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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동 Apr 29. 2018

미스터동의 베트남 여행기 3편

호치민

[지난 2편 이야기]


실제 베트남 대통령이 썼다던 통일궁에 도착한 미스터동.


그곳에 지하벙커가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다.


베트남 부통령의 집무실이다. 대통령 집무실보다 확연히 작았다.



정문을 박차고 들어온 탱크와 오늘


내가 고등학생 때, 백두산을 보기 위해 중국 장춘이라는 도시를 간 적 있다.


그곳에서 나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의 궁전을 둘러볼 수 있었다. 한 때 천하를 호령하며 번영을 누렸던 청나라가 이제 마지막 숨을 헐떡 거리고 있을 때, 그 당시 황제가 푸이였다.


나라의 운명은 사망선고를 일찍이 기다리고 있었던 시한부 인생이었지만, 푸이의 궁은 자금성만큼 아니었지만 크고 화려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


'영화관'이었다. 황제라는 권위에 비 작디작은 영화관이었지만 크고 길쭉한 의 단 두 개만을 놓아 황제와 황제 부인의 특권조금이나마 살려놓았었다.


일본에게 나라를 찬탈당하는 시점에서 궁 안의 영화관은  이질감을 느끼게 해줬다. 푸이는 비운의 황제였지만 그 말로는 일반 평민의 일상보다 나아 보였으리라.


그리고, 이날. 베트남에서 전쟁을 하는 동안 사용되었다던 호치민 통일궁에서 나는 권력자를 위한 영화관을 또다시 마주 하게 되었다.


실제, 베트남 전쟁 당시 이 영화관은 쓰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명맥이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보존돼 있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했다.


통일궁에 설치된 영화관이다.
대통령이 식사를 하는 곳이다.


통일궁 2층으로 올라온 나는 테라스로 향했다.


2층에서 내다본 통일궁 바깥 풍경이 궁금했지만 답답한 실내공기도 내가 테라스로 가게끔 도왔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가 홍콩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추울 정도로 실내공간에 에어컨을 가동했을 것이다. 작년에 다녀와본 홍콩은 실내 에어컨을 최대로 틀면서 문을 활짝 열어두던 도시였다. 마치 자신의 에어컨으로 도시 전체를 시원하게끔 하려는 목표를 가진 것처럼.


여행은 여행의 꼬리를 물며 따라져 올라왔다.


시원한 물줄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산들산들 자연바람이 내 옷깃을 타며 내 몸에 축적된 더위를 조금씩 식혔다.


'음... 날씨가 좋군'


테라스에서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니 두 대의 탱크가 내 눈에 띄었다. 오디오가이드를 틀어봤다.


왼쪽부분에 탱크가 있다.

내가 있는 통일궁을 향해 서 있는 탱크 두 대.


저 탱크는 베트남 전쟁 당시 굳게 닫혀있던 통일궁 철문을 그대로 짓밟고 넘어선 실제 탱크다.


묵직한 엔진 소리와 철과 철이 부딪히며 캉캉한 소리를 내던 탱크가 이젠 빈 깡통이 된 채 전시되어있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라고 여겨졌다.


당시, 정문을 박차고 들어온 탱크는 오늘이 올 지 알았을까.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날의 탱크는 이제 빈 깡통으로 전락해 소풍 나온 초등학생들에게 추억의 오늘이 되어있었다.


대통령의 서재 겸 도서관이라고 한다. 실질적으로 이곳이 집무실이라고 봐야한다.
대통령이 순찰을 할 때, 사용하던 헬기와 같은 기종의 모형으로 실제 헬기는 아니다.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나는 계단으로 걸어서 지하벙커로 내려왔다. 영화 속에서 보던 넓은 실내공간이 있을 거라 짐작하면서.


하지만 호치민 통일궁에 있던 지하벙커는 개미굴과 같이 작디작은 방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좁은 복도와 수많은 방들.


