이 걸려도 안 될 일을 박정희 대통령이 보시니 사람을 갈아 넣어 하룻밤 만에 해내야 했고, 결국 '한국인'답게 해냈다.
박정희 시대에 이뤄진 여의도 개발은 참 많은 것들을 바꾸어놓았다. 종로와 광화문에 몰려있던 국가 정부 기관들이 여의도 나중엔 서초로 흩어졌고,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삼풍건설'이 등장한다.
여의도에서 국회의사당만큼 유명한 건물, 여의도 순복음교회. 한 때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소문이 났고. 이 교회 원로목사와 그 아들들이 때론 좋지 않은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 여의도 순복음교회 건축을 이준 회장이 운영하는 삼풍건설이 주도하게 된다. 종교계 인맥, 그리고 중앙정보부 인맥 여러 가지 인맥들이 이 이준 회장에게 일을 물어다 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을지로의 세운상가도 삼풍이 참여했고, 이 상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슈퍼마켓으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친히 방문해 장을 보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삼풍의 앞날엔 거칠 것이 없었고 또 다른 호재를 쥐게 된다. 바로 법원의 서초동 이전이었다.
아직도 을지로 곳곳엔 삼풍의 흔적이 남아있다. 삼풍 부동산, 삼풍 넥서스 등
이 서초동에는 법조타운에 세워졌고, 그 법조타운 주변의 부동산의 가치도 상승했다. 강남아파트 평당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하던 그 와중 삼풍건설에서 지은 삼풍아파트는 당시 아파트 중 최고가를 기록한다.
다음은 언론에서 오랫동안 다뤄지고 밝혀 온 대로 아파트 상가건물을 로비를 통해 불법 증축을 해 이걸 4층으로 올리고 대형으로 지어버린다. 자재를 부실로 한 것도 나중에 밝혀졌고 말이다. 중간에 우성 건설이 맡기로 했으나 도저히 이 상황에선 건축을 없다고 밝히고 손을 털었고(이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삼풍건설에서 이걸 자기 맘대로 맡아 멋대로 돈을 뿌리고 향응을 제공해서 원하는 대로 '럭셔리 백화점'을 만들어버린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 사실 외에 다른 부분들을 주목한다. 바로 이 법조타운이 건설되기 위해 쫓겨나게 된 '꽃마을 사람들'이었다.
이옥수 작가는 소설 <푸른 사다리>에서 꽃마을의 철거 과정을 담담하지만 냉철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이 묘사하는 부분이 다큐멘터리의 기록화면에서 그대로 증명된다.
좀 더 빨리 정리해서 깔끔하게 윗 분들 보기 좋게 마련하는 것. 그러나 그 윗분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이 다큐멘터리가 보는 사람들에게 계속 말을 거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전 국가와 관련 기업체는 멀쩡히 살고 있던 사람들의 터전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흩어버렸다.
그리고 삼풍은 화려하게 개장했다.
아래는 추억아재님의 유튜브인데, 당시 삼풍의 개점 장면을 고스란히 담았다. 안내판의 폰트, 행사 관련한 현수막과 내부 인테리어 하며 그 당시의 유행을 고려하더라도 세련된 부분이 돋보인다.
대한민국에서 큰 사고가 나고 만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벌새'의 소재가 된 성수대교 붕괴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창 자본주의가 무르익고 대한민국의 '벨 에포크'를 누리던 사람들에게 말 못 할 충격으로 다가왔다. 경제적 풍요뿐 아니라. 드디어 신군부가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던 대한민국. 이제는 고생이 끝나고 밝은 날만 기다릴 줄 알았던 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우게 된 첫 번째 사건이라고 본다.
이 성수대교 사건은 당시 토론 프로그램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이 다큐에서는 당시 급하게 만들어진 한 토론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패널들이 나같이 대한민국의 안전 불감증에 대해 지적했고, 한 패널은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다리가 아니라 건물이 무너지고 배가 가라앉아도 아무것도 못하게 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성수대교 사건 이듬해부터 비파괴검사 관련 자격증이 각광을 받게 되었고, 당시 검찰 측에서도 나름의 노력을 했다. <성수대교 붕괴사건 원인규명 감정단 활동백서>를 펴낸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서의 감수가 끝났던 6월 29일. 우리가 아는 그 예견된 인재가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말이다.
사람들이 적나라하게 다치고 건물재를 뒤집어쓰고 걸어가는 모습은 차마 캡처를 하지 못했다.
여러 번 영화나 언론에서 보여준 장면임에도 불구 그 고통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상황대책 사무실이 마련되지 않아서 고민하던 기관에게 자신의 주유소를 기꺼이 사무실로 내어준 삼풍 주유소 사장님과 자신보다는 다친 사람을 구조해내느라 고생했던 구조대원, 응급의학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어떻게든 사람들을 고치고 살려내려 했던 의료진을 보면서 마음이 더 착잡해졌다.
