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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동 Aug 30. 2018

미스터동의 캄보디아 여행기 3편

[지난 2편 이야기]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 시바 신.


그 신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사원이 있다.


바푸온. 나는 바푸온에 올랐다.


그리고 이상한 청년과 마주한다.




바푸온 정상을 향한 계단



포켓 속 작은 편의가 날 살리다



바푸온 정상으로 가는 길엔 가파른 계단이 있다. 90도에 가까운 각도에다가 계단 폭도 좁다. 계단의 끝을 쳐다보기 위해선 뒤통수가 목덜미에 다 일 것처럼 해야 했다.


우선, 손에 쥐고 있던 책을 가방에 넣어 두 손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계단 난간을 단단히 붙잡았다. 난간의 쇠는 차갑지 않고 미지근했다.


나는 난간을 살짝 흔들어봤다. 얼마나 흔들리는지 확인해보려고.


계단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그래서 이번엔 더 세차게 난간을 양옆으로 움직여보려고 했다. 끄떡도 없었다. '나름

안전하군'


안심이 된 나는 천천히 두 발을 계단에 올렸다.


딱 한 사람만이 올라갈 수 있는 계단 너비에 내려오는 사람과 중간에서 만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기 앙코르 유적지 대부분은 일방통행이니깐.


그래도 간혹 위를 쳐다보지 않고 무작정 올라가다간, 아찔한 상황이 벌어진다.


원숭이 전쟁을 표현한 거라고.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고민했다. 나중에 어떻게 내려가지.


내려올 땐, 몸을 최대한 뒤로 눕히고 천천히 움직여야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푸온 옥상에 올라온 나는 곧바로 청년 2명과 만났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그들은 자신의 발 치수보다 훨씬 큰 쪼리를 신고 있었다.


맞지 않은 신발을 신고 있던 청년 2명. 게다가 입고 있는 셔츠도 헐렁한 게 자기 옷이라고 보기엔 힘들었다. 내게 좋지 않은 인상인 거지.


"Nice to see you!" 내가 그들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아무 말도 안 하기가 멋쩍어 내가 말한 거였다.


그러자 2명 중 1명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너는 이곳에 대해 잘 알아?"라고 물었다.


잘 모르지만 내겐 가이드 책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답답한 표정을 짓고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바이욘에서 본 이상한 아저씨와 같은 행동이었다.(2편 참고_part.우선 거절하게)



그 청년은 기둥 뒤 편 으슥한 곳으로 날 끌고 갔다. 내 팔목을 붙잡지는 않았지만 나는 마치 포승줄이 묶인 듯 이끌려 갔다. 가기 싫지만 가야만 하는 그런...


도살장으로 가야 하는 돼지의 심정과 비슷하리라.


그곳에서 청년은 내게 말했다.


"신기하지 않아? 이건 원숭이 전쟁을 표현한 거야" 세밀하게 조각된 형상을 가리켰다. 그리고 영어긴 영어인데 알아듣지 못할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영어 실력이 부족한 탓인가. 아니. 걔가 말하는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이 현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구석진 곳에다가 관광객도 보이지 않으니 내심 불안했다. 내 눈동자는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내가 그의 말을 듣는 척 마는 척하자 그가 다시 따라오란다. 아무래도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청년과 내가 담판을 지은 길목.


사람의 인기척은 물론이거니와 바람도 한숨 쉬며 지나갈 법한 길목에 들어섰다.


도저히 안 되겠어.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분명 내 예측이 맞을 게다. 저놈은 나에게 유적지 소개를 조금 해준 뒤 일종의 '가이드비'를 받아낼 거다. 암 그럴 테지.


"저기 미안한데 난 이제 혼자 여행할 거야. 고마워 잘 가!"


나는 아주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속으로 제발 좀 가줘라고 빌고 있었지만.


그러자 그 청년은 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하얀 A4 종이였다.


그래,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난 그 종이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괜한 꼬투리 잡을 일을 만들기 싫었다. 100% 나에게 이익이 될만한 내용이 아닌 게 뻔했다.


