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가장 뜨겁고 무겁고 길었던 여름의 끝

너를 만난 지 38주 차

by 맘고래

아가야,

정말 뜨거운 여름이었지?


그 주에는 꼭 벼르고 벼르던 맛집에서 탕수육을 꼭 먹어야만 할 것 같았고, 그 주 어느 날 아침에는 미뤄뒀던 편지와 책을 우체국까지 가서 꼭 부쳐야만 할 것 같았어.


눈 빠지게 아가를 기다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피가 비쳤단다. 병원에 문의하니 얼른 오라고 해서, 아빠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어. 아빠는 그 더운 날 회사에서부터 쉬지 않고 달려서 다리를 건너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해 계단을 뛰어올라서 집으로 왔단다.


병원에 가는 길 내내 엄마는 배에 손을 대고 있었어. 그런데 아가의 움직임이 옅게도 느껴지지 않는 거야. 출산이 임박해도 태동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는다던데 아가는 왜 조용할까? 겁이 나기 시작했어.


병원에 도착해서는 아빠가 주차하는 것도 기다리지 못하고 접수부터 했단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대기실에 있었어. 간호사선생님께 안내받길, 대기환자가 많고 곧 수술도 잡혀있어서 주치의선생님을 바로 볼 수가 없으니 태동검사부터 받자고 하셨어. 알겠다 하고 화장실에 갔는데 피 비침 양이 그새 더 많아진 거야.


“저, 선생님. 방금 화장실을 갔는데 핏덩이가 나왔어요. 태동도 없고...., 제가 너무 겁이 나서요... “


간호사선생님께 그 상황을 알리는데, 목소리가 떨렸어. 아기가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태동검사를 먼저 하는 것이니, 진료 전에 검사부터 하는 거라며 그분은 친절히 안내를 다시 해주셨어. 태동검사실로 가는데, 여전히 아가는 조용하지, 방금 핏덩이를 봤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갑자기 났어. 태동검사실 안에 들어가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안내해 주셨던 간호사선생님이 오셔서 마음을 달래주셨어.


“엄마, 울지 말고 들어봐요. 아기 심장소리 들리죠? 우리 아기 괜찮으니까 걱정 마요. 주치의 선생님께는 말씀드렸으니 태동검사 마치면 바로 진료 볼 수 있을 거예요. “


울음을 그치고 귀를 기울이자, 아가의 심장소리가 들려왔어. 편하게 누워있으니 움직임도 느껴졌단다. 마음속으로 아가를 지켜달라고 계속 기도했어.


태동검사를 마치고 진료를 보러 갔어. 다행히 검사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단다. 의사 선생님께서 진료를 보고 하시는 말이, 출혈은 자궁경부에 생긴 작은 용종 때문이지 자궁경부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고 하셨어. 조직검사를 위해 용종을 떼 내었고, 지혈을 위한 조치를 했으니 그날 오후에 병원에 다시 오라고 하셨어.


아침부터 울어서인지 두통이 느껴졌단다. 집에 돌아와서 낮잠을 자고 오후에 다시 병원을 찾았어. 진료를 보는데, 그 사이 자궁경부가 2센티미터가 열렸다는구나. 입원을 하라고 하셨어.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입원 수속을 밟았지.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분만대기실로 입장을 했단다. 오후 다섯 시쯤이었어.


그때부터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단다. 조용한 분만대기실에서 용종을 떼낸 부위의 지혈이 되기를, 아니면 자궁경부가 더 열려 분만 진행이 되기를 기다렸어.


어느덧 자정이 되었단다. 배가 규칙적으로 아파오기 시작했어. 시간 체크를 했더니 어느새 주기가 5분으로 줄어들어있더구나. 간호사선생님이 내진을 하시고는 자궁경부가 3센티미터 열렸으니 미리 제모와 관장을 하자고 하셨어.


소독약을 바르고 빠르게 제모를 하고, 관장액을 주입했지. 화장실 입구에서 5-10분을 기다렸다가 볼일을 보라고 하시더구나.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5분 정도를 겨우 참은 것 같아. 이야기로만 듣던 그 준비과정은 생각만큼 큰일이 아니었어. 마치고 나오니 가족분만실이 준비되어 있었단다.


