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P. 러브크래프트 <광기의 산맥>

읽어봐요 싸이파이 3

by Dolphin knows
죽은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위한 파반느

뉴스를 보다 보면 숨쉬기가 힘들어질 정도다.

일상 곳곳에서 참 다채롭게 미친 것들이 사람을 죽이겠다고 설쳐댄다. 어떤 나라는 지구에 방사능오염수를 붓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언하질 않나. 나라마다 전쟁을 해대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더 이상 2차대전이나 가상 3차 대전 영화를 그저 영화나 역사재현물로만 받아들이기 힘들어졌다.

인간뿐 아니다. 얼마전엔 해저화산 폭발로 쓰나미가 ... 또, 지진이 그리고 바이러스는 수 년째 아주 사람을 죽이면서 돌아다닌다. 진짜 그런 걸까? 인간은 아무리 봐도 답이 없고 그것 때문에 지구가 아예 날 잡고 인류를 패대기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무거워진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기껏 살아봐야 백 년 남짓 살 거고(개인 입장에선 좀 무섭고 지겹기도 하지만) 우주와 지구의 오랜 역사를 볼 때 지금 전 인류가 겪는 일은 0.0000001초나 될까?

이런 일들이 과연 현생인류 시대 단 한 번 일어난 일이었을까? 그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일단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 말에 대 멸종이 있었고, 중생대의 공룡 멸종, 신생대에 불어닥친 빙하기 등등.

지구는 여러 번 리셋에 리셋을 거듭해 지금에 왔다.


보통은 현 세대 인류 이전엔 오로지 무지성 동물만 드글드글 했고 괄목할 만한 끔찍한 사건들은 대부분 자연변화나 소행성 충돌이었다고 하는데, 이 점에서 의문을 품은 사람은 나 하나는 아니었다. 과연?

19세기와 20세기 초의 호기심 많고 집안의 빵빵한 지원을 받았던 백인 남자들은 다양한 이론을 내세웠다. 빈약한 도구로 연구한 화석과 유물, 뇌피셜로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고대 이집트와 우주 문명, 지구공동설, 무 대륙 스토리, 노틸러스호, 아틀란티스 등등 아직도 여러 콘텐츠나 밈(meme)으로 다시 쓰이는 '중요한 상징'들을 캐냈다.

18~19세기 산업혁명으로 팍 하고 터진 현대 문명 이전에 '초고도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 이전의 으르신들은 흙에서 풀캐먹고 돌도끼만 들고 살지 않았다는 것.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선생도 20세기의 그들 중 하나였지만. 약간은 더 불행했고 생전에 어떤 영화도 누리지 못하셨다. 그리고 이 분은 참으로 인간 친화적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세상이 정말로 미쳐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신 분이라 제대로 미친 존재들을 작품에 소환해서 생생하게 그려냈다.

크툴루와 요그소토스, 인스머스의 물고기 인간, 데이곤, 니알라토텝 등 지금도 다양한 보드게임과 작품으로 변주되는 멋진 존재들을 짤막한 단편 속에서 존재감 있게 등장시켰던 러브크래프트 선생님.

보통은 그 존재와 마주치고 돌아버린 인간들의 고통스러운 고백과 주위 풍경을 실감 나게 그려냈지만

이 광기의 산맥에서는 그 존재들을 그냥 드러내지 않고 그 존재가 구체적으로 지구의 역사 중 언제 등장했는지 꽤 과학적인 언어로 잘 풀어냈다.


일단 지금 모 기업회장들의 우주여행 만큼 당시 핫했던 남극탐험대가 등장한다.

그 남극탐험대의 멤버들은 우리의 영원한 명문대 미스캐토닉 대학의 연구팀 출신. 이들은 참 부담스런 장비를 이고 지고 가서는 얼음 땅을 뚫었는데 무려 선캄브리아대 그러니까 고생대 이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해냈다. 더 놀라운 건 그 문명의 주인은 인간도 또 지구 내부 진화 생물도 아닌 '올드원'이었다는 것. (인간은 그들이 유전자를 마구잡이로 뿌려 방치한 중에 발생해버린 가축 겸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


생명을 주었어도 제삿밥따윈 요구하지 않는 개념 조상님. 대신 잡아 먹긴 좀 먹었지만...여튼 올드원의 재평가가 시급하다.