"여기에 사인을 해줄래?" 그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내용이니 뭐니 하면서 내게 종이를 건넸다.


"Nope!" 짧지만 확실하게 의사 전달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말했다. "기부금을 내줘야겠어" 다정한 듯한 말투여서 더 무섭게 느껴졌다.


어쨌든 이놈! 예상했던 대로 돈을 요구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 A4 종이에 사인을 했더라면 더 많은 돈을 요구했을 거다.


나는 그에게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상 돈을 뺏는 것과 뭐가 다른가.


좌우뇌 100% 활용도를 올려야 했다. '어떻게 해야 돈을 안 주고 이 상황을 빠져나갈까'


그래도 돈을 안 주려니, 주변 인적이 아예 없었다. 해코지를 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쨌든 저 놈에게 속은 나의 잘못도 있다고 한다면 있으리라.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녀석은 비켜줄 용의가 전혀 없어 보였다. 흡사 관우와 같은 패기로 서 있었다.



그렇지만 난 지갑을 꺼낼 순 없었다.  지갑을 꺼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금액이 들통나기 때문.


그래서 오른쪽 가슴 포켓에 넣어둔 약 16달러를 꺼내 들었다.


나는 여행할 때마다 소액을 가슴 포켓에 넣어둔다. 매번 지갑을 꺼내 들지 않아도 돼 편리했고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는 방편이었다.(아무래도 지갑에 현금이 많으면, 범죄 표적이 된다.)


"16달러. 이게 내 전 재산이야. 그런데! 15달러는 툭툭이 기사에게 줘야 해~" 나는 1달러를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는 탐탁지 않아했다. 그리고 너무 적은 금액 이야하고 말했다. 1달러를 무시한 거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나도 이거 다 주고 싶어. 그러면 오늘 툭툭이 기사에게 돈을 못 줘~ 이게 내 전 재산이라고!"


나름 기지를 발휘한 거였다. 사실, 툭툭이 기사에게는 돈을 주지 않아도 됐다. 내가 탄 툭툭이는 호텔 전속으로, 마지막 날 체크아웃할 때 툭툭이 이용료를 호텔 측에 정산하면 된다.


다만, 그 청년에게 15달러가 툭툭이 기사 것이라고 하면 돈을 더 요구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같은 나라 사람의 몫을 뺏으면 안 되지'하는 최소한의 양심을 기대했다.



다행히 임기응변은 통했다.


그는 1달러를 '획-' 낚아채더니 작별인사도 없이 '횡-'하고 사라졌다.


가슴에 억눌려있던 더운 공기가 시원히 내뿜기며 하늘로 뻗어 나갔다. "휴~우~" 더운 여름 날씨에 간담이 서늘했다.


나는 옆을 돌아보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그 현장을 벗어났다. 하마터면, 16달러 모두 뺏길 뻔했다.


여행하는 동안 항상 긴장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되새겼다.




지쳤으리라



아침 일찍부터 일정을 시작한 탓일까. 체력의 고갈이 다가왔다. 사원 크기가 워낙 넓다 보니 걷기도 많이 걸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간에 시원한 카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커다란 나무 밑 그늘이 여기서 유일한 휴식처였다.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내 몸에 축적된 열을 빼내고 싶었는데. 쩝..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 압박감 있는 답답함이 나를 옥죄였다. 덩치 큰 사내가 위에서 내 어깨를 꽉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또는 잠수를 너무 깊숙이 하다가 제때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해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서고 있는 백인 누나 뒤를 따랐다.


빨리 내 툭툭이 기사를 보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호텔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늘 위에 장렬하게 내리쬐는 해가 그리 미울 수가 없었다.


태양은 자신의 두 주먹을 힘껏 움켜쥐고 입술을 꽉 다문 채 최대한의 열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정말 지쳤다.


해야. 이제 그만해줘
여기, 거대한 석조사원에 비해 귀여운 이미지가 강했다.


그야말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중간중간마다 등장하는 작은 석조 사원은 그저 흔한 돌멩이로 보였다. 감흥도 감동도 없었다.