피해를 입힌 사람과 그 피해를 수습하려는 사람이 왜 같을 수 없는 걸까?
그리고 왜 이 사태를 만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비겁하고 뻔뻔할까?
우리는 이준과 지금은 선교사가 된 이한상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리고 친일 행각을 이어 중앙정보부에서 요직을 거치며 향응과 접대로 부를 쌓아온 이준 회장의 행보는 소설 강남몽에서도 자세히 묘사된 바 있다.
이들은 죄인이다. 누구도 이들을 옹호하고 싶지 않을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과연 이들만 죄인일까?
그 많던 재산도 보상금과 벌금으로 한 푼도 남지 않았다. 또 그 이한상 사장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고 러시아를 떠돌고 있다. 또한
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피해자 중 하나가 이준 회장의 첫째 며느리였다.
잘못 알려진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이들이 붕괴 위험을 미리 알고도 내빼지는 않았다는 거다. 붕괴 된 그 순간에도 다른 동에서 어찌 되었든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도 했다.
삼풍 청문회에 당시 이명박 의원도 나왔었다. 이 장면을 보며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야 좋을 지 몰랐다. 혼란스럽다가 피가 싸늘해졌다. 청문회에서 일갈하던 이분과 그 분과 저분들은 삼풍이 아닌 다른 건설비리에 몸을 담그고 이익을 취하지 않은 적이 있을까? 그저 운이 좋아서 이들이 지은 건물들이 부서지고 인명사고를 내지 않은 것뿐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든 삼풍백화점은 럭셔리 중의 럭셔리였다. 당시 꽤 많은 재벌 가족들이 이 삼풍사건으로 희생되었다. 그것 때문에 그나마 법적 처벌이나 재산 몰수 등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이렇게 떠들썩하게 심지어 대통령까지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원인 규명과 후속조치가 취해졌을까? 당시 담당 형사와 유가족은 아니라고 말한다.
고병천 사건 당시 강력반장의 경우는 이 사건은 그냥 시간이 해결한 거라고 본다고 했다. 이렇게 떠들썩하게 하고 지나가길 바랐다는 것.
대통령이 사건 며칠 후 현장을 방문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입장표명이나 사과,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유가족들이 거리로 행진하고 경찰과 대치하는 모양까지 보여주고 난 후에서야 대통령이 브라운관 앞에 서서 짤막한 사과문을 발표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 삼풍이라는 곳이 완전히 철거되기까지 이 삼풍백화점의 붕괴 부분은 당시 외벽과 똑같은 분홍색으로 그저 막히고 가려져 있었다.
당시 유가족은 말한다. 지자체 국가 어디서고 다 이 문제를 뜨거운 감자처럼 여겨 떠넘기려고 하기만 했다고.
문민정부가 이 건물을 짓고 분양한 게 아니지만 적어도 이 피해자들에겐 이런 태도로 대해서는 안되었다.
무엇보다 수십 년 전부터 이 사태를 만들고 키워 온 사람들이 사건 당사자를 꾸짖고 자기는 모르는 척 손을 씻는 게 아니라. 합당한 보상을 했어야 했다. 예를 들면 이 삼풍터를 비싼 값에 분양하지 말고.
이 곳이 어떤 사건이 일어난 곳인지 잊히게 하지 않기 위해 '추모공원'으로 만들거나 말이다.
유가족의 말이 참 맘이 아팠다.
땅값과 돈이 문제였단다. 이 곳에 뭔가를 하려고 해도 주위 아파트에서 집값이 떨어진다고 반대했고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아크로비스타가 세워졌다. 그럼 이 땅을 놀리란 말이냐라는 말도 종종 나오는데, 미국은 그런 생각이 없어서 월드트레이드센터 그 뉴욕 금싸라기 땅을 911 추모공원으로 만들었을까?
럭셔리를 꿈꾸지만 천박하기 그지없는 이 익명의 무리들은 추모공원을 양재 시민의 숲 구석으로 몰아버린다.
추모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 위령탑에 와서 조용히 눈물 흘리고 아픈 마음을 달래고 간다. 결코 자신의 가족이 죽은 그 자리에서 그들을 기억할 수 없다.
기억할 권리조차 돈이 앗아가 버렸다.
매우 잘 만든 다큐멘터리다. 그리고 한국적 상황에서만 나올 수 있는 특별함이 있고. 편집도 좋다. 사실의 나열과 분석만이 아니라 그 사실이 나온 맥락을 당시의 미디어와 다양한 자료들을 조합해 보는 내내 지루하기는 커녕 흥미진진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재난은 많은 것을 부수고 또 많은 것을 남긴다. 만약 그 재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똑같은 상황이 와도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1994년의 재난이 1995년에 되풀이되고 2014년에도 또 되풀이되었으니까.
누군가는 멈춰야 한다. 그리고 썩은 내가 나는 곳이 어디인지, 또 어디서부터 인지 기억하고 캐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