가운데 위치한 침대에 누우니 실감이 났어. 따뜻한 분위기의 분만실 한쪽 벽면에는 아가의 탄생을 축하하는 문구가 알록달록 붙어있었어. 그래도 분만대기실보다는 가족분만실이, 같이 밤을 새우는 아빠에게 조금이라도 더 편히 누울 곳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했어. 이때가 새벽 세 시정도였단다.


가족대기실에서 자궁경부가 더 열리길 기다리며 잠을 자는데 통증이 강하게 오기 시작했어. 무통주사는 자궁경부가 4센티미터 이상 열려야 맞을 수 있다고 하는구나. 긴 시간 진통이 있던 후라, 이제는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어. 그러나 여전히 자궁경부는 3센티미터 열려있었어. 3센티미터에서 4센티미터로 가는 길이 참 멀었단다. 그 사이 양수가 이미 터져버렸는데, 갈 길은 한참 남았었지. 따뜻한 물이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졌어.


그 와중에 무통주사를 위해 척수에 카테터를 꽂는 시술을 했어. 척수에 주사를 맞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알고 있어서 긴장을 했는데, 아프지 않았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에 비하면 말이야.


카테터 시술도 했지만 무통주사는 더 기다려야 했어. 자궁입구가 4센티미터는 열려야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는데, 그전에 맞으면 진행이 멈추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셨어. 조금만 더 참자 참자하다가 마침내 4센티미터가 되고 무통주사를 맞았지. 시원한 기운이 등허리부터 전해지며 통증이 사라졌어.


그리고 유도분만을 위한 촉진제도 같이 맞았지. 아프지 않았지만 잠을 잘 수는 없었어. 삼십 분에 한 번씩 내진을 하며 힘주는 연습을 했어. 쪽잠을 자고 일어나고 반복을 얼마나 했을까.


배가 갑자기 너무 아파오기 시작했어. 무통천국이 끝나고 힘을 줘야 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정말 난생처음 겪어보는 아픔이었단다. 그동안 많은 글들을 읽으며 통증을 가늠해보려 했는데 정확히 묘사한 글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 이유를 그 순간이 되어서야 깨달았단다. 그 통증은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어. 짧은 순간 찾아오는 큰 고통은 단순히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심적인 걱정과 함께 왔단다. 아기가 괜찮을까? 나는 괜찮을까? 하는 걱정 말이야.


오른쪽으로 누워서 통증이 올 때마다 무릎을 끌어당기면서 배변하듯 힘을 주어야 했어. 아빠가 강하게 무릎을 밀어주었지. 이 자세는 힘을 주는 것보다 힘을 준 후 몸을 반드시 똑바로 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정말 고통스러웠어. 사람은 통증이 오면 보통 몸을 웅크리게 되는데 그와 반대로 몸을 펴야 했으니 말이야.


힘을 줄 때마다 묵직한 것이 밀려내려 오는 것 같았어. 몸을 서둘러 펴지 않으면 묵직한 것이 다시 올라가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단다.


그런데 갑자기 간호사선생님이 아기가 심장은 뛰는데 호흡을 어려워한다고 하시는 거야. 엄마 코 아래로 산소호흡기 줄이 지나갔어. 호흡을 계속하라고 하시더구나. 엄마는 너무 겁이 나서 숨을 몰아쉬었어. 산소호흡기를 달고 힘을 계속 주라고 하셨어. 힘을 배로, 아래로 줘야 하는데 얼굴만 빨개졌어. 어느새 더 많은 간호사선생님들이 오셔서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상체를 들어 안아서 힘을 주는 때에 맞춰 움직임을 도와주시는데, 마치 몸을 반으로 접어주는 것 같았어. 명치 쪽에 힘을 주라고 힘을 줘야 하는 부위를 주먹으로 치는데도 그곳에 도저히 힘이 안 주어졌어. 숨이 가빠지고 너무 두려웠단다. 엄마가 힘이 약하고 힘을 줄 줄 몰라서 아가를 위험하게 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몰려왔어. 몇 차례 몸이 더 접히고 나자, 이제는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단다. 그때 엄마는 소리쳤어.


“제발, 살려주세요. 저 수술할래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간호사선생님들과 담당 선생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듣는데, 1시간만 더 해보고 수술하자고 하셨어. ‘1시간’이라는 단어를 듣는데, 엄마는 그 안에 우리 둘 다 죽을 것만 같았어.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스스로 “그래, 나는 나약하다” 외치고 싶지 않았는데, 르봐이에 분만 꼭 하고 싶었는데, 개복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가가 호흡을 잘 못한다 하는데 모든 시도가 객기가 되어버릴 것 같았어.


