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한창 집에서 밥을 먹고 쉬고 있던 오후, 머리는 매우 좋지만 내 몸집의 4분의 1 정도 크기의 외계인들이 집으로 쳐들어와 첨단 무기와 전략으로 우리 가족을 뿔뿔이 흩어놓는다. 가장 어린 동생과 엄마는 아버지와 나에게서 떨어져서 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어린 동생은 납치되어 우리가 모를 곳으로 영영 이별 영 이별을 하는 거다.
납치하는 과정에서 동생의 팔은 부러졌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휜 채로 계속 산다. 그들은 그들의 인간 파크에 어린 동생을 넣어 재주를 부리게 하고, 그 재주를 부리게 하는 과정에서 굶기고 혼낸다. 그리고 동생과 같은 나이지만 다른 언어와 다른 대륙에서 온 아이들과 한꺼번에 좁은 우리에 가둬 놓는다. 동생에 잘해주는 외계인 조련사도 있었지만. 그들은 결정권자가 아니기에 힘이 없다. 문화가 다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억지로 짝짓기 당하고 학대당하다 점점 미쳐가던 동생은 홧김에 그 몸집이 작은 외계인을 밟아 죽인 뒤, 더 좁은 우리에 갇혀 스물다섯의 나이로 삶을 마친다.
그 외계인들은 내 동생을 많이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이 원래 외계인에게 공격적인 품종이라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소문이 나고 있다.
이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살짝 바꾼 이야기다.
바로 '블랙피시 : 노토리어스 킬러'라는 다큐가 담고 있는 현실이다.
범고래는 보통 'Killer Whale'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2010년 7월 돈 브랜쇼라는 숙련도 높고 평판이 좋은 조련사를 훈련 도중 살해했다. 이 범고래 '틸리컴'은 이전에도 두 명을 죽인 적이 있는 악명 높은 고래다.
평소에는 조련사들 말도 잘 듣고 참 착했던 그리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이 '씨월드'의 마스코트가 이렇게 악명 높은 살인자로 변했을까?
이 다큐는 바로 이 문제를 파고든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씨월드는 대규모 해양 놀이공원이다. 지금도 유튜브를 찾아보면 미국 여행 때 씨월드를 들르는 사람이 많이 보일 정도이다. 아름다운 날씨와 다양한 해양생물들, 재치 있는 조련사들이 펼치는 쇼는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씨월드의 명성을 더욱 높여갔다.
무엇보다 씨월드를 지금의 씨월드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위의 'Killer Whale'즉 '범고래'였다.
하얗고 까만 무늬가 산뜻한 이 바다에 사는 거대한 동물의 몸 크기는 수컷은 6~8m, 암컷은 5~7미터이고 수컷과 암컷의 수명은 인간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길다.
인간이 돌고래나 고래에게 느끼는 감정은 좀 특별한 게 있다. 물에 살지만 포유류이며, 자녀와 어미와의 유대관계가 강하고. 어떤 연구에서는 돌고래가 수다도 떨고 무려 무리끼리 '뒷말'까지도 주고받는다고 밝혔다.
지능이 높고 감성이 섬세한. 인간의 모양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인간형 생명체라고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게 나이고) 사람들이 이 범고래를 마주 할 때면 크기도 크기지만 그 범고래가 가지는 느낌과 감성과 모습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누구보다 고래를 잘 이해했고 안전수칙을 잘 지켰던, 평판 좋은 조련사 돈 브랜쇼. 그러나 범고래의 희생양이 된다.이 다큐에 나오는 (돈 브랜쇼)를 포함한 조련사들은 해양 생물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관심으로 자진해서 조련사가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어릴 때 본 돌고래 쇼라든지 해양 다큐라든지. 한 조련사는 어릴 때 해양 생물학 박사나 되어야 이 일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게 꿈꾸던 씨월드 합격하자마자 일단 물에서 잘 버티고 수영을 잘하는걸 더 중요시 여겼다고 추억을 이야기한다. 씨월드는 누구보다 범고래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마주하는 이 조련사들에게 범고래의 생태와 특성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다만 이들은 이들이 힘닿는 대로 범고래에게 애정을 다하고 돌봤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신비로운 해양생물인 범고래는 언제 어디에서 이 씨월드로 이사하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수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대대적인 범고래 사냥이 벌어진다. 식량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사냥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수족관용 범고래가 필요했던 거다. 그래서 보통 가족끼리 유대가 깊고, 한 두 번 사냥당하는 경험을 했던 범고래의 무리를 새끼와 어미. 그들을 보호하려는 다른 가족으로 나눠 만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후릿그물을 던져 새끼와 어미를 가두고 새끼만 납치해서 실어간다. 이유는 '운송료' 때문이었다.
