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슐러 K. 르 귄 <어둠의 왼손>

읽어봐요 싸이파이 4

by Dolphin knows
이 책을 덮은 뒤, 세상이 거대한 케머하우스로 보였다



이 분을 첨 만나게 된 단편 '땅속의 별들'과 '파리의 4월'에서 뭔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고. 바로 이 작품을 보자 마자 나는 '어슐러 월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빼앗긴 자들까지 이어지는 그 어슐러 유니버스를 나도 이 위대한 작가를 따라 여행하게 됐다.

'게센'행성은 어느 SF도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그 전까지 나는 주로 시간여행이나 스페이스 오페라류를 읽었고, 착한 기계가 인류를 구원하는 '하인라인'의 세계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읽으면서 알았다. '설정'이라는 벽에 갇혀서 만들어진 세계인 게 너무도 티가 났다.

우리보다는 무조건 외계인이 뛰어날 것이다. 외계행성의 동식물은 더 크고 강하고 능력치가 최대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정면으로 부숴버린다. 일단은 생물군 부터가 우리가 흔히 보는 새 같은 것이 없다. 높이 날지를 못한다. 아예 세계자체를 만들때 중력과 그외 부분까지 치밀하게 만들어놨다. 괜히 어슐러 르 귄이 아니다. SF계의 인류학자가 아닌가. 그분의 책에는 인류와 생물 그리고 행성의 역사까지 치밀하게 조탁되어 나타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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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을 '대표적인 걸작'으로 만들었던 설정인 '케머기'.

이 부분에서 내가 그동안 그렇게 골치 아파하고 성가셔 했던 부분에대해 답을 얻었다.

게센에서의 인간은 남/녀가 갈라져있지 않고 유일하게 번식기에만 남과 여 중 하나로 변해 번식을 한다. 둘 중 누가 어떤 쪽으로 변할 지는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걸 '케머기'라고 한다고 한다. 처음에 에큐멘의 사람인 겐리 아이가 이 세계에 떨어졌을때 그리고 그 이후 다른 인간이 게센을 방문했을 때 게센인들은 이 사람들을 '성도착증 환자'로 봤다. 그럴만 하다. 그들에겐 '케머하우스'라는 장소가 따로 있고. 그 곳에서 사람들은 짝짓기에 걸맞도록 행동했으니까.

그러나 그건 한 장소에 국한되어 있었고 시간도 제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평소엔 누구에게도 성적대상화 되지 않고 누구도 성적 대상화 하지 않고, 자유롭게 제 할일을 했다. 여성의 뇌가 따로 있고 남성으로 태어난 느낌이 따로있다는 개소리가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건 그냥 번식을 위한 한 통과의례일 뿐. 사실 우리가 사는 지구에도 이런 경우는 꽤 많다. 진딧물은 평소에 교미 없이 암컷만 낳아 암컷들의 왕국을 만들고 겨울에 동면이 올 때만 잠시 수컷을 낳아 동면을 견딜 알을 낳고는 원래대로 돌아간다.

평소에 다 암컷이었다가 잠시 수컷으로 변하는 물고기 이야기도 들었고... 그리고 동물이 365일 24시간 발정기는 아니다. 고양이만 해도 그렇다. 딱 필요할때 만나서새끼를 낳은뒤 심드렁하지만 평화롭고 질서있는 모계사회를 이룬다.


이 책을 읽을 즈음 나는 노래며 드라마며 영화며 등등 넌덜머리가 나 있었다. 인간은 왜 이럴까 싶었다. 그놈의 '섹스어필' 옷이 비싸면 비쌀 수록 옷조각은 없다시피 얇아지고, 모델들은 거의 굶겨죽일정도로 말려서 거의 벗은채로 캣워크를 시키고, 드라마나 영화는 안 그랬나. 셀링포인트는 여자 배우가 이번에 파격노출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든 성적 농담과 포르노적인 문화. 커피집보다 많은 성매매 업소. 그리고 영화를 보면 툭하면 나오는 그 룸살롱 장면. 그리고 드라마는 다들 알고 있듯 어딜 가도 연애를 해댔다. 지금은 그걸 사람들이 하도 물리고 질려하니까 조금씩 티안나게 넣는 중이고.


나는 게센인들이 이해가 됐다.
이 세상 전체가 계속 '짝짓기'시기에 고정되어있었다.
그게 정말 어떻게 보면 이상하고도 비효율적인건데,
왜 그렇게 세상이 왜곡됐나 싶었다.
내가 보기엔 세상의 모든 재앙과 불행이
다 거기서 오는 것 같았거든.


'어둠의 왼손'에서 그 케머기를 한 장소와 순간에 제한하니 다른 스토리가 들어올 자리가 커졌다. 에르헨랑과 그 반대편 나라의 물자와 환경의 차이 에스트라벤과 겐리 아이의 우정 그리고 잠시 만난 케머기 등. 중간에 에르트라벤이 겪어야 했던 그 추운 열차간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는데, 꼭 나치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태인의 고난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효율적인 세계에서도 약탈, 스파이짓, 분쟁, 반목 등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그게 참 현실적이고 좋다는 생각이다.


이젠 이 위대한 작가를 더는 지구에서는 볼 수 가 없다. 그래도 이 분이 남긴 귀한 글들이 많으니까. 글을 읽을 때마다 이 분을 만나겠지.

아마 어슐러 르 귄이 없었다면 SF는 내가 이렇게 좋아하고 열광하는 장르가 되진 못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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