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일자리 교육을 마치는 자리에서 흘린 눈물
"어흐흐흑...... 그동안 너무 고마웠습니다. 저는 우리 가족 중에서 첫번째로 미국에 온 사람입니다.... I am really grateful for being here. Thank you so much.... I am the first generation who immigrated to this country......."
내 말에는 상당한 말줄임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말줄임표를 채운 것들은 내 눈물과 콧물이었다. 말을 하는데, 갑자기 목이 메이고 그동안의 서러움이 복받쳤는지 눈물이 주루루룩 흘러 내렸다. 사실 대단한 드라마를 찍을 이유는 없다. 5년 전 미국에 온 것도 내 선택이었고, 친정 식구 중에서 미국에 온 사람은 내가 첫 세대임은 맞다. 하지만 "I am the first generation who came to the United States"라고 말하기에 내 조건은 '삐꾸'다. 한 살부터 미국에서 산 남편과 함께 살기에 그의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며칠 전 그 교실에서 그토록 설움에 복찬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말로는 '사람이 우는 건 자기 서러움 때문에 운다'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 내가 그렇게 운 이유는 고마워서였고 그래도 작은 허들같지만 그 허들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눈물이기도 하다.
눈물의 의미 - 고마운 이유
공무원의 세계에 입성은 했다. 서류와 인터뷰, 신체검사까지 총 5개월을 보냈다. 이제 다음 관문은 교육이다. 내가 할일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교실에는 총 열 세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네이티브가 아닌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의 가장 큰 공포는 "내가 이 사람들의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였다. 사실 나는 여러 명이 있는데 함께 하는 small talk는 무척이나 취약하다. 영어로 수다떠는 것만큼 문화적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스몰 톡, 수다는 차치하고 일단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자. 선생의 말을 못알아들으면 그건 최악이다. 그래서 자꾸 나대면서 질문을 했다. '그러니깐 선생님 말씀은......" 이런 식으로 선생님이 한 말을 내 나름으로 이해해서 그걸 내 언어로 말하고, 그게 맞는지를 확인해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걸 수차례 했는데, 나는 질문을 하면서도 사실 쪽팔렸고, 민망하기도 했다. 주변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을 안쓰는척 했지만 신경은 쓰였다. '그래, 나 이것들 좀 이해해야 하니깐 니들이 조금만 참아줘라.' 라고 속으로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도 내게 뭐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았다. '야야, 왜이렇게 눈치가 없어? 다 바로 바로 알아들어야 할것 아니야!'하는 비난과 힐난이 없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들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건 내게 표시하지 않는다면 사실 크게 내가 신경쓸 바는 아니다. 또한 누군가는 말했다. "어쩌면 다른 학생들도 궁금해 하는 것인데, 감히 나서서 질문을 못하는 것인지도 몰라."
그렇게 이 주간의 훈련이 끝났다. 새로운 세계에 입성하였고, 그 전에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기존의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나 나는 S선생님의 '코치스러움'에 감사함을 느낀다. 선생님은 마음으로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질문도 멍청한 질문이라는 건 없습니다. 다만 질문을 하지 않는것만이 좋지 않을 뿐이죠." 그렇게 어떤 쿠션 같은 학습 분위기를 조성해줬기에, 나는 그 쿠션 위에서 퐁퐁 트렘폴린을 타는 아이처럼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으면서 훈련을 했다. 그러한 환경에서 좋건 싫건 함께 있어준 동료들과 선생님께 고맙다고 말을 하면서 꺼이꺼이 울었던 것이다.
눈물의 의미 - 기회
두 번째 눈물의 의미는 내가 이 기회를 그래도 그나마 쥘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이민자이기에 갖는 불안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그것도 막연하다는 것을 이 연방 공무원의 세계에 조금 가까이 오면서 알게되었다. 진짜 안정성을 찾는다는건 그냥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삶의 안정성이라는게 크게 보면 없을지도 모른다. 신경림 시인님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가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래도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렇게 꺼이꺼이 울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이주의 훈련을 마쳤다. 눈물을 닦자마자 뭔가 모를 쪽팔림이 몰려와 조금 빨리 후다닥 교실을 나오긴 했다. 내가 좀 더 큰 사람이었다면, 그래도 마지막에 개인적으로 선생님과 동료에게 인사를 했었어야 할것 같은데, 그러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데 나의 그러한 맨얼굴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내게 인간미를 느꼈는지 그 다음날 새벽 두 시부터 OJT 훈련을 하는데, 그 전날 봤던 동료 학생들이 내게 더 따듯한 인사를 보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그들과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 이제는 교실에서 배운 내용을 현장에서 몸으로 익힐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