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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May 16. 2024

이민자에게 일이란

일과 나의 경계


이민자인 당신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이민 십일년 차주변에서 다양한 이민자들을 만납니다이민 삼십년차도 보았고이십년 차도 봤습니다이들에게 인터뷰를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이민자인 당신에게 일이란 무엇입니까어떤 의미입니까예상컨대그 답들은 손가락 지문의 모양 숫자만큼 다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일이란 제 자식을 먹여 살리고 대학까지 보내야 하는 긴 여정이지요자녀들 비싼 미국 대학 등록금 생각하고또 성인이 되면 차도 사 줘야 하지요저한테 이 일은 너무 소중하죠. (가상 답안 1)


-저에게 일이란 내 자신을 헌신해서성과를 내면 그것이 제 보람이고 꿈이고 뭐 그런거예요알아요제 생각이 조금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요. (가상 답안2) 


맞습니다이건 제가 꾸며낸 가상 답안이고 실제로는 인터뷰를 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오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왜 물어보지 않았냐고요일터에서 만나는 동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다가는 퇴근 후에도 이 분에게 붙들려 있을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제 주변에는 이민자들이 많고그들 중 일부는 마치 =자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이들을 보면, ‘일은 곧 나 자신이오일을 통해 얻는 성과는 곧 내 삶의 성공이자 경제적 보상까지 같이 따라오기 때문에나는 일에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저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처럼 일은 못합니다.’라고 속으로만 말합니다당신의 업무 스타일을 저한테 강요하지 마세요라고 또 속으로 말합니다

그렇다면이제는 제 차례입니다저에게 물어보세요

달순씨, 미국 이민 십일년차인 당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입니까?

저에게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당연히 이지요돈을 벌기 위해 저의 노동을 제공하는 곳그곳이 일터입니다그렇다면 돈은 또 무엇입니까저에게 돈은 안정성의 다른 이름입니다제가 안정적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그래서 저는 일을 통해서 자아 실현을 할 마음이 없습니다저는 제가 생각하기에그리고 직장에서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을 정도로만 일합니다가끔 일에 막 빠져들다보면 저의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갈 때도 있습니다그럴 때면 나중에야 그런 생각을 합니다. ‘너무 빠져들지 말지어다’. 일과 나의 거리를 두지 않고 자꾸 일에 빠져 들다보면결국 어떤 사람들처럼 되더라고요그 어떤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그들은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내 말을 믿으세요나 처럼만 일하면 이 곳에서 오래 오래 멋지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왜냐하면 나는 이 곳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거든요.” 여기까진 그럭저럭 봐 줄 만합니다그 과정에서 나도 그 사람이 일하는 방식을 보면서 많이 배우기도 하고경탄을 금치 못하기도 합니다다만 문제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당신나처럼 일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뭔가 칼날을 휘두를 때 입니다본인은 100만큼 일을 하는데동료들이 50도 안되는 에너지를 일에 쏟는다고 판단하고비난한다면 그것은 제가 절대로 배워선 안되는 태도입니다존중감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죠아무리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기본적인 존중이 깔려 있지 않은 태도는 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합니다전 돈을 받는 만큼만 일합니다저는 직장에서 친구를 만들지도 않지만 적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남은 문제는 무엇이냐바로 허한 마음입니다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어떤 이민자들은 자신의 허한 마음을 일로 채우는 게 아닐까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고마음 맞는 사람도 주변에 많지 않을 때그런 곳에서 오는 허함을 일로 채워 버리는 건 아닐까일 속에 자신을 뭍어 버리는 것그건 제가 원하는 삶은 아닙니다마음이 허하고비어 있고바람이 막 부는 것 같지만그래도 저는 그냥 그런 마음을 느끼고글로 쓰면서 마음을 표현하고 대면하다 보면뭔가 좀 더 내 자신이 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이민자인데돌봐야 할 자녀가 없고보살펴야 할 반려견도 없는 싱글일 경우저녁이 되면 그 놈의 허한 마음이 아주 괴물처럼 몸집을 부풀려 때로는 저를 잡아 먹을 것 같기도 합니다대략 저녁 일곱시부터 열시 잠자기 전까지이죠이 세 시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저도 남들처럼 이 시간들을 휴식이 아닌 로 채워야 할까요그러면 그래도 확실한 보상이 어느 정도는 보장이 되지 않겠습니까저는 스스로에게 일을 더 하라고 달래봅니다

달순너도 남들처럼 팀장을 한 번 해 봐그러면 집에 와서도 일을 조금 하다보면시간도 잘 가고괜한 쓸데없는 생각도 안 하게 되고그러다 보면 성과도 나올 거 아니야성과 나오면 그것이 쥐꼬리만할지라도땅을 파봐라쥐꼬리도 안나온다

싱글 이민자에게 돈은 또 얼마나 중요하니넌 이제 기댈 곳이 없잖아미국에선 치과 신경치료를 하는데도 한 번에 이천달러씩 쑥쑥 빠져나가……. 그러면 이렇게 심심하다고외롭고 허전하다고 밤에 울부짓지 말고현실적으로 행동하란 말이야!”