베트남 전쟁 당시 좁은 골목에서 뛰어다니며 오가던 군인들. 그리고 좁은 방에서 전략회의를 하는 행정관. 이들을 홀로그램 띄우듯 내 눈 앞에 그려봤다.


지하벙커 초입이다.
여기서 폭탄소리가 들리면 무서웠겠다 싶었다.
통신실이었던 것 같다.
지하벙커와 대통령의 침대 커버 레이스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지하벙커에서 올라온 뒤, 다시 1층으로 왔다.


'아- 덥고 배고프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느덧 시계의 큰 바늘은 '2'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1층에서 나와 국기게양대 앞 계단에 걸쳐 앉았다. 2층에서 내려다봤던 분수대 물줄기는 여전히 솟아오르고 있었다.


우선, 오디오 가이드를 반납했다.


오디오 대여 직원은 영어를 잘해서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다. 친절하시기도 하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때, 신분증이나 현금(50만 동) 일부를 맡겨야 한다(deposit). 혹여나 호치민에 가실 분들은 참고하셔서 미리 준비해놓는 게 좋다.


그리고 패키지 관광이 아니라면, 오디오 가이드를 사용하기를 추천한다.


관광에 곁들여지는 역사적 배경과 사실 설명은 핫도그에 뿌려진 케첩 같다. 케첩이 없어도 핫도그의 맛이 떨어지지 않지만 케첩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니깐.




Where are u from?


나와 나란히 계단에 걸쳐 앉은 청년 두 명에게 내가 물었다. 그냥 눈이 마주쳤길래.


그들은 영국에서 왔다고 했다.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마른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영국스럽게(?) 생겼었다. '건강하네'라고 나는 생각했다.


"Isn't it hot?" 시선을 분수대를 둔 채 내가 다시 말을 건넸다.


둘 중 한 명이 내게 덥다고 하며 혼자서 여행 왔냐고 물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갔다. 내 짧은 영어 실력을 가지고 여차여차 대화를 이끌어갔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언어의 장벽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점점 자신감도 붙는다. 문법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두 번째다. 어쨌든 뜻만 통하면 되지 않나.


먼저 다가가 보자. 생각지 못한 인연이 만들어지는 거다.


사실, 멋지고 화려한 관광지보다 이런 소소한 대화와 인연이 여행의 나이테를 더욱 짙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Awesome!"


통일궁을 빠져나온 뒤, 찍은 사진이다.



CNN이 선정한 분짜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할 태양의 강렬함이었다. 아침에 먹은 반미를 제외하곤 먹은 게 전무했다.


서둘러, 식당을 찾아 나서야 했다. 여행의 즐거움에는 음식이 크게 작용하니깐.


10분쯤 걸었다.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스터동! 베트남에 가게 된다면, 꼭 1일 1 분짜를 하도록 해~"


내가 베트남으로 오기 전,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과거,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에 왔을 때, 먹었던 서민음식으로 분짜를 선택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게다가 오늘 내가 갈 곳은 CNN에서 선정한 음식점이라고 하니, 큰 기대감을 안고 있었다.


통일궁에서 분짜 음식점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처음 걸어갈 때, 큰 보폭이었던 내 걸음에서 점점 신발이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걷는 건 좋았다.


나는 원래 1년에 몇 번씩 제주도를 찾는데 한 번은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해봤다. 정말 힘들고 지친 여행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자전거 여행만큼은 잊지 못하고 있다. 느린 이동수단은 제주도의 풍광도 느리게 흘러가는 법이었다.


여유로운 자전거의 속도는 더 많은 제주도를 만져볼 수 있게끔 했다. 전복을 따온 해녀를 만났고, 조용한 어촌마을에도 당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걷는 건 좋다.


여기서 토익광고를 보니, 욕이 튀어나왔다.


"쿵짝쿵짝 짝짝쿵쿵"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나라의 뽕짝과 같았다.


소리를 쫒아 가보니 주차되어 있는 수많은 오토바이 속에서 링이 보였다. 결투를 하는 듯했다.