아까는 한없이 경이로웠던 앙코르 유적의 석조 사원. 하지만 더위에 지친 지금은 '뭐야 또 있어? 언제 끝나...'하는 자조적인 태도만 남았다.


'그래도 내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줘선 안 되지' 나는 신발 뒤꿈치가 끌리지 않게 주의했다.


그냥 시원한 곳에 가서 쉬고 싶었다.


이곳에서 왕은 군대를 사열했다고.
코끼리가 보이는가. 살펴보시라. 6마리의 코끼리가 보인다.


드디어 코끼리 테라스에 당도했다. 툭툭이 기사 브라더와 만나고자 한 장소다.


앙코르 톰 관광을 시작한 지 4 시간 하고도 30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야지!


넓디넓은 주차장으로 가니 툭툭이가 개미 군 떼같이 있었다. '아이고 이거 어쩌나' 수많은 툭툭이 기사 속에서 브라더를 어떻게 찾을지 고민이었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엄마를 찾는 아이의 심정으로 두리번두리번거렸다.


큰일 난 건 내가 타고 온 툭툭이의 생김새가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백화점 쇼핑을 마쳤는데, 자동차를 지하 몇 층에 주차했는지 기억 안 날 때와 비슷한 심정이리라.


이번 캄보디아 여행은 당황의 연속이다. 첫날엔 공항에서 조난(?) 당했고, 오늘은 돈도 뺏기고 툭툭이 기사도 못 찾을 판이다.


여행할 때마다 느낀다. 여행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YOLO와 소확행이 유행인 요즘, 다른 사람보고 무책임하게 여행을 떠나라고만 하면 안 된다. 여행 또한 현실이니.



'에잇 그냥 화장실이나 우선 다녀오자' 라고 나는 마음먹었다.


그때,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Hey! 브라더" 거짓말같이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브라더에게 달려갔다. 브라더는 동료 툭툭이 기사와 함께 있었다. 우리나라 택시 기사님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나는 정말 더워 죽는 줄 알았어 라고 울 듯이 말했다. 그러자 여기저기 모여있던 툭툭이 기사들은 웃겨 죽겠단다. 한국인이 매운 걸 못 먹는 외국인을 바라보듯이.




뭐, 어떠하리



계곡 위 평상.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식점이었다.



물 위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물에는 실제 붕어 같은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내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물 밖으로 뻐금거리며 숨을 쉬고 있었다. '물이 탁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말이다. 캄보디아의 뜨거운 공기에 물고기도 더위를 타는 걸까. 못내 안쓰러웠다.  


'쟤들도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직접 물어볼 텐데'



한참을 앉아있어도 종업원은 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라 많이 바빠 보였다.


북적이는 식당에서 빈 식탁을 한참 마주하고 있자니 꽤 머쓱했다. 더군다나, 혼자 온 관광객은 단 한 테이블도 없었다. 내가 유일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중국인 부부와 계속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하려니 뭔가 이상하고, 안 하려니깐 계속 눈이 마주치는 어색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위축됐다. 그동안 혼자 여행에 많이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지.


'기죽지 말자!' 혼자서 파이팅을 불어넣고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Excuse me!" 나는 점원에게 소고기 볶음밥과 코코넛 주스를 당차게 시켰다.


이윽고 나온 음식. 나는 코코넛 주스를 시킬 때만 해도 예쁜 유리잔에 담겨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다. 리얼 코코넛 열매가 왔다.


수박만 한 크기에 깜짝 놀랐다. 두 눈은 금세 커졌고, 눈썹은 파도를 쳤다. 그랬더니 아까 계속 눈을 마주친 중국인 부부가 재밌어했다. 그러더니 자신들도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제야 나와 중국인 부부는 인사를 했다.



까슬까슬하게 볶인 소고기 볶음밥. 밥알엔 달걀이 코팅돼 있다. 여기에 불 냄새가 짙게 밴 소고기 향이 내 코를 자극했다.


정통 중국식 볶음밥이었다. 숟가락 가득 밥을 얹어 입에 털어 넣었다.


