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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뮨 Apr 19. 2017

‘면역 강화’에 대한 고찰

 첫 번째 이야기

“어떻게 하면 면역력을 강화시킬 수 있나요?”


내가 면역학을 공부/연구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면역 강화’라는 말은 면역학을 공부하는 내 입장에서는 사실 불편한 단어이다. ‘이렇게 이렇게 하세요’ 하고 간결한 대답을 기대했으련만, 아쉽게도 나는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가 없다. “면역 강화라는 말이 무슨 의미로 여쭤 보시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게 항상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서요..” 늘어지는 대답을 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가방 끈 긴 짱구 티만 내고 있는 건 아닌지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내가 단답형의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면역 ‘강화’가 면역 ‘활성화 (Activation)’ 를 의미하고 있다면, 이는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며 아래에 설명하듯이 오히려 자기 면역 세포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 면역 질환 (Autoimmune disease) ’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면역은 '활성'과 '억제' 사이의 ‘균형’이 더욱 중요하다. 우려스러운 점은 ‘면역 강화’라는 말이 건강 기능성 식품은 물론 단순 기호 식품의 광고에도 널리 쓰이고 있고, TV 에 나온 의사들도 ‘면역 강화’라는 단어를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혹은 불분명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서양, 혹은 현대 면역 학자 (Immunologist)의 입장에서 과연 ‘면역 강화’라는 말이 적합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면역 강화’를 권하는 것은 과연 옳은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늘 불편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남는 시간에 틈틈이 생각을 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병원균 (pathogenic bacteria), 바이러스 (virus) 등의 ‘감염 (Infection)’에 의한 질병은 인류의 오랜 역사 동안 인류의 수명을 줄이는 가장 큰 위협 중 하나가 되어 왔다. 특별히 면역력이 약한 유아기에 감염은 치명적이어서 많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감염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기 일수였다. 오늘날에도 결핵균 (Mycobacterium Tuberculosis), 항생제 내성균(Super bacteria) 등의 병원균과 인플루엔자(Influenza), 에이즈(AIDS), 에볼라(Ebola) 등 수많은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몸에는 이러한 감염에 대한 방어 기작으로서 ‘면역계 (Immune system)’가 존재한다. 면역계는 병원균이나 바이러스를 감시하고, 인지하고, 제거하는 매우 흥미로운 조직이다. 우리 몸이 병원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염증 (Inflammation)’등의 '면역 반응 (Immune response)'을 통해 이들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진행되는데. 이때, ‘면역 활성화’는 면역 반응을 도와 외부의 공격을 제거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면역 강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감염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병원균들의 서식 및 증식을 최소화하는 ‘위생 환경 (environmental sanitation)’ 개선의 노력과 함께, ‘항생제 (Antibiotics)’, ‘예방 주사 (Vaccine)’의 발견과 개발은 인류를 감염성 질환의 위협으로부터 획기적인 수준으로 해방시켜왔다. 인류가 감염성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짐과 동시에 기대 수명(Life expectancy)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왔 (그림 1). 
  

 그림 1:Source: Wikipedia-"life expectancy"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깨끗하게, 더 오래 살게 된 현대인들은 면역력의 지나친 ‘활성화’ 로 인해 야기되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림 2)


 그림 2: Source: Bach JF. The effect of infections on susceptibility to autoimmune and allergic diseases. N Engl J Med. Sep 2002;347(12):911–920.