이미 많은 구경꾼들이 링 주위를 둘러앉아있었다.


잠시 자리를 지켜 나도 이 축제에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이미 난 배고픔의 링에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토바이...오토바이...하...정말 많다.
분짜 식당에 거의 도착했다.


식당에 도착했다. CNN에서 선정했다던 분짜 맛집.


분짜는 우리나라 양념갈비 같은 돼지고기에 베트남식 쌀국수를 새콤달콤한 육수에 퐁당 담가 먹는 음식이다. 여기에 각자 기호에 맞게끔 채소를 곁들이면 된다.


배가 많이 고팠고 기대도 컸다. 다만, 네이버 블로그에서 이미 이 가게가 너무 많이 소개돼 있다는 것이 조금 거슬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김밥천국에 온 줄 알았다. 주방이모에게 라볶이를 주문할 뻔.


자리를 앉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한국인이었다. 한국인 특유의 패션과 화장법에 호치민의 식당 안은 낯설지가 않게 되었다.


내 옆 테이블은 여자 두 명이 앉아있었는데, 다음 여행 일정을 짜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가 같은 생각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음... 너도 한국인이구나...'


꽤 민망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저-쪽 테이블에서 휴대폰 알람이 가게 전체를 울렸다.


까아! 토옥!


그 이후로, 내가 분짜를 먹고 있는 동안에도 들어오는 순님은 오직 한국인뿐이었다.


'어쨌든 분짜를 시켜야지'


직원을 불러 스프라이트와 분짜 하나를 주문했다. 직원들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호치민에서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여긴 재방문하지 않았다.


역시 네이버 블로그에 나와있는 맛집은 진짜 맛집이 아닌 한국인만 가는 곳이었다.


분짜가 나왔다. 그 사이 스프라이트는 다 먹었다.


처음 맛보는 분짜.


불맛이 확 나는 양념돼지갈비를 새콤달콤한 육수에 쌀국수와 호로록- 먹었다. 양념돼지갈비맛으로 칭한다면, 어떤 맛일지는 분명할 터.


이국적인 맛을 위해 상추와 고수를 듬뿍 얹었다. 그러고 보니, 옆 테이블 여자들은 고수를 건드리지 않은 것 같았다.


배가 고파 사진이 흔들렸는지도 몰랐다.
'넴'이라고 속 재료에 해산물을 넣어 튀겨놓았다.


분짜 하나에 스프라이트 2캔 그리고 베트남식 튀김만두(넴)를 섭렵했다.


나는 점원을 불러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Show me the receipt"


그러자 점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하! 그렇다면...'


"Can I see the bill?" 내가 다시 말했다. 그러자 점원은 눈썹을 위로 올리고 고개는 오른쪽 대각선으로 기울였다.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그럼 어쩌겠는가.


"영.수.증.!"


나는 알았다.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은 영어보다 그냥 한국말로 하는 게 낫다. 내가 먹은 음식 값은 채 1만 원이 넘지 않았다. 하지만 소화제를 챙기지 못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 배는 불렀다.




구글맵을 꺼보자


나는 식당 문을 박차고 나와서 조금 망설였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에.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목표를 정해놓는 것은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굳이 여행을 와서도 '미션 달성'하듯이 하는 패키지식 여행은 하기 싫었다.


미리 한국에서 방문할 음식점, 카페 그리고 관광지까지 설정해놓고 인스타용 사진만 위해 움직이는 여행 말고 여유로운 나그네와 같은 여행을 추구했다.


그러면 구글맵을 끄고 내 몸이 당기는 길목으로 들어가야 했다. 큰 동맥을 따라 흐르다 세밀한 모세혈관을 파고드는 적혈구처럼 골목골목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진짜 호치민'도 볼 수 있었다. 깨끗하게 잘 포장돼 있는 관광지가 아닌 그들이 솔직하게 살고 있는 모습들.


호치민 대학교 앞 복사집이다.
우리로 말하지면 '학식'과 비슷해보였다.
대학교 입구다.