수술을 외치고, 정말 다행히도 수술방이 바로 잡혀서 들어갈 수 있었어.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은 절대 힘을 주지 말라고 하시더구나. 통증이 다시 한번 밀려오며 저절로 아래로 주어지는 힘을 겨우 참아냈지.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 수술방은 굉장히 추웠고 온몸이 떨렸던 게 기억나. 마취주사가 들어가자 이제야 살겠다 싶었어. 하반신마취만 해서 수술과정이 느껴졌어. 무언가 갈라지고, 벌려지고, 밀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가가 나왔지. 그게 오후 두 시 반이었단다. 입원하고 21시간 만이었지.


“아가, 어서 울어야지.”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옅게 우는 소리가 들렸어. 그제야 아가를 보여주시는데, 까만 눈을 뜨고 있는 아가와 눈이 마주쳤어. 상상했던 그 순간에 엄마는 울컥 눈물이 나기보다, 정말 내가 품고 있던 아가가 맞나, 믿을 수 없는 낯선 감정이 들었어. 그리고는 거의 정신을 잃은 것 같아. 눈을 떴다가 감을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이 보였다가, 아빠 얼굴도 보이고 그랬지.


그렇게 병실로 왔고, 앞으로 4시간 동안은 절대 잠들지 말라는 어려운 숙제를 받아서 드러누운 채로 버텼어. 그리고 4시간을 더 물을 마시지 못하고 버텼고, 거기서 다시 17시간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텨야 했단다.


꼼짝없이 누운 채로 발끝부터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면서 밤을 보냈단다. 3시간마다 아빠는 엄마의 시트를 갈아주었어. 밤새 자다가 깨면 아빠가 면회시간에 찍어 온 아가의 사진들을 보았어.


아침이 되었고 신생아실에서는 전화가 왔어. 태어나는 동안 아가가 고생을 많이 해서, 호흡도 가쁘고 두혈종도 있었던 거야. 한동안 산소치료를 했고, 그러면서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고 했어. 추이를 봐야 하는 것도 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하셨어. 그 이야기를 듣자, 엄마는 직접 내려가서 아가를 꼭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다음 면회시간까지 꼭 걷겠다 다짐하며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겨우 침대 끝에 앉았어. 갑자기 한쪽 귀가 들리지 않으면서 어지러움이 밀려와서 심호흡을 했어. 무리하지 말까? 잠시 고민했는데, 이제는 나 혼자 몸이니 무리해도 좋다 싶었어. 조금 나아지자, 이제는 일어설 차례였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 후, 아픔을 참으며 일어섰어. 또다시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단다. 심호흡을 천천히 했더니 서서히 소리가 들려오고 어지러움이 가라앉았어. 그리고 한 발 두 발 걷기 시작했지. 진통제가 있어 고통은 적었지만 불편함은 컸어. 잘 걸으면 소변줄을 뺄 수 있다는 간호사선생님 말씀에 열심히 복도를 걸었단다.


아가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걷고 또 걸었어. 그렇게 시간이 되어 아가를 보러 갔단다. 유리창 너머로 마주할 시간은 단 1분, 마침내 제대로 아가를 보았어.


가쁜 숨을 쉬는, 뾰족한 머리모양의 빨간 아가. 그게 아가의 첫인상이었단다. 아마 아가가 엄마를 볼 수 있었다면, 뒤뚱뒤뚱 겨우 걷는, 눈과 목에 실핏줄이 잔뜩 터진 빨간 엄마가 첫인상이었을 거야. 그래도 우리 둘 다 무탈했지.


고마운 마음과 함께 그 자리에서 엄마 맘 속에 샘솟기 시작한 것이 있었어. 그건 바로 용기였단다. 엄마는 이제는 맘 속에서 죽을 때까지 마르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씩씩하고 굳세게 너를 기르고 지킬 거야. 굳센 할머니 덕에 꽃처럼 피어날 수 있던 엄마는, 이제 너를 꽃처럼 피워낼 거야.


엄마의 생에 가장 뜨거웠고 무거웠고 길었던 여름이 끝이 났어. 고되고 가쁘게 세상에 나왔지만 건강한 너와 내가 마침내 만났어.


“안녕,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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