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아 Aug 03. 2021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었을까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2011년 겨울이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겨울. 우리는 운명적으로 만났다. 운명이라고 하면 조금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운명이었다고 믿는다. 당시 친했던 언니가 소개팅을 주선했다. 소개팅 상대는 자신의 친한 동생의 친구. 한창 서울에서 직장생활로 힘들었던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디라도 마음 둘 곳이 필요했다. 


그런데 원래 소개팅 상대가 갑자기 회사일로 출장을 길게 가게 되면서 스케줄이 맞지 않게 되면서 주선자였던 친한 동생이 대신 나온다고 했다. 그게 바로 남편이었다. 스케줄을 맞춰보다가 당시 내가 회사 사람들이랑 부산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었는데, 당연히 일요일 아침에 일찍 올라올 줄 알고 그날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늦게 올라오게 되면서 약속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원래의 나라면 그런 경우 사과하고 약속을 미루는데 어쩐지 그날은 꼭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만나지 않으면 어쩐지 흐지부지 될 것 같은 느낌. 물론 사는 곳이 걸어서 15분 거리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무모했다. 정확히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고 잘못하면 여행 다녀온 그대로 만나러 나가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미루지 않고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예상보다는 일찍 도착해서 집에서 준비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일요일 저녁 9시. 우리가 처음 만난 시간. 처음 소개팅하기엔 흔하지 않았던 시간. 둘 다 술도 즐겨하지 않았기 때문에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헤어지고 한 시간을 통화했다. 느낌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맘에 들지도 않았는데 서로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도 첫 만남부터 내가 엄청 맘에 들었던 건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우린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만났다. 당시 내가 다녔던 디자인 회사는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회사라 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퇴근하다가도 클라이언트 전화에 다시 회사 들어가기가 일쑤였으니까. 그렇지만 집이 가까웠고 학생이었기 때문에 퇴근하면서 연락해도 충분히 만날 수 있었다. 이게 우리가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첫 만남 이후 2주도 채 안됐을무렵. 그날은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다. 회사 사람들이랑 우리 집 근처에서 술자리를 하고 있었고 자기도 근처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으니 시간이 맞으면 얼굴 보기로 했다. 친구들과의 자리가 일찍 파했길래 난 더 늦을 것 같다고 추우니까 그냥 집에 가라고 했더니 근처에 또 아르바이트하는 친구가 있다고 거기서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고 한 시간인가 두 시간쯤 지났나.. 아르바이트하는 친구한테 가있는다곤 했지만 생각보다 늦어지는 자리에 맘이 급해져서 먼저 일어났다. 간다고 연락하며 집으로 갔는데 그 앞엔 그 사람이 있었다. 얼마나 눈을 맞았는지 머리고 어깨고 잔뜩 눈이 쌓인 채로, 손은 꽁꽁 언 채로. 너무 놀란 나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고 나도 모르게 손을 덥석 잡았다. 얼굴 보고 가고 싶은데 자기 때문에 일찍 나오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무작정 기다렸다며 활짝 웃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이 사람이랑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그리고 며칠 뒤에 우리는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 생각한다. 추위를 정말 많이 타던 사람이었는데 눈사람이 되어 날 기다렸던 그때 그 겨울을. 그때 그 순수하고 예뻤던 마음을. 함박눈이 내리던 그 밤을. 환하게 웃던 그 얼굴을. 얼굴 봤으니 됐다며 추우니 얼른 들어가라고 하고 돌아서던 그 뒷모습을. 



작가의 이전글 그곳은 어때? 잘 지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