금방 볶은 탓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코로 바람을 내뿜으니 후추 향이 확 올라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다.


소고기 양도 많아 한 숟가락에 두 점씩 씹혔다.


휴대폰도 TV도 보지 않았다. 오로지 음식 맛에만 집중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식사시간에 오로지 식사만 한 지가 이렇게 오래되었다니.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자연과 사람의 합작품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툼 레이더)를 촬영한 곳으로 유명한 곳. 따 프롬에 왔다. 


이 사원은 정글 속에 파묻혀있다고 표현해야 한다. 울창한 나무가 사원을 휘감고 있고, 기나 긴 세월을 버티지 못한 돌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그게 또 이라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내가 탄 툭툭이는 뿌연 흙을 가르며 따 프롬 주차장에 도착했다. 흙땅이라 좋았다. 만일 시멘트로 잘 닦여진 주차장이었다면, 정글의 느낌은 반감될 것이니.


따 프롬의 입구다. 생각보다 작다.


툭툭이에서 내리자마자 냉장고 바지를 한 움큼씩 들고 있는 아낙네들이 나에게 몰려들었다.


나는 아예 살 마음이 없었기에, 저 멀리서 다가오는 아나넥를 향해 미리 손사래 쳤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밥 먹고 휴식을 취했더니, 한결 여유로웠다. 더군다나 얇은 구름이 햇볕을 막아줘 걸어 다니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넘어 있었다.


따 프롬으로 들어가는 길


따 프롬으로 들어가는 길에 거지꼴을 한 4~5살짜리 꼬마들이 열댓 명 있었다. 


걔들이 갑자기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순간 너무 무서웠다. 아무리 꼬맹이라도 단체로 달려들면 어떡하냐 하고 덜컥 겁이 났다.


여유롭게 폴킴의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나는 이어폰을 빼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봤다. 하지만 꼬마들과 거리 격차는 멀어지지 않았다. 어른 보폭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멀어지지 않다니.


나름의 확신이 생겼다. '빨리 이 상황에 벗어나야겠어'


나는 내 앞에 있던 중국 패키지 팀 속으로 파고들었다. 원래 일행이었던 것처럼. 다행히 그들은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로지 마이크를 들고 무엇인가 설명하는 가이드만이 나를 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나는 야구 투수가 1루를 견제하듯이 내 뒤를 힐끔 쳐다봤다.


아이들은 그대로 멈춰있었다. 내가 중국인 패키지팀으로 들어온 후로 망부석이라도 된 마냥. 그래서일까. 한국에 온 아직도 그 아이들에 대한 의심을 멈출 수가 없다.


아마, 그때 내가 중국인 패키지 팀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유적지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지켜야할 설명이 보인다.
아이 엄마는 따프롬 길거리 청소부다. 엄마 옆에서 나무 그네를 타고 있다. 나름대로 일-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근무여건인건가
모든 나무가 하늘로 곧게 올라왔지만, '저' 나무만은 옆으로 휘었다.
문어다리같은 나무뿌리는 석조사원을 휘감았다. 

따 프롬


첫인상은 '작다'였다. 앞서 본 유적지와는 다르게 말이다.


다만, 금방이라도 폭삭하고 무너질 것 같은 석조 사원 사이로 뻗어져 나온 거대한 나무가 내 시선을 압도했다. 영화 '알포인트' 속 현장에 들어온 것 같았다.


약 1천 년 전, 크메르 제국 왕이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지어 올린 불교사원 '따 프롬'. 당시만 해도 화려한 금장식이 돼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훌쩍 자라난 나무에 침식돼 그 형체를 잃어가고 있다. 서글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나무의 침식이 현재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 인간이 만들어낸 화려함은 아니지만 자연과의 조화로 엄청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거다.


유적 훼손이 심한 상태였다.



거대한 나무가 오래된 석조 사원을 침식하다



거대한 외계 문어가 사원에 내려앉아 있었다.


카메라 앵글에 다 들어가지 않는 크기였다.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이었다.