사냥꾼의 말에 따르면 가족들은 자기가 잡힐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지르며 납치해서 눈 앞에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이건 제가 저지른 일 중 최악'이었다고.
그래서 그 어린 새끼 범고래는 '틸리컴'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 친구는 자기가 그 이름이 붙은 줄 알고 있었을까? 혹시 가족이 부르던 다른 범고래 언어의 이름이 있었던 게 아닐까 궁금해졌다.
사냥도 잔혹했지만, 이 어린 틸리컴은 더 힘든 일을 겪어야 했다.
바로 '훈련'이었다.
물 밖으로 지느러미를 흔들고 조련사를 물 밖으로 던져 올리고 몸을 굴리고... 등등. 이건 한 두 번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와 범고래는 언어가 다르고 생김새도 표정도 서로 읽기 힘들다. 그나마 범고래가 머리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그러나 그 훈련 과정이 문제였다. 틸리컴이 훈련받을 땐 자신보다 훈련장에 일찍 잡혀온 다른 범고래와 함께 훈련을 받았는데, 틸리컴이 훈련을 실패하면 둘 다 굶겼다. 한마디로 연좌제였던 거다.
화가 난 다른 범고래는 틸리컴을 물어뜯고 괴롭혔다. 틸리컴은 그 모든 과정을 겪어내야 했다.
틸리컴의 고난은 계속 이어진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그때도 범고래가 이런 짓을 당하는 것을 그냥 두고 못 보는 사람이 있었고, 이들을 풀어주려는 사람이 도처에 준비하고 있었다. 씨월드는 비싼 돈을 주고 들여온 이 재산을 소중하게 금고에 보관했다.
이 재산은 그냥 금이나 보석이나 현찰이나 채권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이었고.
그 큰 몸집, 그리고 다양한 자극을 받으며 세상을 사는 범고래에겐 넓이 6m, 깊이 9m의 금속 풀은 한마디로 벽장 감옥과 같은 곳이었을 거다. 틸리컴과 그 외 범고래들은 힘든 훈련을 마친 뒤에 이 곳에 갇혀 밤을 보내야 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틸리컴은 미쳐갔다. 처음 왔을 땐 다정하고 친절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난폭해졌고, 그러다 두 명의 사상자를 내고야 만다.
내가 범고래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처음부터 인간을 물어 죽이 든 찢어 죽이 든 물에 끌고 가 질식해서 죽이든 했을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물에만 들어오면. 그러나 범고래는 그런 동물이 아니다. 특히 야생에서 범고래가 인간을 해친기록은 지금까지 없으며, 한 해양생물학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저 멀리 지켜보고 배를 몰면, 알아서 와서 장난도 걸고 주도권을 잡고 경주놀이도 한단다.
아주 크지만 사랑스럽고 인내심이 강하다.
그리고 감정과 지능이 매우 정교하다. 뇌의 변연계 부분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는 이 고지능 생물체는 간섭을 싫어하고 독립적임과 동시에 가족애가 매우 강하다.
씨월드 외 범고래 쇼 관계자들은 또 범고래에게 가학적인 고문을 했다. 바로 어미와 새끼 찢어놓기. 잡혀와서 겨우 숨을 돌려 살만하고 새끼도 낳아 놓으니까. 새끼를 쇼가 필요한 다른 곳에 어미가 잠든 사이에 보내버린 거다. 범고래는 새끼가 큰 뒤에도 평생 어미와 함께 사는 유대감이 강한 동물이다.
조련사의 목격에 따르면 갑자기 새끼가 사라진 것을 안 어미고래가 밤새 소리 지르고 몸을 비틀며 울었고, 그걸 다른 암컷 범고래들이 살펴보고 들어가고 했단다.
이렇게 가족에게서 찢어놓는 일이 잦음에도 불구하고, 씨월드는 손님들에게 소개할 때 이 범고래들이 가족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새끼가 나오면 그 새끼를 캐릭터와 해서 인형 등의 굿즈로 팔아먹는다.