다음 스토리는 보통 파라오의 무덤을 잘못 건드린 인간들이 당하는 일들 그대로다. 썰매개들도 싹 다 죽고 탐험을 한 사람들 대부분이 죽고. 겨우 남은 한 사람이 '너넨 함부로 건드리지 마 알려고 하지 마'라고 울면서 편지를 쓰는 내용.

보통 이런 식으로 죽거나 미치기 전에 살짝 미친 상태에서 쓰는 편지 속의 스토리를 담은 게 러브크래프트 선생님 스타일인데. 이 스타일 자체는 식상할지 몰라도 그 편지 속에 있는 스토리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매력 있다. 특히, 인간의 윤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도 담담하게 고문서를 읽듯이 이야기되고 있어서 꽤 흥미로웠다.

이 편지 속의 역사. 그러니까 탐험대의 일부가 남극에 숨겨진 고대 도시에서 본 벽화들과 사물로 유추해낸 스토리는 스케일이 상당히 컸다. 그냥 몇 천 몇 만년 전도 아닌 무려 선캄브리아기다.

미역국과 톳밥 해파리냉채의 시대

바로 그 시절 지구에 온 올드원이 있었고 그냥 가축으로 쓰려고 유전자 조작해 만든 쇼거스가 이 소설의 진 주인공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스타 크툴루가 등장하신다.



안녕한가? 나는 바다의 무법자! 뿌에엑!

일단 올드원은 똑똑했지만 크툴루에 비해 체급에서 밀렸고,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이 올드원은 바닷속에 해저도시를 만든다. 이것만 봐도 확실히 현생인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기술을 지녔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고 지구의 기후변화가 중요한 변수로 나타났다. 혹은 지구가 혹시 '제임스 러브록'선생님의 말처럼 생명체라면. 이놈들이 깽판 치는 게 싫어서 다시 그 신대륙을 가라앉혀버린다. 그렇게 크툴루는 나중에 윌콕스와 레그라스 경위라는 사람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미친놈들의 악몽과 물속에 오랫동안 갇혀있게 된다.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그리고 2차 타격, 명왕성에서 온 미고가 또다시 올드원들을 친다.

여러모로 타격을 입고 바닷속에서 문명 퇴화로 피해를 입은 올드원은 자기네가 만든 쇼거스가 일으킨 반란으로 거의 다 죽어버리고 만다. 처음 지구에서 번영을 누렸던 시절의 신체능력이 퇴화해버려 숨어지내며 연명하는 올드원 그리고 그 쇼거스들도 지구가 또 몇 차례 터지고 녹고 얼고 하는 과정에서 그 수가 쪼그라들어 자기네들을 함부로 건드린 탐험대랑 개들 몇마리 조지는 것밖엔 못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 와중 또 올드원은 쇼거스들에게 끔살당하고...

러브크래프트가 왜 러브크래프트겠는가? 제임스 카메론의 어비스에서 나온 그들처럼 인간을 이해하며 따스한 포옹을 하고 우리 후손... 이따위 짓 안 하고 끝까지 아주 불쾌한 분위기 뿜뿜 내며 사라지신다.


지성이 무지성에게 먹히고
결국 열심히 이뤄놓은 문명도 놀라운 능력도
환경 변화에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결국 최강자는 지구였나 싶다.


세계관 최강의 힘을 지닌 그 분. The earth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보면 이 소설이 단 번에 이해된다. 남의 무덤은 함부로 건드는 거 아니고, 모르면 좀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자고. 그리고 뭘 그리 오래살려 애쓰냐고. 똑똑한 척 해봐야 어차피 약해 빠져서 무지성의 무언가 혹은 자기가 편하려고 만든 것한테 오히려 먹힌다...를 교훈으로 봤는데.

뭐 교훈보다는 비주얼을 중시하는 우리 리들리 스콧 감독님의 뜻을 받들어 비주얼뽕만 차서는 여러번 보고 또 보고

n년째 프리퀄 3편 언제 나오냐고 읍소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난 이분의 작품을 보면 힐링된다. 동종요법이랄까?

지금도 미칠 것 같은데 이미 나뿐 아니라 세상 자체가 싹 다 미쳐돌아 있었고,

결국 뭐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지구는 적당할 때에 빠개져 인간이든 도시든 사라질테니까.

일단 앞에 있는 팬케이크랑 커피나 먹자로 생각이 정리되며 사람이 차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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