중국인 부부가 외계 문어 다리 앞에서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그들에게 다가섰다. "제가 찍어드릴게요" 영어로 내가 말했다.


그러자 부인분이 '크하하핫' 하고 웃으며 중국말로 나에게 뭐라고 하셨다. 내가 영어로 말했음에도 중국인인지 아셨다. 하하.


"워시어 한궈러-" 나는 유일하게 알고 있는 중국 문장, '나는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또다시 호탕하게 웃으셨다. 나는 속으로 한국 가면 살부터 빼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쨌든, 나는 그 부부의 사진을 찍어줬다. 왜?


내 사진을 부탁하기 위해서. 내가 부인께 카메라를 내밀자 알겠다고 웃으셨다. 나는 잘 나온 사진 한 장을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보내드리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따 프롬의 더 구석으로 들어갔다. 





여행, 내 행복에 대한 고찰



해가 조금씩 뉘엿뉘엿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잘 지내고 계시는가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잘 살고 있다는 건 지금 행복하다는 걸까요.


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석조 사원.


영원토록 튼튼히 남아있을 줄 알았던 돌은 용암 흘러내리듯이 내려앉아 버렸다.


'허망하다'라는 감정에 휩싸였다.



기껏 오래 살아봐야 100년 이상을 살기 힘든 우리 인간이다.


억겁의 우주 시공간에서 100년은 '찰나'일 지 모르겠다. 그 찰나와 같은 인생에서 희로애락을 모두 느낀다고 하지만 그 허망함을 숨길 순 없다.


최근에 나는 무엇인가 느슨해졌음을 느꼈다. 깡깡했던 노란 고무줄이 흐물흐물해져 버린 것이지.


방황하는 것이 청춘이고 확신을 보증할 수 없는 게 젊음이라고 하지만 불안하고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그게 정상 이야하고 떠들어대는 강연이나 조언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느리게 가는 것이 높이 올라간다고 했다. 하지만 앞서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심정은 철렁거리며 쿵쿵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맛있다고 느끼고, 멋있는 걸 보면 멋있다고 체감한다. 하지만 행복하다는 감정을 꺼내긴 힘들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애초에 내게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래서 요즘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혈안이 돼 찾는 건 아닐지.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길만한 갈대가 뒤덮고 있는 땅. 그 한중간에 내가 서 있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니체의 말처럼 신은 죽은 것이리라.


[나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단단히 쌓아 올린 과거의 자존감은 이곳 석조 사원처럼 맥없이 추락한 것인가.


그렇다면, 저 석조 사원은 나와 닮은 것이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얽혀버린 이어폰 줄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뒤엉킴일까.


아니다. 옛 연인의 칫솔을 내 화장실에서 발견했을 때 가졌던 그 망연함이라.


원래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그 허탈감이라.



조금씩 복원되고 있는 여기처럼, 이 여행이 끝나면 상처받은 내 마음도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길 희망했다.


이번 캄보디아에선 여행의 설렘으로 나를 들뜨게 하기보다는 좋은 의미에서 차분히 가라앉고 있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인 거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찍는 사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기 위해 하는 행보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한 발자취인 셈이다.


여행하면 할수록 그런 것 같다.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나를 알아간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과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을. 그리고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고 겨울이 되면 사그라드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릉



거대한 나무가 빠르게 석조 사원을 관통하고 잠식하고 있지만 그 탓에 관광객을 유입시킨다.


그렇다. 그래서 이 유적지는 언제 우리 곁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나무에 성장억제제를 넣거나 가지치기를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임시방편 아니겠나.


보존을 위한 복원을 하려면, 이 석조 사원을 허물고 다시 처음부터 지어야 한다고 하니.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아직 앙코르 유적지를 가보지 않았다면, 서둘러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얇은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온 햇빛이 여길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그때, 내 전화기에서 긴 진동이 느껴졌다. 전화가 온 거다.


걸려온 사람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정말 반가운 사람이었다.


'짧은 인연이 이렇게 결속되어 단단해지는구나!' 하고 했다.










3편 끝.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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