어쩌다 보니, 호치민 대학교의 한 캠퍼스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네 대학교처럼 복사집엔 학생들이 북적거렸다.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다만, 프린트를 한 학생들은 걸어서 캠퍼스에 들어가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했다. 우리와 차이점이었다.


대학교 안으로 들어가 봤다. 부속 초등학교로 보이는 건물이 보였고 초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운동장에 있는 모습을 봤다.


나는 한동안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늘에 앉아있는 아이들


여행을 하다 보니 느낀 것인데, 대학교는 참 좋은 여행지다.


재작년 대만에 갔을 때, 가장 좋았던 곳이 국립 대만대학교였다. 우리의 서울대학교다. 학교 캠퍼스가 특유의 빨간 벽돌로 통일돼 있고 조경에 신경을 꽤 많이 쓴 듯 자연친화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예비부부들의 웨딩촬영 장면도 눈에 자주 띄었다.


어쨌든, 이 글을 일고 있는 당신이 대만에 가시거든, 대만대학교에 꼭 한 번 방문해보시길 추천드린다.




이쯤에 서서 구글맵을 켜봤다.



호치민, 그리고 호찌민


내내 길을 따라 걷던 중, 구글맵을 켜 호치민에서 내가 어디쯤 서 있는 지를 확인했다.


그러면서, 가로수와 담벼락이 만들어낸 그늘에 잠시 몸을 숨겼다. 얇은 가로수였지만 아스팔트 도로엔 큰 그림자로 놓여있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뜨려진 것을 보니 3~4시쯤이 되었으리라'.


몇 걸음 앞에는 호치민 박물관이 있었다. 사실 정확하게는 호찌민 박물관이다.


내가 여행을 온 도시 호치민. 바로 베트남 독립운동가인 호찌민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원래 호치민 도시는 '사이공'으로 불렸다. 그런데 뭐, 지금 호치민 시내를 돌아다니면, 현지인들은 호치민보 사이공이라는 지명을 아직도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어쨌든, 호찌민은 좌우 이념을 떠나 베트남의 독립운동을 펼쳤던 사람으로서, 베트남에선 국부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인기가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다. 도시 이름을 그의 이름에서 따오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호찌민의 동상과 그림을 계속 마주칠 수 있다. 사실, 돈을 낼 때마다 그를 볼 수도 있다. 베트남 모든 화폐엔 호찌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무기가 전시돼 있다.


다만, 나는 약간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원래 호치민(사이공) 도시는 자유진영인 남베트남의 수도였는데 정작 도시의 이름을 공산주의자 이름을 차용해오니 말이다.

 

사실...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
회의...하는 것?


베트남의 수도는 하노이다. 하지만 자유진영으로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호치민은 하노이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 그러다 보니, 호치민이 하노이보다 물가가 비싸다고 한다.(뭐 아니라는 썰도 있다.)


어쨌든, 베트남에선 호찌민이 베트남 독립에 앞장섰던 아버지이자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니 혹여라도 베트남에 가서 호찌민을 욕되거나 비하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좋겠다. 그게 외국인으로서 예의를 지키는 거라 생각한다.




천장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은 시원했다.


나는 제법 큰 동상을 앞에 두고 앉았다.

 


저 사람은 누굴까


당연히 호찌민 박물관이니 '호찌민'이라고 짐작했다. 그래도 나는 확실히 하고 싶었다.


입장권을 파는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내가 물었다.


"Who is that over there?"(이 표현이 정확한 지 모르겠다. 뜻만 통한다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러자 그는 폰 게임을 멈추고 미소를 띠운 채 "호찌민!"이라고 짧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깜언(감사합니다라는 베트남 인사)"이라고 답해줬다. 그랬더니 내가 'Thank U'라고 할 줄 알았는데 베트남 언어를 쓰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도 깜언이라고 인사했다.  




동상 그러니깐 흉상의 주인이 호찌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흉상 앞에 다가섰다. 넓은 박물관에 사람이고는 나와 독일에서 온 중년 부부가 전부였다. 노란 머리에 하얀 피부색을 가진 전형적 서양인이었다.