  ‘아토피 (Atopy), 천식 (Asthma), 알레르기 (Allergy), 건선 (Psoriasis), 크론병 (Crohn’s diseases), 제 1형 당뇨병 (type I diabetes), 루푸스 병 (Lupus), 류마티스 관절염 (Rheumatoid Arthritis), 다발성 경화증 (Multiple sclerosis)……’

다양한 기관에서 발병하며 다양한 형태의 질병으로 나타나는 열거된 질환의 공통점은 바로 이들이 모두 ‘자가 면역 질환’이라는 것이다. 이들 외에도 매우 다양한 자가 면역 질환이 존재한다, 참고 1). 병원균 등 외부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존재하는 우리 몸의 면역 세포가 우리 몸을 외부 물질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것이 ‘자가 면역 질환’이다. 우리 몸의 면역 세포가 언제나 이상적으로 작동하여 외부의 병원성 (pathogenic) 물질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반응하고 제거하면 좋겠지만, 면역 세포가 ‘외부 물질’을 ‘자신’과 완벽히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병원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특별히 우리 몸과 비슷하게 위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완벽한 구별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를테면,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다고 해보자. 아군의 군복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그가  암호를 대라는 명령을 무시한 채 다가오고 있다면 경계를 서던 군인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발포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안타깝게도 어떤 이유에서든 암호를 대지 못한 아군으로 확인된다면 이는 아군을 공격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어둠 속에서 아군과 적군을 언제나 완벽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면역체계 안에서도 자신의 몸과 비슷하게 위장하는 외부 병원균, 바이러스 등을 매번 완벽히 구분 지어 공격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근 15년여간 활발히 진행된 연구를 통해 면역 학계가 깨닫게 된 가장 획기적인 발견 중 하나는 바로 우리 몸에 잘 짜인 능동적인 ‘면역 억제 (Immune suppression)’ 체계가 존재하며 이들이 우리의 건강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증명한 것이다. 면역 억제 기능만을 수행하는 ‘면역 억제 세포 (Immuno-suppressive cells)’가 존재하며, 심지어 ‘면역 활성 세포 (Immuno-effector cells)’들 조차도 면역 억제 분자들 (Immuno-suppressive molecules)을 면역 활성 분자들 만큼이나 많이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밝혀지고 있다. 이들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자세하고 재미있는 설명은 차차 하기로 하고,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바는 우리 면역계에서 ‘면역 억제’가 ‘면역 활성’만큼이나 중요한 기능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자가 면역 협회에 따르면 미국인 여섯 명 중 한 명은 ‘자가 면역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참고 2). 자가 면역 질환은 여러 유전적-환경적 복합 요인으로 인해 발병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면역 강화(면역 활성화)’는 자가 면역 환자들의 병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잠재적인 유전적 요인을 가진 미발병인에서 자가 면역 질환의 유도 기제로 작동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가 질환 환자인 아토피 환자, 혹은 잠재적인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면역 ‘강화’가 아닌 바로 면역 ‘억제’이다. 이들에게 잘못된 개념의 ‘면역 강화 (면역 활성화)’가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쉽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감염에 대한 위협에서 해방된(?) 현대인들에게 ‘면역 강화’란 어떤 의미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고, ‘면역 활성’만이 아닌 ‘면역 억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균형' 있는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였으면 좋겠다.

이러한 기나긴 설명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그래서, 균형 있는 면역력을 키워주려면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면역 ‘강화’라는 말이 우리가 ‘원하는’ 의미로 가장 이상적으로 쓰인다면 ‘면역력이 필요할 때 활성을 주고 면역력이 약해져야 할 때는 면역을 억제해주는 필요에 따라 균형적, 탄력적으로 운용되는 면역계로 만들어 준다’는 뜻이 될 것이다. 면역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과연 이러한 개념의 획기적인 방법이나 물질이 존재하는지, 혹은 존재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할지에 대한 또 다른 고찰을 해볼 수는 있겠다.
  

“일단 제가 생각하는 ‘면역 강화’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아시겠죠? 비결은 아니고요.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다음 편에 계속…


균형잡힌 면역력을 갖는 비법


 
참고 1: 미국 자가 면역협회에 올라있는 자가면역 질환 리스트https://www.aarda.org/disease-list/        

참고 2:https://www.aarda.org/autoimmune-information/autoimmune-statistics/

                         


 -P.S. 답글 코멘트로 어떤 부분이 설명이 부족한지, 어떤 것이 더 알고 싶으신지 남겨주시면 다음 글 쓰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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