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8일
2022년 9월 16일, 작사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NCT 127의 컴백일이었지만, 막상 전날이 되니 무리하게 잡아둔 회사 촬영 일정이 있어서 데뷔한다는 걸 자꾸 까먹게 됐다. 함께 촬영 나간 동료가 "내일 데뷔잖아요!"라고 여러 번 상기시켜줘서 그때마다 기쁜 마음을 가져보려고 했는데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왜냐면 그때의 나는...... 과거의 내가 돈을 아낀다고 고작 4시간만 대여해버린 스튜디오에서 대본 5편을 초스피드로 촬영해야 했기 때문에... 또 과거의 내가 돈을 아낀다고 최저가 시간대로 비행기를 예매해버려서 토끼같이 귀여운 출연자님을 초스피드로 공항에 보내야 했기 때문에...
16일 1시에 음원 사이트에 앨범이 떴을 때도 전날 촬영 때문에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노래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런데 스치듯이 들은 보컬이 너무 좋아서 빨리 퇴근하고 싶더라. 하지만 껄껄 나는 느림보였다네.
해서 그토록 기다리고 꿈에 그리던 데뷔 일은 다소 초연하게 지나갔다. 나처럼 흥분을 잘하는 AB형 ENFP 인간이 인생의 이런 대박 이벤트를 어찌 덤덤하게 지나칠 수 있나 싶었는데 주말이 되니 차차 흥분하는 중이다. 눈물 광광.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빠랑 엄마가 너무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내가 작사를 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있겠나 싶었는데 두 분 다 NCT 127의 모든 영상과 댓글을 모조리 보고 딸에게 중계하는 중. 나도 몰랐던 음원 순위까지 외우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은 데뷔를 기다리는 동안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그림인데 기분이 좋다.
윤슬은 작사 소재를 얻으려고 산책하는 길에 매일 보던 풍경이었다. 처음 가이드곡을 듣는데 도입부에서 자꾸 '잘 자 내 달빛'이라는 말이 입에 맴돌아서, 달을 사랑하는 바다의 이야기를 윤슬에 빗대어 쓰게 되었다.
새카만 물 위로 쏟아지던 은하수의 빛. 무감하게 보다 고개를 든 순간 바다는 깨달았다. 너, 별이 아니구나? 길고 칠흑 같던 밤, 잔물결이 치는 바다 위로 금색 길을 내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달이다. 바다는 드디어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멈춘 것이길 바란다. 하지만 얄궂은 아침이 오고, 소란스럽던 달빛은 스러진다. 코끝에 남은 물기 어린 향기를 그리며 눈을 감은 바다는 내내 달의 꿈을 꾼다. 안녕, 네가 얼마나 예쁘게 반짝이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너는 결코 고요했던 물결을 요동치게 해. 그리하여 나는 다 말라버린대도 너에게 밀려갈 파도. 달의 중력을 따라 흐를 거야.
평생 기억에 남을 첫 작사를 이렇게 예쁜 멜로디에, 멋진 보컬과 랩 실력을 가진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요, 운이 좋았다. 가사란 글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망나니처럼 써대던 나를 개조시키려 부단히 노력하신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빨리 전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쁘다.
월요일이 되면 여전히 달라진 것 없이 회사에 출근해 일하고 퇴근하면 공모 곡을 쓰고 있겠지만요. 오직 널 향해 흘러 그 중력의 힘에 내 바다가 다 말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