그러나 이 범고래 무리는 가족이 아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생명체들을 마구잡이로 그것도 아직 사회화가 덜된 새끼 때 잡아와 무자비하게 훈련을 시키고 가둬 놓는다.
힘과 권력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오해도 생긴다. 그리고 씨월드에서 이런 부분을 세심하게 관리하지도 못하고 조련사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수많은 범고래가 서로 싸워 피가 나고 다치고 심지어 턱이 부러지는 사고까지 나기도 한다. 이게 과연 이들이 태생적으로 '잔인해서'일까?
위의 틸리 컴도 툭하면 암컷들에게 공격당해 몸 여기저기가 상처 입은 상태였다고 한다. 조련사들이 그걸 알아채고 무리랑 최대한 분리시켰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심리적, 사회적 문제뿐 아니었다. 틸리컴과 대부분 잡혀온 범고래의 경우 등 지느러미가 휘어 있었다. 씨월드에서는 이게 나이가 들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고 손님들에게 알려주는데, 거짓말이다. 잡혀와서 그렇게 되었고 제대로 관리를 못한 거다.
특히 수명 문제에 대해 안내요원이 거짓말을 했는데 난 보며 혀를 찼다. 범고래의 평균 수명이 25살이라고 했다. 그나마 여기서 수의사의 관리를 받아 오래 살 수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실제로 범고래의 수명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간과 비슷하거나 좀 더 높다. 어린 나이에 잡혀와 학대를 당하다가 점점 병들어 일찍 죽는 거다. 한마디로 '비명횡사'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인위적인 무리, 잔혹한 초기 훈련. 그리고 범고래들이 살기에는 너무 힘든 환경에서 범고래는 몸과 맘이 병들어가고 이 '틸리컴'뿐 아니라 범고래들은 그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어 결국 조련사를 공격하게 된다.
이 이야기의 시작에서 나온 비극의 주인공인 '돈 브랜쇼'가 그 희생양이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조련사들이 그녀의 침착함과 동물에 대한 애정을 칭찬했음에도 불구하고. 씨월드 측은 무슨 돈 브랜초가 머리를 묶은 상태라 그게 문제였다고 핑계를 대며, 죽은 이에게 잘못을 몰아갔다.
결국 이 잘못이 돈 브랜쇼의 잘못이 아니라고 밝혀지기까지 사람들은 돈 브랜쇼를 위해 달리기를 하며, 씨월드의 이 무자비한 감금 사육형태를 알리기에 이른다.
2016년 씨월드는 결국 범고래쇼를 중단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uWiwiT7dgo
산업화 기계화가 꽃을 피우던 17~18세기 유럽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인간 박람회, 혹은 서커스였다.
오갈 데 없는 아이나 고아를 일부러 기형을 만들어 귀족에게 보여주거나 사람들 앞에서 전시하는 '콩프라시코'가 활개를 쳤고, 그 가운데에서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눈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을 만큼 인간의 욕망은 멈춤이라는 걸 몰랐다.
https://www.insight.co.kr/news/127623
19세기 호텐토트의 비너스라고 불렸던 사키 바트만에 관한 사건도 그런 맥락이다. 아프리카에 살던 그녀는 영국인 윌리엄 던롭에게 납치되어 나체로 전시되고 팔려가고. 심지어 유럽인들은 벌거벗겨진 그녀를 전시장에 세워놓고는 그녀가 사람인가 아닌가를 토론을 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여기저기 팔려나가다가 병들어 죽었고, 끔찍하게도 그녀의 유해가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최근에야 그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교훈을 얻기엔 대가가 너무도 컸다.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하는 대상을 그저 재미로 잡아오는 것 그것도 그게 상업적인 목적이 들어가 있을 때 결국 그 대상도 그 대상과 가까운 사람조차도 망가뜨린다는 걸 수 없이 흐른 세월이 증명했음에도 불구, 아직도 인간들은 멈출 줄을 모른다.
있는 그대로 놔두고 인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도 나의 '보고 싶어 하는 마음', '호기심'을 좀 절제하고 세상 모든 생물, 그리고 사람을 굳이 내 옆으로 내 눈 앞으로 끌어오지 않으려 한다.
숨이 붙어있는 모든 것들이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힘껏 살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전체 사진 출처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피시 : 노토리어스 킬러>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