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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phin knows Oct 10. 2023

기분 나쁜 거울

천 년의 주령구 05

마석산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말을 무조건 듣는 편은 아니었는데, 목이의 말을 들을 때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들이

상당히 신기해서 자꾸 묻게 되고 대부분은 듣게 되었다. 다행히도 목이도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걸

꺼려하지 않았다. 꺼려했다기보다는 그동안 답답했던 걸 풀어놓아서 괜찮다고 했다.

의주는 이 목이라는 아이가 점점 덜 낯설어질수록 그 아이가 왜 여기에 이런 상태로

오랜 시간 갇혀있다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는지 알고 싶었다.

"길어질 텐데 괜찮겠어?"

"한 달 정도 잡자. 그 정도면 조금씩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여기에 갇혀있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지? 이제 좀 앉아볼래? 조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목이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목이의 엄마가 팔려간 이후에도 목이는 꿈에서 엄마를 종종 보았다.

이모가 지나가며 해준 몇 가지 이야기가 강렬해서였을까? 그저 고된 일을 감당해 가며 하루하루 역이 돌아가는 것을 배우면서 자란 소년에게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엄마를 높은 사람의 첩으로 팔았다.' 무엇보다 '거울 용도'로.

사실 꿈이 아닌 순간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야기의 조각을 전해줬고 어느 순간 머리가 커지자 그 퍼즐들이 착 하고 들어맞았다.

첩으로 팔려갔다는 건 그냥 흔한 구실이었다. 목이의 엄마, 옥령은 어릴 적 가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경고하곤 했단다. 그 '경고'는 미래에 이런 일이 있을 테니까 제물을 바쳐서 이 재앙을 피하라는 식의 '예언'은 아니었다. 옥령의 경고는 꼭 '거울'과 같았다. 지금 사람들이 자행하고 있는 악이나 놓치고 있는 악행들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마주하기 싫든 아니든 지금 그 사람들의 행태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리고 예언을 시작했다 하늘과 땅은 다 보고 듣고 있다고 그 악만큼의 대가를 사람들에게 요구할 거라고. 그러나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치고 실제로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나쁜 짓을 제대로 멈추고 보상한다면 정해진 미래도 어느 정도는 바꿀 수 있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옥령이 발해에서 부모님과 살 때 그래서 부모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옥령의 집안과 그 집안이 있는 마을은 꽤 부유한 편이었다. 이게 거란의 어린 소녀들을 속여다가 당나라 상인들에게 팔아서 축재한 재산. 그게 어마어마했다. 옥령의 부모는 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옥령은 너무도 생생한 장면을 보게 된다. 옥령이 잠들었던 방에 아주 커다란 구체가 나타났고, 이 구체 속에서 그동안 옥령의 집안과 마을이 했던 악한 일들, 그리고 그 결과인 마자르 족의 침입과 살육이 그대로 보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옥령은 다음날 날이 밝기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마을의 중심이었던 한 누각에 올라가 소리친다.

"이 땅과 하늘은 인간에게 정말 많은 걸 기대하고 맡겼다. 그러나 부모님과 이 마을이 한 짓을 하늘이 보고 계셨다. 곧 마자르 족이 쳐들어 올 거다. 모든 사람이 죽고 불태워질 것이고, 사람을 팔아서 쌓은 곡식과 비단도 재가 될 것이다."

경고의 메시지만 했었으면 사람들은 특히 옥령의 부모는 말을 듣고 피했을 거다. 그동안 옥령의 기분 나쁘지만 확실한 예언들은 몇 개의 재난을 피하게 했으니까. 그러나 그동안은 가족 안에서만 조용히 이야기했을 뿐이다. 옥령도 마음속에서 뭐가 불타올랐는지 몰라도 이번만큼은 말을 안 하면 뭐가 타들어 갈 것 같은 느낌에 그렇게 일을 크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려버렸다. 이 마을을 이만큼 안정시켜 오고 키워온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고 욕설과 돌덩이가 날아왔다.