이런 생각을 안 하는 것도 아닙니다그리고 저의 길고 긴남아있는 직장 생활을 (Fingers Crossed! 그렇게 되길 희망하지요미국에선 그렇게 말하대요뭔가 바라는게 있으면손가락을 꼬면서 핑거스 크로스드신이시여 내게 그런 행운을!) 하려면 언젠가는 팀장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다만저는최소한 현재의 저에게 팀장을 한다거나 커리어를 더 쌓는 일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안 그래도 이민자인 저에게 내가 이 땅에 있는 이유가나의 시간을 바치는 이유가’ 일 때문인데거기에 한 술 더 떠서저녁에도 일을 하라는 건…… 모르겠습니다지금의 답은 글쎄올씨다입니다차라리돈은 안나올지언정이렇게 저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는 게 저의 개인적 성장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달순의 짧은 구직 스토리저는 사실한국에서 일종의 dead end: 막다른 길을 느꼈었습니다인문학으로 석사를 했는데박사를 가기엔 제 엉덩이가 너무 가벼웠고저에게 맞는 마땅한 직업은 없었지요그래도 일반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제 나이와 긴 가방끈이 오히려 조직 사회에서는 방해만 되더군요방황을 하다가 결혼 이민을 했고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직업을 얻었습니다그리고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이 일이 엄청 대단해서가 아니라이 일이 저에게 주는 안정성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남은 것은 이 안정성을 가지고 가되어떻게 하면 나의 마음에 있는 이 허함을 아프지 않게건강하게잘 채울 것인가입니다그 답을 찾고 싶어서 이 글을 써 봅니다

지금까지 찾은 답은 소박하지만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운동. 

전 진짜 운동을 막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하지만 땀을 내야 잠이 잘 오더라고요그래서 너무 너무 하기 싫지만그래도 꾸역 꾸역 헬스장에 갑니다옷을 갈아입고 비장한 마음으로 러닝 머신 위에 올라갑니다오죽 운동이 싫으면 저는 꼭 운동을 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마음으로 인증샷을 찍어 놓습니다그 힘든 삼십분 운동을 너가 했다장하다그런 의미에서 찍는 사진입니다러닝머신위에서 뛰기도 하고걷기도 하고이십분을 합니다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로윙 머신을 씁니다십분 하면 많이 합니다그러면 딱 삼십분 채웠습니다그리고 아령 운동을 한 오분에서 십분 정도 합니다이걸 일주일에 두번세번하면 현재로서는 굿 스코어잘한 편입니다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서 더 자주 가야하지요그러려고 이렇게 씁니다다짐하려고요


둘, 퇴근 후 바로 씻기. 

저는 이 간단한 습관 하나도 그렇게 못 지킵니다그래서 이렇게 다짐합니다무조건퇴근해서 집 문을 열자마자 화장실로 직진해야 한다안 그러면퍼질러지다보면마구 마구꾸역꾸역 먹어대고그러다보면 화르르온 몸이 흐물흐물해져서씻지도 않고심지어 칫솔질도 안하고 자 버립니다으아이건 최악이지요일을 많이 하다보면일에서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바로 이 상태가 되더군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상태가 되면 일상이 오물 속에 빠져버리는 거죠저는 제 일상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나친 노동을 삼가하겠습니다

셋, 좀 더 높은 곳으로. 

많은 이들에게 그렇듯이 일에서 뭔가 신나고즐겁고내가 성장하는 기분이 들고그런 것은 좀 적은 것 같습니다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을 자꾸 자꾸 찾아야 합니다제가 최근에 찾은 것은 팟캐스트 듣기입니다저는 이민자가 되어서한국에서 본인인증되는 길이 막혔습니다그런데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팟빵에 문의를 했더니 이메일로 본인인증을 시켜줘서저는 너무도 오랜만에 제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분의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습니다이런 작은 변화는 제 일상에는 너무도 큰 선물입니다이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그래도 조금 더 제가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힘이 되는 말들도 정말 많이 얻습니다

그래도 사실은 시간이 남습니다가족과 통화를 하기도 하고일기를 짧게라도 쓰기도 하고,뉴스를 보기도 하고설거지를 하지요이민자의 주중은 이렇게 너무도 심심하지만 또 안정적으로조용하지만속에서는 터질 것 같은 갑갑함이 있지만휴가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래며 시간을 흘려 보냅니다

이민자 달순에게 일이란 돈이고안정감입니다그래서 받는 만큼 일하고돈 못 받는 오버타임은 사양입니다그리고 동료들과 적절한 관계 유지를 하면서 적도 친구도 만들지 않습니다대신 일을 적당히 하고 물가 높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아서 조금은 짠순이 생활을 합니다그리고 남는 외롭고 공허한 시간이 독이 아닌 비타민이 될 수 있게 운동하고씻고가족과 대화하고설거지도 당일에 꼭 하고뉴스보면서 세상을 따라가고팟캐스트 들으며 성장을 도모합니다뭔가 브랜드 마케팅 같은 글이 되어 버렸군요제 일상을 잘 만들기 위해 일이 있는 것이지일을 위해 제 일상을 바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그럼 이만…… 

제 일상은 아직은 잡초처럼 미약하지만, 반복해서 하다보면 단단해질겁니다 언젠가는요. 이 나무처럼요.

추신저는 이 글을 계기로 혼자 이 프로젝트를 해 볼까 합니다

이민자에게 땡땡이란 이란 제목으로 아래의 글들을 생산해 보고 싶습니다

이민자에게 일이란 

이민자에게 고국이란 

이민자에게 결혼이란

이민자에게 자식이란 

이민자에게 모국어란 

이민자에게 영어란 

이민자에게 고향 친구란  

이민자에게 형제, 자매란 

...... 

사실 더 정확한 이름은 '이민자 달순에게 땡땡이란'이겠지요. 

어떻게 제 한 사람의 경험으로 이모든 것을 보편화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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