나는 호찌민 흉상을 마주하고 독일에서 온 부부와 잠시 자리를 함께했다. "구텐탁!"이라고 내가 말하자 즐거워하셨다. 그들은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Korea에서 왔다고 했다. 뒤이어 North Korea가 아니니 안심하고 했다. 비록 내가 김정은이랑 닮았을지라도 말이다. 난 핵이 없다고도 했다.


뭐 저 말이 크게 재미있겠냐만은 저 당시엔 우리 셋 다 크게 웃었다.



동물원이다.



그러다 마주친 동물원


남쪽으로 계속 걸었다. 실제 남쪽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호치민 동물원에 도착해버렸다. 이왕 여까지 왔으니 동물원에 한번 가볼만했지만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동물을 가둬놓고 구경하는 방식의 동물원은 가지 않는다.


드넓은 초원에서 생활하던 생명을 좁은 철창에 가둬놓고 구경거리로 된 것에 대한 반감이다. 북극에 있어야 할 북극곰이 사람도 겪기 힘든 아시아의 여름을 겪고, 호랑이와 사자의 차가운 야생성은 억눌러진다.


실제로 국내 동물원에 가보면, 동물이 계속 잠만 자거나 한 자리를 빙빙 도는 형태를 볼 수 있다. 갇혀진 동물에게 나타나는 이상 증후다.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부디 동물원과 동물을 이용한 쇼(show)를 관람하지 않았으면 한다.


태국이나 제주도에 가면 볼 수 있는 코끼리의 공연이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거구의 코끼리가 사람조련을 자연스럽게 수긍할까.


사람을 태우거나 공연을 위한 코끼리는 아기 코끼리 때부터 만들어진다.


아기 코끼리는 영문도 모른 채 사슬 등으로 결박된 채 몇 날 며칠을 이유 없이 찔리거나 구타를 당하게 된다. 그렇게 진이 다 빠진 코끼리 등에 아이를 올려놓는다.


불편한 사실이지만 추악한 이면을 직시해야한다.


그때, 코끼리가 더 이상 반항하지 않으면 길들이기가 된 것이다. 이후엔, 조련사에게 코끼리가 넘겨진다.


조련사는 공연을 할 때나 인간을 태울 때 그는 손엔 언제나 뾰족한 못과 같은 도구고 있다. 코끼리의 민감한 귀를 송곳으로 찌르며 코끼리를 움직이는 것이다.


코끼리 서커스에 이런 장면까지 보여준다면 과연 즐거울까.


비단, 코끼리뿐만 이겠나.


원숭이를 두 발로만 걷게 하기 위해, 원숭이 손을 뒤로 묶은 채 뛰어다니게 하고, 악어나 호랑이들은 쇠꼬챙이에 찔린다.


결국, 동물의 본성을 잃은 채, 좁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원엔 진짜 동물은 없던 것이다.


나와 당신이 동물원이나 동물쇼에 갈 이유가 없다.



박물관에 앉아 사색


동물원 옆엔 호치민 역사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전에, 언제부터인가 내 뒤를 졸졸 따르던 강아지 2마리가 있었다. 토실토실한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거렸다. 금세 내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먼저, 내 손 등 냄새를 맡게끔 해줬다. 그랬더니 촉촉한 콧잔등을 들이밀었다. 나는 '가방에 개 간식이 있었으면...'하고 안타까웠다.


5분 남짓이었을까. 내가 강아지 2마리와 놀고 있으니 현지인분들이 아빠미소로 지켜보고 있었다.


귀여운 녀석이다.


주인의 부름으로 헤어진 강아지를 뒤로 하고 나는 호치민 역사박물관에 들어섰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나는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불상(부처의 상)의 위치였다.


"왜 저렇게 불상을 배치했을까"


보통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


불상에 대해선 다음 베트남 4편에서 마저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3편 끝.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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