"저 년이 드디어 미쳤구나, 저거 거울장난하다가 돌아버렸어!"

특히 그 마을에서 노예무역을 처음 시작해서 가장 많은 부를 쌓은 집안 어른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어떻게든 저 여자애의 말을 막아야 했다. 일단 옥령의 부모를 닦아세웠다.

"입 하나 막아, 마을 사람 입에 곡식을 넣는 게 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리 하시오"

온몸에 비단과 금을 걸친 그 노인은 칼 한 자루를 건넸다.

"저 아이 말고 다른 자식이 있지 않소? 하나를 포기하면 나머지 하나와 마을 전체를 살릴 수 있겠는데 어찌하시겠소."

결국 그날 밤 옥령의 방에 옥령의 부친이 들이닥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옥령은 패물을 들고 어린 여동생과 도망친 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옥령은 두 가지의 길을 봤다. 사람들이 옥령의 말을 들어 다른 방법으로 그 마을이 적당하게 잘 먹고살게 되는 것.

혹은 지금의 이 사태가 일어나는 것.

그렇게 옥령은 자기가 원하지도 않은 시간과 공간에서 남은 볼 수 없는 구체가 나타나고 거기에서 여러 가지 죄와 일들이 벌어지는 걸 봐야만 했다.

일단은 발해에서 신라로 내려올 수 있게 된 계기가 그 능력이었고, 그 때문에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정작 가족은 구할 수 없었다. 항상 그 모든 것이 잘 보이면 좋겠는데 그야말로 그 구체는 제멋대로라서 자신의 불행을 모두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겨우 정착했던 곳에서 그 능력에 눈독을 들인 누군가 때문에 자식과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만든 사람은 자기가 믿고 동반자로 삼았던 '돈염'이었다.

이 이야기는 목이에게 옥령이 직업 해준 이야기였다. 엄마가 '거울용도'로 팔려갔다 까지는 알았지만 실제로 월성 어딘가에 유폐된 엄마가 자기 눈앞에 나타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목이도 그 능력이 있었다. 작은 구체에서 큰 구체까지 목이가 자랄수록 목이도 그 거울로 이 일과 저 일을 보게 되었다. 엄마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생각도 점점 엄마 옥령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게 보이는 세계의 일이든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일이든 사람이 모든 걸 틀어 놓고 바로 잡을 수 있다. 왜 이런 악하고 약해빠진 인간에게 그런 열쇠가 주어졌는지 모르겠다. 산과 들, 하늘과 땅 같은 모든 것들 호랑이와 승냥이 온갖 맹수들 시간과 공간 돈과 권력등이 다 힘이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 가장 큰 문제다.'

엄마 옥령을 그런 식으로 만난 뒤에 외로움은 좀 잦아졌지만 그리움은 커졌다. 보고 들을 수 있지만 직접 손을 맞대거나 열심히 돈을 모아 산 금반지도 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정말 사람이 무서워졌다. 그중 가장 무서웠던 건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그야말로 비뚤어진 마음으로 엄마를 알아보고 이렇게 팔아버린 자기의 아버지 '돈염'말이다. 그리고 그 '돈염'마저 매수해서 자기 수하로 부리려는 저 월성의 높은 사람이 말이다.

어떤 뜻으로 저러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지금보다 모든 것이 더 나빠질 게 뻔했다.

목이는 점점 말수가 줄어갔다.



해가 질 때쯤 되어서 의주는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목이는 여느 때처럼 나무속으로 들어갔다.

왠지 목이를 혼자두면 안될 것 같았다.

매우 답답하고 슬펐다는 감정. 그것보다는 무섭고 막막함이 더 앞섰다.

의주는 집에 돌아와서 목이가 해준 이야기를 되씹었다. 생각보다 모든 게 더 엉망이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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